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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마음으로 – 다시, 살아가는 법

조금은 느리게, 그러나 여전히 뜨겁게

by Pelex

“조용한 하루, 그 속의 이야기”

늦은 나이에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오래된 글들을 하나둘 꺼내 정리하며,
지나온 날의 고마움을 글로 새깁니다.

서문

젊은 날에는 몰랐습니다.
늦잠 한 번이,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출근길의 소소한 긴장이 얼마나 값진 하루의 증거였는지.

이제 종심이 된 나이에야 비로소 알게 된 것 갔습니다.
그 모든 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나이 듦은 두려움이 아니라, 어쩌면 익어가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부드러워지는 계절 말이지요.

요즘 문득, 오래된 해묵은 글들을 꺼내 정리해 봅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마음의 결들을, 이제야 조금씩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이 글은 한 사람의 장년이 지나온 세월 속에서
다시 배우는 삶의 자세에 관한 기록입니다.
퇴근길의 뒷모습이, 일요일 새벽의 고요가,
늦가을 하늘 아래의 낙엽이
당신의 하루와 겹쳐지길 바랍니다


1부. 마음의 여유로움

요즘은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 이렇게 글을 씁니다.
많은 월급은 아니지만, 여전히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줄은 예전엔 몰랐습니다.

이순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출근길에 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사장 눈치가 보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 가능성이 보이니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이 자리에 오래 머물고 싶지만, 그것도 내 뜻대로 되진 않겠지요.
가끔 현직에 있는 동료들에게 부탁할 일이 생기지만
냉정한 거절을 당해도 화내지 않습니다.
그냥 너털웃음으로 넘깁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경제활동의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더 늙으면 무엇이든 소용이 없어집니다.
남은 시간은 길어야 십 년, 아니 이십 년일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지금은 뒤돌아볼 여유도, 따져볼 여유도 없습니다.
끝이 보이는 인생이라 해도
살아 있는 동안은 만나고, 배려하고, 칭찬하고,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뛸 수 있을 때까지는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합니다.
그것이 나이 듦을 멋지게, 그리고 추하지 않게 사는 비결일 것입니다.
우린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다시, 인생 반전의 기회를 향해 재충전합시다.
파이팅. (2018년 어느 날에)


2부. 일요일 새벽에

어제 내린 비 덕분일까요.
창밖의 바람이 유난히 상쾌합니다.

늦게 자든 일찍 자든, 평생 새벽에 눈을 뜨는 습관은 여전합니다.
이제는 일요일이라도 더 자려 뒤척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할 일이 있고, 가볼 곳이 있으니까요.

조금은 제자리를 찾은 듯합니다.
마음이 한결 편안하고, 아내 눈치도 덜 보고,
어머니께 용돈도 드리고, 아이들과 외식 한 번쯤은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좋은 글을 찾아봅니다.
혼자 보기엔 아까운 문장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입니다.

그냥 무심히 사는 것보다는,
오래된 친구나 스쳐간 인연에게 안부 한마디 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 나이에, 죽으면 부의금 오만 원, 십만 원이면 끝나는 인연들입니다.
아니, 때로는 알 사람조차 없어 아무도 오지 않는다지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내 글이 스팸처럼 느껴지면 지워도 좋고,
마음이 닿으면 짧은 안부라도 주면 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길고 고요합니다.
하루 종일 전화 한 통, 문자 한 줄 없는 날도 많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살아 있음이,
누군가가 나를 떠올릴 가능성이 어딘가에 남아 있겠지요.

친구들이여,
그저 외로워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비우고 싶어
이 새벽에 몇 줄 적어봅니다.

그리고 지갑 속 주민등록증 옆에
이 글 한 장을 넣어 다니며 마음을 다스립니다.

“나이 듦의 처세”

설치지 말고,

성내지 말고,

알고도 모른 척,

미운 소리, 군소리하지 말고,

어수룩하게 웃으며 살자.

지난 일은 모두 흘려보내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오늘을 고마워하며 살자.

말복날 아침에.(2018년 )


3부. 늦가을을 보내며

며칠째 흐린 날씨가 괜스레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바람에, 비에, 덜 익은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오버코트를 여미고 낙엽을 밟으며 천천히 걷습니다.

많은 월급은 아니지만, 여전히 직장에 다닌다는 건
작은 소속감과 기쁨을 줍니다.
이순을 넘긴 나이에 허둥지둥 출근하는 일상이
이제는 그 자체로 감사한 일입니다.

봐주는 사람은 없지만,
아침마다 가장 단정한 옷을 골라 입습니다.
한때는 입지 못하고 쌓아두었던 옷들이
이제야 제철을 맞았습니다.

지하철에서는 경로석 근처엔 잘 가지 않습니다.
괜히 나이 들어 보이기 싫어서입니다.
그래도 친구들이 “아직 젊어 보인다”라고 말해주면
그 말 하나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만큼은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일이 없을 때면 사장 눈치가 보이지만
그래도 아직 내 안의 가능성을 믿고 싶습니다.

현직에 남은 친구도, 한가히 낚시를 즐기는 친구도
결국 다르지 않습니다.
나이 들면 욕망도, 지식도, 외모도, 재산도
평준화된다고들 하지요.

그래도 나이 듦에는
조금의 경제적 여유와 마음의 평온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과 외식 한 끼, 친구에게 술 한 잔 사줄 여유.
그게 어쩌면 마지막까지 멋있게 사는 비결일지도 모릅니다.

이제야 철이 듭니다.
남은 인생의 여유를 찾고,
진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준비를 하는 중입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십 년, 길어야 이십 년.
이제는 머뭇거릴 여유도 없습니다.

그러니 남은 날 동안은
뛸 수 있을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합니다.
그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자존심이자
삶을 이어가는 방법일 것입니다.

오늘은 그냥,
늦가을 하늘이 흐려서
이런 넋두리를 써봅니다

(2018년 어느 날에).



에필로그 ― 다시, 살아가는 법

우리는 결국 나이 들어가며
조금씩 자신을 비워가고, 또 채워갑니다.

하루가 고맙고,
한 끼가 따뜻하며,
한 통의 안부가 그리운 나이.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여전히 뜨겁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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