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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유니스 Dec 29. 2021

생산하는 인간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은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에 대한 질문들이 많아져서

책을 많이 읽고 싶었다.


그래서 다양한 책들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것,

책을 보는 것은

생산적인 활동이 아닌

소모적인 행위처럼 느껴져서였다.


정규직이긴 하나

언제 잘려도 이상할 것 없는 불안정한 직장과

동종업계에서 재취업이 힘들 만큼 먹어버린 나이


그래서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여

무언가를 준비해 놓아야 한다는

강박적 스트레스에

늘 나를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늘 ‘생산적인 인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산적이지 않은 행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불안했고,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책을 읽을 거면

주식, 부동산, 경제에 대한 공부를 해보라고 한다.


그러나, 난

황금빛의 신비로운 고대 이집트 문화가 재미있고,

동서양의 신화를 비교하며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고,

카레향 가득 풍기는 인도 여행기가 재미있고,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프랑스 빵 이야기가 재미있고,

괴팍한 쇼펜하우어가 삶은 곧 고통이라고 말하는 철학도 재미있고,

정의란 무엇이며, 이 시대의 가난의 문제와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사회에 대해 통찰하는 사회 분석학도 재미있고,

프리다 칼로, 수잔 발라동과 같은 여성 화가들의 선 굵은 이야기들도 좋아한다.


생산하는 인간이기 이전에

삶을 충만하게 누리는 감각적 인간,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 찬 인간이고 싶다.


그러나 세상은

생산하는 인간이 먼저 되어야만

삶을 충만하게 누릴 자격이 주어진다고 말하는 듯하다.


평생 열심히 노오~력 해서 노년에 건물주님이 된 분이 계신다.

이제는 쉼과 삶을 누리셔도 될 법한데도

건물 청소와 함께 쓰레기로 나오는 종이상자까지 모아 푼돈이라도 모아야만

자신의 존재감과 여전히 쓸모 있는 인간으로 인정받기 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돈 버는 기계처럼 살아온 사람은

삶을 누릴 자격은 주어 졌을지 모르지만

삶을 충만히 누리는 방법은 모르는 것만 같아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  우리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야 합니다.

   탐욕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일합시다.

   목숨 부지하려 버티는 게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축배를 들기 위해

   춤추기 위해

   노래하기 위해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


- 영화 ' 지미스 홀 ' 중에서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으려면,

행복을 먼 미래로 유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려면

나의 현재와 미래가 불안하지 않다는 믿음을 사회가 보장해 주어야만 한다.


아무리 현재를 열심히 살아도

미래가 불안하다면

그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 외쳐야 한다.

우리를 살게하라고...


생산하는 인간임을 증명하기에 앞서

지금 이 땅 위에서 살아 숨쉬는 존재로써 가져야 할 자유와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고...




사진출처 : 영화 ‘지미스 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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