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세이]
“어머니가 떠난 뒤, 고향은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엊그제 토요일 새벽, 문득 어머니가 사무치게 보고 싶어 고향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몰라보게 변했습니다. 내가 뛰어놀던 보리밭과 개울가, 정겹던 흙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차가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지만, 그곳엔 여전히 변하지 않는 단 하나, 나의 어머니가 계십니다.
이제 구순이 되신 어머니. 세월의 무게에 다리도 몸도 많이 불편해지셨습니다. 둘째 아들이 바로 옆 동에 살고 있어도, 혹여 며느리 눈치 보일까 한사코 혼자 지내시겠다며 고집을 부리십니다. 그 깊고 시린 속마음을 종심을 훌쩍 넘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어머니 앞에 서면 저는 여전히 어리광 부리는 어린아이 일 뿐입니다. 무뚝뚝하고 붙임성 없는 큰아들이 무엇이 그리 할 말이 많았는지, 이번 방문에는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당신과 이렇게 긴 밤을 지새우며 속내를 나눈 것이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멍해져 왔습니다.
어린 시절, 서울로 유학 가며 집안의 기둥이 되겠다던 다짐은 세월의 풍파에 깎여나갔습니다. 당신의 꿈을 온전히 이뤄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고 또 죄송할 따름입니다. 인생의 쉽고 편한 길을 놔두고 왜 그리 험난한 길만 골라 걸어왔는지 후회될 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장하다며 제 손을 잡아주십니다.
돌아오는 길, 어머니는 당신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기력으로 큰아들에게 줄 것들을 챙기셨습니다. 들고 가지도 못할 만큼 꽉꽉 눌러 담은 쌀과 고구마, 들기름과 고춧가루... 차 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냄새는 어머니의 눈물겨운 사랑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김치는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신비한 맛입니다. 자식 배불리 먹이는 낙으로 평생을 보낸 당신의 거친 손마디가 느껴져 코끝이 찡해집니다.
모레면 제 생일입니다. 어머니는 매년 잊지 않고 전화를 주십니다."얘야, 미역국은 끓여 먹었느냐. 나는 괜찮으니 밥 잘 챙겨 먹고 건강하거라."종심이 넘은 아들에게 밥 먹었냐고 물으시는 그 음성에는 여전히 갓 태어난 자식을 품에 안았던 젊은 어머니의 온기가 서려 있습니다.
살아생전 한 잔의 술이 죽은 뒤의 화려한 제사상보다 낫다는 '사후만반진수 불여생 전일배주(死後萬般珍羞 不如生前一杯酒)'라는 말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늘 생각만 앞서고 실천하지 못한 불효자는 오늘 밤,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어머니가 살아오신 대로,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하지 않고 형제간에 우애 있게 잘 살겠노라고 말입니다.
어머니, 당신에 대한 제 마음은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저 세월만 조금 더 흘렀을 뿐입니다. 부디 건강하게, 조금만 더 오래 곁에 머물러 주십시오.
[2. 詩 ]
어머니~
크게 불러봅니다
어머니가 떠나신 지 1년 반이 지난 오늘
아직도 마음은 고향으로 향하던 그 버스에 올라 있습니다.
떠난 뒤에야 알게 된, 어머니라는 자리.
문득,
아무 예고도 없이
어머니가 보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아직도 몸이 먼저
고향으로 향하던
그 버스를 떠올립니다.
이제는
다시 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그 길을 놓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연세 아흔을 앞두고는
몸이 성치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큰아들인 나를 보면
언제나 무언가를 더 챙기려 하셨습니다.
들고 가기 벅찰 만큼
당신 손으로 고른 것들을
끝내 내 손에 쥐여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김치는
지금도 다른 어떤 맛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이던 맛,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꺼내 먹을 수 있는 맛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미 종심을 훌쩍 넘겼지만
어머니 앞에서는
끝내 철들지 못한 아이였습니다.
무뚝뚝한 큰아들 주제에
그날 밤은
왜 그리도 말이 많았는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새벽을 함께 맞았습니다.
그 시간이
마지막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내가 뛰어놀던 고향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산도, 보리밭도, 개울도
아파트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함께 놀던 친구들 또한
각자의 삶 속으로 흩어졌지만
어머니만은
끝내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으셨고
자식들 앞에서
힘들다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육 남매를 키우며
남부럽지 않게는 살았지만
어머니는 늘 검소하셨습니다.
알뜰함 속에서도
당신 것을 먼저 고르지 않고
자식들부터 살피셨던 분이었습니다.
돌아보면
나는 어머니가 바라던 만큼
살아오지 못했습니다.
쉬운 길도 있었고
손에 쥘 기회도 있었지만
왜 늘 험한 길만 택했는지
이제 와 묻게 됩니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또한
어머니가 내게 보여 주신
삶의 방식이었으니까요.
어머니가 떠나신 뒤
고향은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아니라
그리워해야 할 곳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전화 한 통으로도
당신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김장 걱정 말라며
택배를 보내 주시던 일도
모두 추억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오늘도 저는
여전히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한 아들입니다.
다만,
당신이 살아오신 모습 그대로
화를 줄이고
싫은 말 대신
좋은 말을 고르며
형제들과 우애 있게
하루를 살아내려 합니다.
그것이
이제 내가 어머니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효도라 믿으며.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