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술병(2)

by eunice 유니스

동화에는 착한 사람들만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너무 비현실적이고 재미도 없으니까 오늘은 나쁜 사람 이야기로 시작해 볼게.


어느 전래동화에나 사또는 다들 욕심이 많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더라구.


여기 마을 사또도 그랬어.


마을 사람들 배곯아할 때에도 곳간 문을 오히려 걸어 잠그고 나 몰라라 했던 인간이지.


어느 날, 주모가 술을 팔아서 마을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주었다는 이야기, 어느 스님이 신비한 술병을 주모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듣게 되었지.


술병이 탐이 난 사또는 어떻게 하면 그 술병을 빼앗을 수 있을까 궁리했어. 그리고는 주모를 어서 잡아오라고 명하였지.


" 네, 이년! 마을이 흉작이라 먹을 쌀도 없는데 어떻게 술을 빚어서 팔았단 말이냐? 옆 마을에서 도둑질한 게냐? 그럼 넌 도둑년이렸다! "


포박당하여 끌려온 주모는 억울한 눈물을 흘리며 자초지종을 다 아뢰었어.


" 세상천지에 물을 술로 바꾸는 술병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니가 나를 농락하는구나. 그게 진짜라면 너는 사람이 아니라 마술을 부리는 귀신이 틀림없다. "


사람인지 귀신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곤장 50대를 치게 하고 감옥에 가두고, 술병은 증거물이니 자신이 가지고 있겠다 하며 빼앗아 갔지 뭐야.

마을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화가 났지만, 함부로 나설 수 없어서 끙끙 속앓이만 하고 있었지.


그러던 어느 날, 한양에서 높으신 분이 치료차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으시다가 이 마을까지 오시게 되었어.


워낙 세도가 집안이라 딸려 오는 식구들도 많았지.


사또는 이 참에 높으신 분 눈에 들어서 이 시골 바닥을 떠나 한양으로 가고 싶어 했지.


그래서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성대한 잔치를 열기로 한 거야.


신기한 술병에 담긴 술맛이 기가 막히다는 것을 안 사또는 하인들에게 그 술병에 물을 넣어서 술을 만들어 오라고 시켰어.


부엌에서 일하는 여종이 술병에 물을 담으려고 보니 더럽게 뭐가 묻어 있는 게 아니겠어? 그래서 술병을 소독도 할 겸 뜨거운 물에 깨끗하게 술병 안팎을 닦아내었지.


깨끗하게 닦여진 술병에 찬물을 담아 손님상에 내었어.


사또는 맛이 참 좋은 귀한 술이라며 한껏 자랑하면서 술을 따라 손님들에게 나누어 드렸지.


술맛을 본 손님들은 모두 하나같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한 번 더 맛을 보고는 일제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


깜짝 놀란 사또는 영문도 모른 채,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져서 돌아가는 손님들 배웅하느라 정신이 없었어.


나중에서야 술이 아니라 물이었던 것, 술병에 물을 넣어도 술로 바뀌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


화가 잔뜩 난 사또는 또 주모를 끌어내오라고 했어.


" 너는 도둑년도 귀신도 아니다. 너는 나를 골탕 먹이려고 거짓말을 해댄 사기꾼이었구나. 이 망할 년! "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이성을 잃은 사또는 곤장 100대를 치라고 명했어.


건강한 남성도 곤장 100대는 중벌인데 감옥에서 이미 약해질 데로 약해진 여성이기에 곤장 100대는 곧 사형이나 마찬가지였어.


이 말을 엿듣던 여종은 몰래 빠져나와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어.


분노한 마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관아로 쳐들어갔지.


놀란 사또는 반역죄를 물어 몽땅 잡아 쳐 넣으라고 명령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머릿수가 훨씬 많았어.


자칫 폭력사태로 벌어질 수도 있는 찰나, 허름한 차림의 노(老) 스님이 앞으로 나가시더니 사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


" 사또의 판결은 앞뒤가 맞지 않소. 처음에는 물을 술로 바꾸는 술병이 어디 있냐더니, 이제와서는 왜 술병이 물을 술로 바꾸지 않냐며 화를 내니... 사또는 처음부터 신기한 술병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말 밖에 되지 않소. 남의 물건을 빼앗으려는 사또가 도적이지 뭐겠소? 도적! " 하시며 호통을 치셨어.


사또는 너무 화가 났지만 마을 사람들이 무서워서 주모와 함께 모두를 그냥 돌려보냈어.


이 사건은 잔치에 초대받았다가 홀대받았다 여겨 기분 상해 돌아간 지체 높으신 분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고, 결국 사또는 바다 건너 외딴섬으로 좌천되었어.


그리고는 이 마을에는 현명하고 자애로운 새 사또가 부임해 왔지.


그 이후로 마을 사람들이 노스님을 찾아 암자에 올라가 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이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고 지금도 이 마을에 가면 마을의 영웅인 주모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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