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회 총무 7년, '완장'을 내려놓으며 비로소 보이는 것들
1. 어쩌다 맡은 소임, 7년의 무게
'청록회'라는 이름으로 고교 동기 소모임의 총무 완장을 찬 세월이 어느덧 7년을 넘겼습니다. 사실 저는 워낙 내성적인 사람이라 동창회 활동조차 미적지근했던 터라, 처음 등 떠밀려 총무직을 맡았을 때 스스로도 의아했습니다. 저를 아는 친구들이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수년 전 써두었던 자기소개서를 쑥스럽게 공유하며 인사를 대신했던 그날의 공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존경하는 회장단분들의 든든한 동행과, "최선이 기본이 되게 하겠다"는 저의 작은 다짐이 모여 꽤 긴 시간을 흘러왔습니다. 강남의 작은 모임에서 시작해 전국구로 확산되고, '남도 맛기행'과 '백두산 여행'을 거치며 우리는 가족보다 더 자주 웃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청록회는 어느덧 제 하루를 열고 닫는 가장 소중한 일상이자,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 무겁고도 행복했던 완장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2. 대답 없는 메아리, 2,555일의 기록
총무로 일하며 제가 가장 공을 들인 곳은 의외로 '카톡방'이었습니다. 7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좋은 글'과 '제가 직접 쓴 글'을 올렸습니다. 누구 하나 시원하게 호응해 주지 않는 날이 허다했지요. 때로는 적막한 방에서 홀로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듯한 고립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만의 원칙은 단호했습니다. 정치, 종교, 자극적인 글은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글들로 이 공간의 품격을 지키겠다는 고집이었습니다. 지난해 유독 지치고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그 끈질긴 성실함은 결국 나 자신을 닦는 수행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비록 친구들이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어도, 매일 아침 배달되는 제 글을 통해 우리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으리라 믿습니다.
3. '세월의 평준화'라는 축복
우리 나이 어느덧 종심(從心), 이제는 '삶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입니다. 학력, 권력, 재산, 지위... 한때 도토리 키 재기하듯 높낮이를 따지던 것들이 이제는 무색해졌습니다. 희끗해진 머리칼과 깊어진 주름 앞에서 우리는 다시 까까머리 시절의 평등한 친구로 돌아왔습니다.
진정 여유 있는 삶이란 가진 만큼 만족하고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 것이겠지요. 잘 나가던 시절의 콧대는 낮추고, 부족했던 시절의 위축됨은 훌훌 떨쳐버려야 할 때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저 물 흐르는 대로, 구름 가는 대로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야 할 나이입니다. 먼저 밥값을 계산하는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고, 먼저 사과하는 친구의 용기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그런 성숙한 계절에 와 있습니다.
4. "야! 자!" 할 수 있는 보물 같은 인연들
살다 보니 격식 없이 "야!", "자!" 하고 말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동창들뿐이더군요. 인생 칠십은 시속 70km로 달린다고 했던가요. 어느덧 우리도 마음 가는 대로 행해도 어긋남이 없다는 '종심'의 문턱에 섰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얼마나 더 마주할 수 있을까요. 해가 바뀔 때마다 느껴지는 빈자리가 서글프지만, 그렇기에 지금 곁에 있는 친구들이 보물보다 값집니다. 사소한 오해로 등 돌리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나 아깝습니다. 같은 눈높이로,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사는 날까지 서로를 품고 살고 싶습니다.
에필로그:
기분 좋은 바통 터치
새롭게 봉사를 시작할 차기 회장단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이제 저는 총무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여러분 곁의 '편안한 친구'로 돌아갑니다.
"친구야, 부디 아프지 마라. 건강하게 오래 보자."
이 짧은 인사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임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청록회라는 이름 아래 맺어진 이 귀한 인연들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