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혼자, 그러나 여전히 걷고 있는 이유

일흔다섯의 생존 보고서

by 펠렉스

오늘도 눈이 떠졌습니다.
반갑지 않은 하루였지만, 나는 또 버티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살아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걷습니다.

일흔다섯의 생존 보고서

어느덧 일흔다섯, 나는 가끔 오래된 일기장을 펼쳐봅니다.

2011년의 어느 날, 그 안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하루 종일 전화 한 통, 문자 한 건 오지 않는 철저한 혼자.”

그때의 나는 스팸 문자 하나에도 마음을 기대며,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착각으로 외로움을 겨우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5년이 흐른 지금, 나는 여전히 ‘철저한 혼자’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때의 고독이 서툴고 가벼운 청승이었다면 지금의 고독은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진 조금 더 묵직하고 깊은 그림자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요즈음은 텔레비전 뉴스 보기조차 겁이 납니다.

세계 곳곳의 전쟁 소식으로 마음은 이미 뒤숭숭한데, 세상의 시선은 더 차갑게 가슴을 파고듭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충은 가슴속 깊은 곳에 멍에처럼 남겨두고, 나는 오늘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홀로 노년을 지키고 서 있을 뿐입니다.

무엇이 더 나은 삶이고, 무엇이 더 행복한 삶일까.

가끔은 깊은 잠에 들듯, 아무것도 모른 채 건너가는 마지막이 가장 조용한 끝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무엇이 더 나은 삶이고, 무엇이 더 행복한 삶일까.

가끔은 깊은 잠에 들듯, 아무것도 모른 채 건너가는 마지막이 가장 조용한 끝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오늘도 어김없이 눈이 떠집니다.

현장 대기로 지낸 지 벌써 다섯 달. 눈을 떠도 당장 향할 곳이 없다는 사실은 가슴 위에 작은 돌 하나를 얹어 놓은 듯 하루를 무겁게 시작하게 만듭니다.

새로운 길을 택하기에는 세월이 먼저 앞을 가로막고, 그렇다고 이곳을 떠나자니 남아 있는 생계의 끈마저 놓아버리는 것 같아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날 선 바람 같은 아내의 말을 지나며 하루를 건너다보면, 가끔은 길이 아니라 가시밭을 걷는 기분이 듭니다.

거실에는 아픈 딸이 누워 있고, 그 곁을 지키는 아내의 시간은 이미 십수 년을 훌쩍 넘었습니다. 몇 해만 지나도 버겁다 할 시간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저 내 몸 하나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고 있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남은 역할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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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다시 현장의 부름을 받을지 몰라 평일에는 올림픽공원을 따라 만 보를 걷고, 토요일이면 친구들과 근교 산천을 이만 보쯤 걷습니다. 이 걸음은 단순한 건강 관리가 아닙니다.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기 위한 조용한 버팀입니다. 몸은 길 위를 돌고 있지만 마음은 아직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매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안부보다 부고가 더 익숙해집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씁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갈 ‘신변잡글’일지라도, 나에게는 살아 있음을 알리는 조용한 신호입니다.

“나 아직 살아 있네. 여전히 걷고 있고, 여전히 버티고 있네.”

그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때로는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일고, 아내의 시선이 송곳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살아 있기에 느끼는 감각이라 생각하려 합니다. 모든 것이 무뎌지는 날이 오기 전에, 이 작은 통증들마저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래도 이번 봄까지는 조금 더 버텨보려 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는 이 자리,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으려 합니다. 비바람 속에서도 제자리를 지키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처럼, 그저 묵묵히 이 시간을 지나가 보려 합니다.

철저한 혼자이면 어떠합니까.

나는 오늘도 걸었고, 이렇게 살아 있음을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오늘 하루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2026년의 봄도 그렇게 조용히 시작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알았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버티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무너지지 않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이 글은 잘 쓰기보다, 버티며 남긴 기록에 가깝습니다.
읽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노년의 삶, #에세이, #가족,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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