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rope Inc: 유럽, 정말 움직일까?

by 윤세문

2026년 1월 20일, 다보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연설이 울려 퍼졌다.


그 순간, 1년 전 다보스가 떠올랐다. 2025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간인 플레너리 룸. EU 집행위원장이 직접 무대에 올라 ‘28번째 제도(28th Regime)’라는 다소 낯선 개념을 꺼냈다. 그 장면은 단순한 정책 발표라기보다는, 유럽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일종의 선언처럼 보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메시지 말이다. 나는 그날 꽤 고무된 마음으로 노트를 채웠다. 복잡한 레드테이핑을 걷어내고 유럽을 비즈니스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그녀의 선언은, 스타트업들이 스케일업 단계에서 더 이상 미국으로 떠나지 않아도 되는 미래를 상상하게 했다.


WEF.jpg 작년 다보스에서 정신없는 한 주를 보내고 마지막날 찍은 사진

Ursula Von Der Leyen의 2026년 다보스 연설: https://www.youtube.com/watch?v=yJswl31j53U


그동안 내가 만난 수많은 유럽 기반 스타트업 CEO들은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 왔다. 국가별로 파편화된 시장(fragmentation), 과도하고 상이한 규제 체계, 경직된 노동시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환경에 대규모로 베팅하기를 주저하는 투자자들. 이 모든 요소가 겹치며 유럽에서는 스케일업 단계의 펀딩 자체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 결과, 많은 기업들이 미국으로 본사를 옮기거나, 설령 유럽에서 성장하더라도 IPO는 미국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28th Regime은 단순한 제도 개편이 아니라, 유럽이 스스로의 약점을 인정하고 꺼내 든 카드처럼 보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녀가 이 구상을 ‘Europe Inc’라는 훨씬 더 구체적인 이름으로 다시 꺼내 드는 장면을 보며 반가움과 동시에 묘한 의구심이 들었다. 유럽은 지난 1년간 과연 얼마나 전진했는가.


2025년은 유럽에게 결코 여유로운 한 해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취임 이후, 유럽은 경제 개혁보다 생존에 가까운 과제들에 집중해야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 보편적 관세(Universal Tariffs)에 대한 위협, 그리고 최근의 그린란드 매입을 둘러싼 외교적 긴장까지—유럽은 경제적 효율성보다 ‘지정학적 생존’과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더 시급한 문제 앞에 서 있었다.


이 맥락에서 28th Regime이란 무엇인가.

EU는 현재 27개 회원국이 각기 다른 회사법, 파산법, 노동법, 세제 체계를 갖고 있다. 28th Regime은 이 위에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28번째 단일 법적 관할(jurisdiction)’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특정 국가의 법이 아니라, EU 차원의 단일 규칙을 선택해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고, 투자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제도는 종종 “유럽판 단일 회사 제도” 혹은 “EU 레벨의 가상 관할지”로 설명된다.


실제로 유럽은 지난 1년간 디지털 제도 개편보다는 방위비 지출을 8,000억 유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등 안보에 정책적 에너지를 집중해 왔다. 그런 점에서 28th Regime이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간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다시 등장한 ‘Europe Inc’는 분명 이전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이번 발표의 핵심은 더 이상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행’에 있다. 다만 이 청사진이 실제 임팩트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질문이 남아 있다. 27개 회원국과 어떤 수준의 합의가 필요한지, 어디까지가 선택이고 어디부터가 강제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제도가 실제 기업과 투자자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작동할지 말이다.


제시된 실행 방안은 명확하다.
하나는 48시간 안에 가능한 법인 설립이다. 어느 회원국에서든 온라인으로 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 단일 디지털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약속이다.
다른 하나는 통합된 자본 체계다. 국가별로 분절된 파산법과 고용법의 장벽을 넘어, 미국처럼 하나의 거대한 자본 시장(Single Capital Regime)에서 펀딩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유럽에서 5년을 살며 체감한 ‘속도의 문제’는 여전히 마음을 무겁게 한다. 제도적으로 레드테이핑을 걷어낸다 해도, GenAI가 매주 산업의 판을 다시 짜는 이 속도전에서 27개국의 합의를 전제로 한 유럽식 컨센서스 문화가 과연 충분히 기민하게 작동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국 유럽이 마주한 진짜 과제는 규제를 없애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유럽적인 가치와 삶의 방식을 지키면서도, 기술 혁신의 속도를 어떻게 따라잡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1년 전 다보스 포럼에서의 노트와 며칠 전의 연설 사이,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것은 법전이 아니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일 것이다.


이 글을 마치며, 최근 NotebookLM으로 공부를 자주 하고 있는데, 28th Regime 관련 내용을 약 15분 분량의 팟캐스트 스타일 오디오 요약본으로 만들어 보았다. 너무 완성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영어 학습이나 지식 함양에 도움이 되고, 출퇴근길에 듣기에도 적합해 첨부한다.


https://notebooklm.google.com/notebook/e755a5f6-683b-4ed6-a502-9774410be02b?artifactId=456ff065-462b-489a-ad59-66afff7d2ff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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