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음 끝에서 네 이름을 부른다

by 펠렉스

“오늘 밤, 문득 떠오르는 친구 한 사람을 조용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친구야,
한참을 망설이다가
네 번호를 눌러보았다.

신호음이 길게 울리더구나.
받지 않는 건지,
정말로 번호가 바뀐 건지
알 수는 없었다.

문득,
바뀐 것은 전화번호가 아니라
내 고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지켜 내려
괜히 단단해진 자존심.
그게 뭐라고
친구라는 이름 앞에서도
한 발 물러서지 못했는지.

서운함은 잠깐이었는데
자존심은 오래 남더구나.

이제 우리 나이
칠순을 바라보는 세월 아니던가.
살 만큼 살았고
부릴 만큼 부린 욕심이었거늘
끝까지 붙들고 있을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감싸 준다는 것,
위로한다는 것,
괜히 모른 척 넘어가 주는 것.
그게 다
친구 사이에 남겨 둔 마지막 예의였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구나.

지켜 낸 자존심이
내 곁에 무엇을 남겼던가.
이겨 놓고도
허전했던 기억뿐이었지.

친구야,
고향 같은 친구야.

남은 세월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짧을지도 모른다.

억지로라도
용서하지 못할 일은 용서하고
이해되지 않던 마음은
그냥 그렇겠거니
덮어 두면 어떻겠는가.

해묵은 감정이야
쉽게 사라지진 않겠지.
그래도 한 번쯤
모른 척 흘려보내 보세.

언젠가 우리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옛사람들 이름을 더듬으며
“그 친구 한번 보고 싶구나…”
그리 말하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는
후회 없이 웃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친구야,
그리운 친구야.

마음이 동하는 날
소주 한 잔 하세.
밤새워 말하지 않아도
마주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
다 이해되는 사이,
그게 우리 아니던가.

다른 사람은
하룻밤 지나면 잊히지만
친구는
첫사랑처럼
문득문득 아른거리는 법이더라.

신호음이 길어지네
다음에,

다음에 또

걸어 보마.

모쪼록,
건강하게 지내시게.

— 어느 봄날 설합 속 지난 글을 끄집어내어
잠실에서의 뒤척이던 밤에 —

“당신은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먼저 연락한 날이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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