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의 세월을 걷다, 남산 곳곳에 새겨진 기억들

by 펠렉스

2026년 2월의 입춘이 지났건만, 지하철 역을 나서자마자 마주한 공기는 여전히 시퍼런 칼바람을 품고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길 걷기’ 길벗들과 함께하기 위해 도착한 을지로 3가 역. 텅 빈 거리 위로 깃발을 든 외국인 관광객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정적을 깨웁니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40여 년 전, 열정 하나로 깃발을 쫓아 세계를 누비던 나의 젊은 날이 겹쳐 보였습니다. 격세지감일까요, K-컬처의 중심이 된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며 묘한 자부심과 함께 오늘의 도보를 시작했습니다.

명보아트센터에서 마주한 청춘의 잔상

첫 집결지는 ‘명보아트센터’였습니다. 중장년층에게는 ‘명보극장’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이곳은 과거 서울의 대표적인 개봉관이었지요. 고교 시절, 세상을 다 담을 듯 거대해 보였던 극장 건물이 이제는 아담한 예술 공간으로 변해 있는 모습에 잠시 추억에 젖었습니다. 카페지기이자 고교 동창인 지수 친구의 해설을 들으며 걷다 보니, 신도빌딩 앞에 멈춰 섰습니다.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생가 터" 입니다. 나라를 구한 성웅의 탄생 지치고는 상가 건물 앞 작은 명판 하나가 전부인 모습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 평범한 골목에서 비범한 인물이 났음을 기억하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타임캡슐에 담긴 서울의 시간과 나의 땀방울

남산골 한옥마을을 지나 서울천년 타임캡슐 광장에 닿았습니다. 1994년,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하며 묻은 이 캡슐은 400년 뒤인 2394년에 열리게 됩니다. 미래 세대에게 전달될 서울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광장을 지나며 마주한 옛 중앙정보부 본관 주변은 더욱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5~6년 전 리모델링 공사에 직접 참여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119 중앙본부’라 불리던 그 건물이 이제는 몰라보게 변해 역사의 뒤안길로 스며든 모습을 보니, 도시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끊임없이 탈바꿈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남산에 새겨진 건설인의 긍지, 그리고 그림 같은 화장실

어느덧 걸음 수는 만 삼천 보를 넘어서고, 국립극장에 다다랐습니다. 건너편 자유센터 아래로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40여 년 전 동아건설 재직 시절, 제가 직접 시공에 참여하며 땀 흘렸던 현장이라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하지만 남산에 남긴 저의 흔적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회사에서 근무할 당시, 남산 속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요지 네 곳에 마치 ‘그림 같은 화장실’을 지어 올렸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조선일보에 ‘아름다운 화장실’로 대서특필될 만큼 화제였는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아도 여전히 주변 풍경과 잘 어우러져 근사하더군요.

남산의 능선을 따라 걷다 보니, 이 산 곳곳에 나의 젊은 날과 건설인으로서의 긍지가 촘촘히 박혀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고 뿌듯했습니다. 내가 지은 건축물이 누군가의 편의가 되고 도시의 풍경이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건설업에 몸담아온 제가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일 것입니다.

장충단, 나라를 위한 눈물을 기억하며

마지막 코스인 장충단 공원에 들어섰습니다. 이곳은 원래 을미사변 때 순국한 장졸들을 기리기 위해 고종 황제가 세운 제단이 있던 곳입니다. 일제강점기에 공원으로 변모한 아픈 역사를 간직한 이곳에서 유관순 열사의 동상을 향해 묵념을 올렸습니다. 친구의 해박한 설명을 들으며, 우리가 밟고 있는 이 흙 한 줌에 담긴 항일의 역사를 다시금 가슴에 새겼습니다.

추위를 녹이는 온기 한 그릇

매서운 한파 속에 꽁꽁 얼어붙었던 몸을 녹여준 것은 ‘평강삼계탕’의 뜨끈한 국물이었습니다. 겨울 트레킹 끝에 마주한 보양식은 그야말로 꿀맛이었습니다. 게다가 카페지기 지인의 넉넉한 인심으로 공짜 점심의 즐거움까지 누렸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마무리가 있을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몸은 천근만근 녹초가 되었지만 마음만은 40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온 듯 충만했습니다. 남산의 북쪽 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라, 나의 옛 기억과 이 나라의 역사가 촘촘히 엮인 ‘시간의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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