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느 늙은 아비의 참회록
이 글은 한때 세상을 바꾸겠노라 호언장담하던 오만한 젊은 아비가, 이제는 내일 아침 딸아이의 차가운 손을 잡을 수 있기만을 기도하는 나약한 노인이 되어 올리는 고백입니다.
본 글은 2025년 7월 8일 한겨레신문 '왜냐면' 코너에 기고되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글입니다. 당시 OOO 방송국으로부터 방송 제작 요청을 받기도 하였으나, 가족의 아픔이 온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경계한 아내의 간곡한 반대로 눈물을 머금고 거절해야만 했던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는 제 생애 작품만으로 남기고자, 가슴에 묻어둔 못다 한 이야기들을 꺼내어 다시 기록합니다.
기적의 영수증, 그리고 40년의 흉터
40년이라는 세월은 숫자로 남는 것이 아니라 살과 뼈에 새겨지는 깊은 흉터라는 것을 이제야 압니다. 2007년의 어느 날, 저는 문득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습니다. 한 달 병원비 3,000만 원, 1년이면 3억 6천만 원. 이 병이 세상에 알려진 지 17년이 되었으니, 딸아이의 생명을 지탱하기 위해 들어간 비용은 어림잡아 60억 원, 당시 환율로 '육백만 불'이었습니다.
물론 그 엄청난 비용을 우리 가족의 힘만으로 감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국가와 보험의 혜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 그 숫자는 단순히 돈의 액수가 아니라, 우리 아이를 이 세상에 단단히 붙들어 매어둔 '간절함의 무게'였습니다. 약이 없어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수많은 아이를 뒤로하고, 우리 딸은 기어이 살아남아 '육백만 불의 아가씨'가 되었습니다.
유치원만이라도 가게 해달라던 처절한 기도
"하느님, 제발 우리 예쁜 딸아이 유치원만이라도 다니게 해 주십시오." 무릎이 닳도록 빌었던 그 비천하고도 처절했던 기도는 기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유치원을 지나 초등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마침내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든 날, 저는 지난 세월의 모든 고단함이 봄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기적의 중심에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결코 울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동정을 구걸하며 눈물을 보이는 대신,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국회와 정부 부처를 제집 드나들듯 찾아다녔습니다. 딸아이를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시작된 한 엄마의 발걸음은 희귀병 환자들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게 했고, 가로막혀 있던 의료보험의 높은 벽을 허물었습니다. 아내는 딸아이의 엄마인 동시에, 이름 모를 수많은 환우의 수호천사였습니다.
4년의 성악, 목소리로 피어난 생명의 노래
2011년, 딸아이는 음대 성악과를 졸업했습니다. 희귀병이라는 가혹한 굴레 속에서도 아이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 세상 밖으로 길어 올렸습니다. 비록 세상이라는 큰 그릇에 담기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을지라도, 밝게 웃으며 졸업 가운을 입은 아이의 얼굴에서 저는 다시 한번 하느님의 가없는 은혜를 보았습니다.
그 시절, 어느 가수의 인터뷰가 제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는데, 아내의 소원은 그 아이보다 딱 하루를 더 사는 것입니다." 그 절실한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부모가 떠난 뒤에도 아이들이 편견 없는 세상에서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는 나라, 우리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마치 투쟁하듯 하루하루를 살아내 왔습니다.
60억의 가치보다 귀한 나의 보물
딸아이는 나에게 '육백만 불' 이상의 가치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나를 낮추는 깊은 겸손함, 작은 것에 감동하는 순수한 감사함, 그리고 처절한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말입니다. 아이는 우리 삶의 짐이 아니라, 하늘이 우리 가족에게 보내준 가장 귀하고 눈부신 선물이었습니다.
딸아, 너를 사랑한다. 네가 살아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아빠는 이미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란다.
다시 멈춰버린 시계, 그리고 아비의 참회
하지만 운명은 다시 한번 가혹한 시험대를 던졌습니다. 보란 듯이 세상에 내놓겠다던 다짐이 무색하게, 딸아이는 7년 전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코마 상태로 누워 있는 마흔의 딸 앞에서 아내의 시계는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참으로 못난 남편이자 나약한 아비였습니다. 가망 없는 희망을 붙들고 자신을 갉아먹는 아내가 너무나 안쓰러워 모진 말을 내뱉기도 했고, 우리가 떠난 뒤 홀로 남겨질 아이가 걱정되어 차라리 아이가 먼저 하늘나라에 가기를 기도하는 죄를 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를 막아선 것은 아내의 서슬 퍼런 모성이었습니다. 아내에게 이 아이는 7년째 죽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7년째 '살아내고 있는'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잘 잤니?" 대답 없는 메아리, 매일 아침의 기적
아내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잠든 딸의 귓가에 속삭입니다."우리 딸, 잘 잤어? 오늘은 2026년 1월 7일이야. 날씨가 참 춥네..."들리는지, 혹은 느낄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대답 없는 메아리입니다. 최근 아내가 발목을 부러져 잠시 멈춰 섰을 때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내가 누려온 이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아내라는 거대한 나무가 온몸으로 풍파를 막아준 덕분이었다는 것을요. 아내는 딸아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를 배웠다고 했지만, 저는 그런 아내를 보며 진정한 '인간의 길'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내일을 허락받는 주일 새벽의 기도
요즘 저는 매주 주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성당으로 향합니다. 이제 나의 기도는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거창한 기적이나 희망을 품지 않습니다. 그저 낮은 자세로 엎드려 빌 뿐입니다.
"하느님, 다음 주일 새벽에도 제가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을 수 있게만 해 주십시오."
주일 새벽 성당에 올 수 있다는 것은, 내일도 내가 살아 있어 잠든 딸의 손을 잡아줄 수 있다는 뜻이며, 다친 아내의 곁에서 지팡이가 되어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오늘 하루 주어진 무거운 짐을 묵묵히 지고, 내일 다시 그 짐을 질 수 있는 기운이 허락되기를 간절히 원할 뿐입니다.
에필로그:
사랑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
딸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달라고 빌었던 젊은 아비의 간절함은, 이제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끝까지 지킬 수 있게 해 달라는 늙은 아비의 기도로 깊어졌습니다.
비록 딸은 깊이 잠들어 있고 아내는 다쳐 누워 있지만, 우리 가족의 사랑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넉넉하지 않아도 추하지 않게, 진실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려 합니다. 내일 새벽에도 저는 변함없이 기도의 자리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제가 아는 모든 이들의 평안을 위해, 그리고 내일도 허락될 우리 가족의 시간을 위해 마음의 촛불 하나를 더 밝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