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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유니스 Dec 30. 2021

깔때기 이론


혈기왕성하던 청년 시절

그때는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하다보면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결국엔 이성 이야기로 이야기의 흐름이 흘러가곤 했다.

그래서 우린 이런 걸 두고 깔때기 이론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비혼주의가 흔치 않았고

여성의 결혼적령기도 20대 중후반이던 시절이었기에

제한된 시간속에서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조급함과 절박함때문에

우리들의 대화는 늘 언제나 연애와 결혼이 주제였던 시절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친구들과 함께 결혼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출산과 육아를 하다보니

30대에 나눴던 이야기들은 주로 출산과 육아 정보의 교류가 목적이 되곤 했다.


아이들이 청소년기가 되는 40대가 되니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아이들 교육이야기,

그리고 자녀양육과 부모봉양, 내 집 마련에 돈 쓸일이 많은 중년이다보니

요즘엔 주식, 아파트분양, 보험 등 돈에 관련된 이야기들로 주제가 모아지곤 한다.


예상키로는 50대에는 은퇴와 새로운 일거리에 대한 이야기,

60대에는 아이들 결혼과 손주 돌봄 이야기,

70대 이후에는 건강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로 주제가 모아질 것 같다.


이야기의 주제들이 생의 주기에 맞춰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옳은 일이다.


그런데 요즘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를 살펴보면

더 이상 깔때기는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 주제가 한결같다.


40대의 이야기 주제는 어딜 가도 1순위는 돈이고 2순위는 교육이다.


‘대화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 이름처럼

대화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경험을 하기가 힘들다.


40대의 대화는 그저 돈과 교육에 대한 정보 교류,

그리고 고단하고 지난한 자기 삶의 토로 정도의 역할만 할 뿐이다.


먹고 사는데 온 에너지를 쏟아야만 하는 현대 사회가

인간을 참 단순하고 기계적인 존재로 만들어 가는 것 같아 속상하고 서글프다.


깔때기가 필요했던 그 시절의 대화가 그립다.


대화가 단순히 정보교류와 심리상담의 역할 뿐만 아니라

종교와 철학, 미술과 음악 등 인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가운데 희열을 느껴보고 싶다.


나는 꿈꾼다.

일용직 노동자도 피카소와 카뮈와 니체를 논하는 세상을…


비정규직 노동자가 인문학과 예술을 논하면 비웃는 세상은 참 나쁜 세상이다.


고등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저급하고 단순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요즘이다.




사진출처 : swindo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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