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친구의 의미

by 시월의 귤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 있다. 과연 친구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어떤 사람에게 친구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그렇다고 할 것이다. 물론 내게도 친구가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친구라고 믿는 존재가 있다. - 이렇게 표현하는 까닭은 친구라고 생각하는 나와 반대로 상대는 나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그 존재와 연락을 주고받고, 밥을 같이 먹고, 같이 놀고,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우리나라에서 보통 친구 관계는 동갑으로 정립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나이에 따라 집단과 문화가 형성되는 경향이 강하다. 누군가에게 친구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대게는 같은 나이의 사람을 생각한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 같은 학년에서 맺은 인연을 친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나도 동갑인 사람과 맺는 관계를 친구라고 여겼다. 적어도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나의 세계에서 친구는 동갑뿐이었다. 동갑이 아닌 사람은 친구라기보다는 아는 사람, 즉 지인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동갑이 아닌 사람에게는 나만의 벽을 세웠고, 그들이 나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이후 친구를 형성하는 벽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대학교에서는 동갑뿐만 아니라 연상, 연하의 사람들이 같은 학년이 되어 생활하게 되었다. 함께 하는 시간과 경험이 늘어감에 따라 그들도 친구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친구라는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친구관계는 동갑이라는 등식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때 비로소, 내가 가지고 있던 친구라는 관념은 나이를 극복하여 조금 더 확장됐다. 나이가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친구의 정의에서 동갑을 허물면서 친구관계는 더 다채로워졌다. 동갑 무리에서의 경험과 느낌도 좋지만, 다른 나이를 가진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새로움이 나를 들뜨게 했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동갑이 아니어도 친하게 지낼 수 있었고, 시간을 들일수록 그 관계는 더욱 깊어짐을 느꼈다.


내 사전 속 친구의 정의는 직장에 들어가면서 또 한차례 변화에 직면했다. 성인이 된 이후부터 직장인이 되기 전까지 친구는 나이에 관계없이 오랜 시간 친하게 사귄 존재였다. 나이라는 제약은 깨졌지만 시간이라는 제약이 존재했다. 즉, 이때까지 내가 친구라고 느끼는 사람은 적어도 3년 이상이라는 시간이 담보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직장에서 만난 사람은 시간이 친구관계를 정립하는데 중요하지 않음을 일깨웠다. 나보다 형이었던 어떤 사람은 사회 초년생인 나를 허물없이 대했다. 나이 차이가 꽤 있었기 때문에 수직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내게 수평적인 관계의 경험을 선사했다. 형이 직장을 떠나기까지 반년동안 우리는 3년 이상의 시간보다 더 질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 다른 직장을 다니는 지금도 간간이 안부를 주고받고 만나서 정을 나누는 사이이다. - 꼭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도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오랫동안 사귄 친구보다 더 가깝게 느꼈다. 그 형과 친구관계를 맺으면서 시간이라는 조건을 내 사전에서 지웠다.


삶에서의 경험이 친구의 정의를 자연스럽게 변화시키기도 했지만, 스스로의 질문과 답을 내리는 과정을 통해 의미를 바꾼 적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라는 명제이다. 그러나 이 명제는 너무나도 쉽게 무너졌다. 오랫동안 공들인 시간과 노력이 무색하게 단 한순간의 사소함만으로도 깨져버릴 수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깨질 관계는 깨져버렸고, 별다른 노력 없이도 맺어질 인연은 맺어졌다. 영원한 친구는 없었다. 대신 지금 이 순간의 친구만 있다. 현재의 친구가 미래의 친구로 이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친구라는 관계가 맺어지는 것에는 내 의지와 노력뿐만 아니라 타이밍, 운, 성향, 가치관 등의 여러 가지 불가항력적인 요소가 작용한다. 그렇기에 영원한 친구 관계에 대해 집착할 필요도 없고, 자신을 잃으면서까지 애쓸 필요도 없다.


또 하나의 명제는 '직장동료는 동료일 뿐'이라는 명제이다. 직장의 인연도 동료관계를 넘어 친구로 발전할 수 있다. 나에겐 위에서 언급한 형이 그랬고, 최근에 만난 다른 인연도 있다. 물론 직장에서는 업무적으로 효율과 완벽을 추구하기에 정을 쌓기가 쉽지 않다. 정을 나누는 일은 때론 비효율적이고 실수와 용서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돈을 벌어야 하는 곳에서는 이런 실수, 비효율 따위는 잘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직장에서 정을 쌓는 건 어렵다. 그럼에도 분명 친구를 사귈 수 있다. 벽을 세우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지만, 그 벽에 작은 문이라도 달면 누군가는 들어올 수 있다. 결국 사람 마음에 달린 일이다.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면 단순히 동료의 관계를 넘어서 친구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내가 친구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 결과이다. 어학 사전에서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 친구이다. 유의어로는 벗이 있는데, "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즉 마음의 거리가 가까운 사이가 친구인 것 같다. 친구의 의미에 대한 나의 고민도 결국 마음의 거리라는 뜻으로 압축된다.


마음의 거리가 가까운 사이. 지금까지의 끝없이 고민한 결과 이 단순한 문장으로 정의를 마친다. 가깝다는 건 교류가 활발할 가능성이 높다. 즉,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교류를 활발히 한다면 마음은 가까운 사이인 것이다. 친구의 의미에 대한 내 정의는 앞으로 또 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나이, 시간, 직장, 노력에 관계없이 남을 위하는 마음, 가까움을 유지하는 관계가 친구이다.






작가의 이전글인간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