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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유니스 Jan 31. 2022

하양의 기억

어려서는 하얀색을 좋아했다.


늘 혼자 집 안에서 놀아야 했던 어린 시절

그림 그리기로 심심함을 달래었던 스케치북의 하얀 느낌,


할머니 따라 시장에 가면

늘 하나씩 얻어먹곤 하던

큼지막하고 하얀 눈깔사탕,


별 반찬이 없어도

따스한 흰쌀밥에 마가린과 간장 한 스푼이면

충분했던 밥상,


“뭐 먹고 싶어” 물어보시는 할머니께

“칼국수요~”라고 답하면,

귀찮은 내색 하나 없이

새하얀 밀가루를 꺼내어 반죽을 하시고

밀대로 넓게 밀고 접어 칼로 쓱쓱 썰어 국수가락을 만드시고

진한 멸치육수에 끓여주시던

우리 할머니 손맛 가득한 손칼국수,


하도 뽑아서 횅~해진 머릿속이지만

가렵다 하시며 손녀딸에게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머리를 맡기시던

할머니의 새하얗다 못해 은빛 반짝이던 머리카락,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던 할머니를 도와

커다란 대야에 빨래를 넣고

바지를 허벅지까지 접어 올리고 들어가

꾹꾹 밟다 보면 뽀글뽀글 올라오는 새하얀 거품들,


다듬잇돌 위에 정갈하게 올려진

새하얀 이불 소창을

할머니와 마주 앉아

박자에 맞춰 신나게 두들기던 다듬이질,


특별히 성당에 가면

내가 좋아하는 흰색들이 참 많았다.


성당 입구에서부터 두 팔 벌려 맞아주시는

하얀 성모 마리아상,

하얀 두건을 쓰시고 환희 웃으시던 수녀님,


할머니 따라 쫄래쫄래 다니던 꼬맹이도

머리 위에 새하얀 레이스 미사포를 얹는 순간

신비로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차분히 신의 영역으로 순간 이동하던 기억,


그렇게 하양은 나에게

어린 시절 순수하고 행복했던 순간의 색이었다.



*** 앞으로 '색에 대한 잡념들'매거진은 티스토리 달달 디자인 연구소 daldal design laboratory 에서 이어갑니다.

 https://daldal-desig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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