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으로 채우는 새날,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소서
또, 또, 그리고 다시 한 해를 살아냈습니다. 돌이켜보면 삶의 집착을 다 내려놓지 못한 채,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참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세월이었습니다. 인생 칠십은 70km로 달린다더니, 어느덧 산수(傘壽)를 바라보는 길목에서 지난날을 반추해 봅니다
한때는 예기치 못한 삶의 시련과 마음 같지 않은 세상일에 부딪히며, 뼛속까지 스며드는 허전함과 강박에 잠 못 이루던 밤도 있었습니다. 누구나 인생의 겨울을 지나듯, 저 또한 서운한 마음과 연연하는 생각들에 갇혀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아온 듯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무거운 마음을 흐르는 강물에 던져버리려 합니다."좋은 세상 두루두루 구경 잘하지 않았나"라는 친구의 무심한 한마디가 이제야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좋은 길, 쉬운 길을 놔두고 때로는 험한 길로 돌아왔던 것마저도, 실은 주님이 예비하신 풍경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합니다.
후회와 원망, 헛된 욕망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내 나이와 상관없이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우리가 머무는 이곳에 참된 안식이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병오년(丙午年) 설날 아침, 간절히 기도합니다.
나의 가족에게: 부족한 사랑에도 묵묵히 곁을 지켜준 가족의 건강이 대들보처럼 든든히 서게 하소서.
세상의 이웃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 주었던 인연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며, 이제는 남은 지혜와 여유를 나누며 살게 하소서.
나 자신에게: 다가올 일을 불안해하기보다 소박한 감사로 맞이하게 하시고, 훗날 "참 잘 살았다" 미소 지으며 말할 수 있게 하소서.
남산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새 생명의 지저귐은 정겹습니다. 주님의 가호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단단하고 따뜻할 것입니다.
2026년 설날 아침
주님의 은총 안에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