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빠진 호랑이가 아니라, 발톱을 숨긴 호랑이였습니다

by 펠렉스

2009.6.6에 쓰고, 2026년에 다시 꺼내 읽다 “열정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가장 큰 부담이 된다.”

2009년 6월의 어느 날, 나는 스스로를 ‘이빨 빠진 늙은 호랑이’라 불렀습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 다르다더니, 그 간절했던 취업의 문을 넘은 지 고작 한 달 만에 마음이 소란해졌기 때문입니다. 새벽 6시 출근길, 아들뻘 되는 상사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내 안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쏟아붓는 일은 생각보다 고단했습니다. 때로는 안간힘을 써야만 버틸 수 있는 시간들이었죠.

월급 300만 원.

누군가에겐 적은 액수일지 모르나, 내게는 '당당한 가장'의 증표였습니다. 아내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자유, "아빠 취직했으니 용돈 줘!"라고 외치는 딸아이와 노모에게 지갑을 열 수 있는 기쁨. 갈 곳이 있고 바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히 신나는 무대였습니다. 화려했던 과거의 연봉에 비하면 서운할 법도 하지만, 나는 기꺼이 몸을 낮추고 버텨보리라 다짐했습니다.

"녹슨 머리는 닦으면 그만이다."

대기업 임원을 지내고 가는 곳마다 우수사원 표창을 휩쓸던 십수 년의 세월이 어디 가겠습니까. 비록 사장님의 눈에는 내 느릿한 몸짓이 미덥지 않을지 몰라도, 나는 믿었습니다. 내 머릿속에 켜켜이 쌓인 지혜의 먼지를 털어내면 금세 예리한 빛을 발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느 휴일, 송악 가루가 눈처럼 흩날리는 유명산 계곡에 주저앉아 바람을 맞았습니다. 이름 모를 산새들이 연주하는 교향곡 속에 뻐꾸기 소리는 큰북이 되고, 바람 소리는 바이올린이 되어 나를 위로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인생의 보람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때로 산새의 노래보다 날카로웠습니다.

현장 상황을 보고하던 날, 내 건의사항이 딸 같은 여대리의 심기를 건드렸나 봅니다. 명색이 이사라는 직함을 달고도 대리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서 있는 그 자리. 대리보다 적은 월급이 내 존재의 무게인 것만 같아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정말 힘든 하루였습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아는 체’를 내려놓고 ‘말수’를 줄이며 ‘생각’마저 덮어두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제2의 인생을 열정으로 시작해보려 했지만, 눈에 빤히 보이는 회사의 문제점들을 지나치지 못한 내 의욕이 과했던 걸까요.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그 난감한 공기 속에서 나는 깨달았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요.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어떻게 구한 직장인데, 이 소중한 기회를 나의 서툰 열정 때문에 그르칠 수는 없으니까요.

첫 출근 이후 한 달.

나는 오늘 다시 발톱을 숨깁니다. 하지만 잊지 않으려 합니다. 발톱을 숨긴다고 해서 호랑이가 고양이가 되는 것은 아님을. 이 고요한 인내 또한 내 인생의 찬란한 교향곡 중 한 대목임을 말입니다. 여전히 숲을 서성이는 늙은 호랑이 한 마리가 오늘도 버텨 서 있다.(200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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