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가슴이 설레던 젊은 날의 기억을
한 가닥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나는 오래된 편지들을 다시 꺼내본다.
이유도 없이 불러내어
소주잔 하나 기울이고 싶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이 놓이는 얼굴들.
아무 일 없어도 좋은 사람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시간을 살아오며
서로를 친구라 불러왔다.
정말 열심히 살아왔구나.
이제는 누가 크게 인정해 주지 않아도
한때는 제법 큰소리도 치며
세상 한가운데 서 있다고 믿었던
시간의 여운이
아직 가슴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래서 가끔은
허튼소리라도 지르며
‘그래도 나는 여기 있다’고
스스로를 확인하고 싶은
나이가 되어간다.
세상은 늘 변화를 말한다.
멈추면 뒤처진다고,
변하지 않으면 사라진다고
다그친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친구여,
나는 이제 안다.
인생의 종반부에서
우리가 끝내 붙들어야 할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을.
얼마나 더 잘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나는 친구들에게
늘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맞추는 법을 배웠고,
배려하는 법을 배웠으며,
참는 법을 배웠다.
형제보다 가깝게 여겼으면서도
정작 친구의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지 못한 날들이 많았다.
말로는 친구였지만
마음으로는 늘
주변을 서성이고만 있었다.
잘 나간다고 착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했고,
누군가 나를 인정해 주길
은근히 바라기도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우정이 아니라
짝사랑 같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사정만 앞세운 채
주변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무례했고, 이기적이었고,
물질의 속도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한다.
늦었지만,
머리 숙여 사과한다.
세월은 빠듯하게 흘렀다.
늦게 사회에 나와
뒤처지지 않으려
한눈팔지 않고 달려왔지만
어느새 우리는
서로에게 받기만 하고
돌려주지 못한 마음들을
안은 채 서 있다.
함께 아파하지 못했던 순간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날들이
문득문득 나를 붙잡는다.
그럼에도
아무 말 없이
친구라 불러주던 너를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조용히 저린다.
친구여.
자주 만나는 것이
우정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만남이 줄어드는 만큼
마음도 멀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욕심도, 조건도 내려놓고
그저 있는 그대로
다시 손을 잡을 수는 없을까.
늦은 나이에 다시 만난 우정 앞에서
무슨 자존심이 필요하겠는가.
남아 있는 자존심이 있다면
그저 강물에 던져버리자.
새로운 관계는 늘 조심스럽다.
좋은 말만 골라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경계를 느끼며 웃어야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오랜 친구를 떠올린다.
상처도 있었고
서운함도 있었지만
그것마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인생이 끝나고
남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몇 장의 사진과
몇 줄의 기억,
그리고 짧은 인사 들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만큼은
서로의 생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는 쪽을 선택하며
살고 싶다.
우리 안에는 늘
두 마음이 공존하지만
어느 쪽이 이길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친구여.
부디 건강하자.
더 늦기 전에
서로에게
조금 더 따뜻해지자.
말없이 곁에 있어 주던
그 시간들처럼,
남은 삶의 끝자락에서도
우리는
좋은 친구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시간이 지나도
이름을 부르면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으로.
— 당신의 오랜 친구, Fel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