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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유니스 Feb 01. 2022

하양보다는 검정

어린 시절엔 하양이 좋더니

불혹을 훌쩍 넘겨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을 향해 가는 지금은

하양보다는 검정이 좋다.


살아온 세월이 고되어서인지

티끌 없이 깨끗한 하양은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


작은 얼룩도 쉽게 보이는 하얀 옷은

사람들로 부대끼는 출퇴근 시간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온종일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는 힘과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시각적 언어로 말하는 듯하고,


모든 빛을 반사시키는 하양은

인정머리 없고 도도하고 거만한 사람처럼 느껴져서인가보다.

 

대신 검정은

모든 빛을 흡수하는 색으로

자기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끌어안는 대인과도 같다.


그리고 얼룩이 쉽게 감춰지는 검정 옷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매우 실용적이고

바쁜 아침에 어떻게 칼라 매칭 할지 고민할 필요 없이

상하 올 블랙으로 입고 출근해도

패션 테러리스트란 소릴 듣지 않아도 되니

이 시대에 바쁘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

블랙만 한 칼라는 없는 듯싶다.


그리고 하양이 결혼식에서 신부의 정결함을 상징하는 색이라면

검정은 장례식에서 함께 울어주는 색이다.

신부의 하양은 정결함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 같아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대신 죽은 이를 애도하는 검정은

너의 슬픔에 내가 함께 한다는 무언의 공감과 연대의식을 느끼게 해 준다.


때로 하양은 자신의 정결함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다른 모든 빛을 혐오와 비난으로 반사시키곤 한다.

그럴 때면 난 오히려 검정이 더 순수하게 느껴진다.

삶의 찌든 때도 부끄럽지 않게 감싸 안아주고,

혐오와 비난이 아닌, 공감과 포용으로

모든 빛을 품어주는 검정이

난 더 좋다.



*** 앞으로 '색에 대한 잡념들'매거진은 티스토리 달달 디자인 연구소 daldal design laboratory 에서 이어갑니다.

 https://daldal-design.tistory.com



이미지출처 : https://pin.it/uQtcC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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