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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필노트spilot Jun 10. 2024

김연경, 김연아, 장미란.. 그리고 류은희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류은희의 유럽제패의 순간. 경기 후 현장 인터뷰.

"오늘 한 경기로 저를 평가하고 싶지는 않고, 한 시즌 제가 잘해서 얻은 것이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것으로 너무 행복합니다. 여기에 소속되어서 우승을 했다는 게 저에게 가장 뜻깊은 것 같아요."
 
- 6월 3일(이상 한국시간) 유럽 챔피언스리그 EHF 파이널4 우승 직후 류은희 선수 인터뷰 中.


사진 출처: 오제형

류은희가 꿈에 그리던 유럽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류은희의 소속팀 헝가리 교리 아우디 ETO KC는 3일(한국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MVM Dome에서 열린 독일의 SG BBM 비에틱하임과의 2024 유럽핸드볼연맹(EHF) 챔피언스리그 여자부 파이널4 결승에서 30-24로 승리하며 유럽 최강자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한국 선수로는 최초의 기록입니다. 과거 대 선배인 우생순의 주인공 오성옥이나 전 세계 가장 잘하는 선수였던 남자부의 윤경신도 팀의 운명과 함께하는 구기종목 특성상 유럽 무대 우승은 이루지 못했었기 때문에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류은희 선수를 취재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자리였습니다. 


이미 그녀의 재능은 2012 런던 올림픽 때부터 유럽에 알려졌고 그녀를 영입하려는 팀들이 많았는데, 첫 해외 진출이었던 2019년 프랑스 '파리 92'와의 인연은 서로에게 불운하게도 코로나19라는 역병을 맞으면서 이별했습니다. 이후 유럽 무대에서 더욱 강력한 팀인 교리 아우디 ETO KC와 인연을 맺은 것은 어쩌면 그녀에게 있어 크나큰 행운이었을지 모릅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끝없는 발전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 후 시상식을 마친 류은희 선수를 믹스트존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류은희와의 일문일답.


Q: 오늘 경기를 짧게 평하자면?

A: 오늘 경기에서는 제가 많이 부족했는데, 동료들이 많이 도와줘서 쉽게 이길 수 있었던 것 같고, 오늘 한 경기로 저를 평가하고 싶지는 않고 한 시즌 제가 잘해서 얻은 거니 그걸로 만족하고 그걸로 너무 행복하고 여기에 소속되어서 우승을 했다는 게 저에게 뜻깊은 것 같아요.


Q: 파이널4 첫 번째 해, 두 번째 해와 차이점이 있었는지?

A: 오히려 첫해가 더 과감하고 용감하게 했던 것 같고, 오히려 올 해가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다 마지막이고 하다 보니 반듯이 뭔가 해야겠다는 압박감에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Q: 우승 후 많이 울었는데, 당시 감정은?

A: 어렸을 때부터 꿈이 유럽에서 경기하는 것이었고, 챔피언스리그 나가서 메달 따는 거였는데 지금 34세가 되어 이뤄서 감정이 많이 격해졌던 것 같고 1년 내내 집에도 못 가고 (웃음) 타지에서 고생해서 얻어낸 것이고, 또 제가 이 메달을 가질 자격이 된다고 동료들이 이야기해 주니 그 부분에서 울컥한 것 같다. 


Q: 대표팀 합류로 휴가도 반납해야 할 것 같은데?

A: 어쩌다 보니 애들은(소집된 대표팀) 지금 오는 중이고, 저도 팀 우승 행사를 하고 바로 합류하기로 해서, 바쁘지만 또 그것도 하나의 제 몫이고 제가 해야 할 일이니까 투정 부릴 수는 없죠. (웃음)


Q: 이른 감이 있지만 고참으로서 올림픽을 어떻게 준비할 건지?

A: 아직 (대표팀) 명단도 다 확인을 못했는데 대표팀과는 계속 소통하고 양해를 구하면서 파이널4 준비에 포커스를 맞췄기에 지금으로서는 일단 가서 집중해봐야겠어요. 선수들이 많이 바뀌었다 들어서 항상 새롭게 팀을 꾸려야 된다는 게 쉽지 않고 오늘 경기에서 보았듯이 (유럽 선수들 수준이 높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제가 할 수 있는 역량 최대한 끌어내서 선수들이 잘할 수 있게끔 다시 처음부터 만들어 가야죠.  


Q: 오늘 한국은 새벽이지만 지켜본 팬분들이 있을 텐데 메시지 전한다면?

A: 일 년 내내 응원 보내주셔서 감사하고, 비록 오늘 경기에서 잘 못해서 저도 아쉽고 속상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팀이 이기는데 기여할 수 있었고, 많이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 연락 보내주시고 멀리서 VPN으로 우회하셔서 보시느라 고생 많으신데(웃음) 항상 감사드립니다. 


어릴 적부터 꿈에 그리던 우승컵을 들어 올린 류은희선수. 사진 출처: Alexandar Jorovic


현재의 챔피언스리그 포맷이 신규 도입되기 전까지의 기록을 포함하면 이 '교리'라는 팀은 이제 유럽 대항전 10회 파이널리스트이자 6회의 우승 경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팀의 구성원인 쟁쟁한 선수들이 즐비한 교리이기에 선발과 후보군의 구분은 사실 언제나 모호하기도 하죠. 선수 면면만 살펴보아도 국제핸드볼연맹 (IHF) 올해의 선수 출신인 스티네 오 프테달(노르웨이)을 비롯해 거의 대부분이 자국의 국가대표로 구성이 되어있기에 올스타 군단이 따로 없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몇몇을 제외한 교리 선수 거의 전원이 파리로 갈 준비를 바로 시작할 겁니다. 그 건 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두 번의 유럽 전지훈련을 계획하고 있는 우리 류은희 선수도 마찬가지겠죠. 


이런 대단한 선수들이 즐비한 곳에서 류은희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헝가리 무대에 데뷔했고 벌써 세 번째 시즌을 온전히 치러냈습니다. 2023-2024 시즌은 부상으로 잠시 팀을 떠나 있던 기간도 있었기에 염려도 됐지만 챔피언스리그 라운드별 '베스트 7'에도 두 차례 선정되는 등 시즌 중 팀에 중심적 활약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류은희 선수의 인터뷰 속에 '오늘 부족함에도'라는 겸손함을 통해, 그리고 '단 한 경기로 저를 평가하지 않겠다.'라는 자부심을 통해 이 선수는 특별히 더 성숙한 선수의식을 가졌으며, 왜 이 선수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감히 이해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파이널4 MVP이자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노르웨이 출신의 교리 센터백 스티네 오프테달이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류은희에 대해 "우리는 언제나 서로 이해하는 관계였고, 그녀는 가장 똑똑하면서도 겸손함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다.(I think she has one of the smartest humble hands.)"라고 말했던 부분과도 그녀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 일맥상통하다 생각합니다.


하루 전 준결승전 중 투입 대기 중인 류은희(좌)와 오프테달(중). 사진 출처: 교리 구단 홈페이지

배구계에서 메시와 같은 존재라는 김연경, 우리나라 빙상 최고 영향력이었던 피겨퀸 김연아. 첫 LPGA 투어 우승자인 박세리, 그리고 귀감이 되는 겸손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장미란까지 과거 우리나라 여자 스포츠선수들을 돌아볼 때 국제적으로도 우수한 선수들이 참 많았습니다. 저는 류은희 선수가 세운 업적이 그들이 세운 업적에 근접할 만큼 크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핸드볼이라는 종목 자체가 국내에서 영향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기에 대중들에게 그 위대한 업적이 소개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크고, 환상적인 경기장에서 펼쳐진 월드클래스들의 경기들을 혼자만 봐서 속상하기도 합니다. 팬들이 중계방송으로 접근하기 어려워 VPN으로 우회해서 본다는 것도, 이런 큰 경기에 취재진 한 명 없다는 것도 제 발을 부다페스트로 향하게 했던 이유였습니다. 


이번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구기종목이 바로 '여자핸드볼'입니다. 핸드볼 인구수가 줄어들면서 우리가 세계를 호령했던 90년대, 2000년대와 같은 전력은 더 이상 아닌 것도 사실이지만, 대한핸드볼협회로써는 중계방송으로 국민들의 관심사를 유입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봅니다. 여러분도 이번 여름 시원한 팀 스피릿을 느끼기 원하신다면 류은희 선수가 출전할 파리올림픽 핸드볼 경기 어떠실까요?


6/3일 류은희 믹스트존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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