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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태계, 우리는 어디에 베팅해야 할까?

AI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섯 축 및 한국의 현실과 전략적 선택

by 윤세문

요즘 모든 기업이 AI 이야기를 한다. ChatGPT 같은 챗봇에서부터 사내 업무 자동화, 산업 현장 최적화까지. AI는 더 이상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 질서를 만드는 기술 패러다임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매일 쏟아지는 LLM(거대 언어모델) 관련 뉴스들 때문에 많은 이들이 AI를 '모델' 중심으로만 인식한다. GPT, Claude, Gemini 등 모델들이 AI의 전부처럼 느껴지기 까지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거대한 생태계가 AI를 지탱하고 있다.


그 거대한 AI 생태계를 크게 다섯 개 축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그동안 여러 국내외 AI 관련 유니콘 및 스케일업들과의 교류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한국이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AI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섯 축


AI 생태계는 가치 사슬(value chain)로 이해할 수 있다. 하드웨어인프라는 토대를 이루고, 소프트웨어데이터는 AI 개발의 핵심 자원이며, 응용 분야는 그 결과물이 드러나는 곳다. 이들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비로소 유의미한 AI 서비스가 만들어 진다.


쉬운 예로 자율주행차 AI를 생각해보면, 차량에 탑재된 AI 칩(하드웨어)이 센서 데이터를 처리하고, 딥러닝 알고리즘(소프트웨어)이 보행자와 도로 상황을 인식하며, 클라우드 인프라가 지도 정보 등을 제공하고 모델 업데이트를 지원한다. 또한 그 AI를 잘 작동시키려면 방대한 주행 데이터가 사전에 학습에 사용되어야 하며, 최종 산출물인 자율주행 기능(응용)이 운전자에게 가치를 제공한다. 이처럼 하나의 사례에서도 AI 생태계의 다섯 축이 모두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9658dd88-35a4-4370-8d38-4a6948dd4ea6.png AI 가치 사슬의 주요 계층과 기업들. 그림: AI 생태계는 하드웨어(맨 아래)부터 데이터 인프라, 그리고 최종 AI 응용(맨 위)에 이르는 여러 층으로 구성된다.


1. 소프트웨어 (AI 모델과 알고리즘) – AI의 '뇌'

AI의 가장 앞단에 있는 것은 모델이다. GPT나 Claude 같은 거대 언어모델(LLM), 이미지/음성/영상 분석 모델, 추천 시스템 등 다양한 형태가 있으며, AI 연산은 크게 학습(Training)과 추론(Inference)으로 나뉜다.

Training (학습): 데이터를 통해 패턴을 인식하고 모델을 만드는 과정

Inference (추론): 학습된 모델을 실제 서비스에서 사용하는 과정


이 분야는 데이터, 자본, 인재가 집중된 영역으로, OpenAI, Google DeepMind, Meta, Anthropic과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부가가치: 매우 큼
한국의 현실: 초거대모델 경쟁보다는 중소형 모델 및 도메인 특화형 AI에 기회 존재


예컨대, 저번달 만난 마키나락스의 윤성호 대표는 한국이 제조업 기반의 'vertical AI'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대한 LLM 경쟁보다는, 특정 산업에서 세계 최고의 사례를 만드는 전략이 더 현실적이라는 이야기이다.


2. 하드웨어 (AI 칩과 컴퓨팅 자원) – AI의 '근육'

AI는 연산 집약적인 기술이다. 따라서 고성능 칩이 핵심 자원이다.

GPU: 범용 병렬처리에 강한 칩 (예: NVIDIA)

NPU: AI 연산에 특화된 고효율 칩 (예: 삼성, 퓨리오사AI, 딥엑스 등)

ASIC: 특정 AI 모델에 맞춘 맞춤형 칩

고속 메모리(HBM), 저장장치, 통신 모듈 등도 AI 컴퓨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가가치: 중장기적으로 큼
한국의 현실: 반도체 제조 기술, 특히 메모리/파운드리 분야에 강점 → AI용 칩으로 확장 가능


3. 인프라 (데이터센터와 전력) – AI의 '도시'

수만 개의 칩이 작동하려면, AI를 위한 인프라가 필요하다. 데이터센터는 물론, 전력, 냉각, 네트워크 등 복합적인 기반 시설이 갖춰져야 한다.


부가가치: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에 매우 큼
한국의 현실: 전력비, 부지, 규제로 인해 글로벌급 인프라 구축은 제한적 → 대신 에지AI, 산업 특화형 소형 데이터센터에 기회 있음


4. 데이터 (AI의 '연료') – 뇌가 먹는 정보

AI는 데이터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특히 도메인 특화 데이터는 AI 성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 제조 라인의 센서 데이터, 의료 영상, 물류 트래픽 로그 등


부가가치: 원데이터보다는 구조화/활용 방식에 따라 달라짐
한국의 현실: 산업 현장 데이터는 강점 → 표준화/공유 체계 강화 시 큰 기회


5. 응용 (Application) – AI의 '실전 무대'

AI는 궁극적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야 가치가 있다. 어떤 산업에, 어떤 문제에 AI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성과는 달라진다.

제조현장의 고장 예측

병원 진단 보조

물류 최적화

사무 자동화 등

부가가치: 문제 해결에 따라 바로 창출 가능
한국의 현실: 모빌리티, 제조, 헬스케어 등에서 적용 수요 높음 → 산업 특화형 AI에 강점


한국의 전략적 선택: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앞서 살펴본 AI 생태계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인프라, 데이터, 응용 각 분야마다 장단점과 기회요인이 다르다. 한국 뿐 아니라 어떤 국가든 모든 분야를 다 선도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선택과 집중 전략이 요구되는데, 한국의 정부와 기업은 다음과 같은 강점과 약점을 고려해야 한다.


강점: 한국은 반도체 하드웨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능력을 갖췄고, 네트워크 인프라도 뛰어나다. 인재 면에서도 인구 대비 공학인력 배출이 미국, 중국보다 많을 정도로 저력이 있다. 또한 제조업, 자동차, 의료, 콘텐츠 등 응용 산업 기반이 탄탄하여 AI 적용 여지가 풍부하며, 국민들의 IT 활용도가 높아 새로운 AI 서비스 수용이 빠른 것도 강점이다.


약점: 글로벌 플랫폼/소프트웨어 부재는 큰 약점이다. AI 핵심 알고리즘과 클라우드 생태계에서 한국은 후발주자이며,. 데이터 규모도 한계가 있어 범용 AI 학습에 불리하다. AI 인재 풀도 절대 수는 부족하고, 특히 최고급 연구인재는 해외로 유출되기 쉽다. 스타트업의 글로벌 확장성도 미국/중국에 비해 떨어지며, 아시아의 싱가포르에 비하면 글로벌 스타트업 허브로서의 입지도 상대적으로 약하다. 요약하면 기초 기술과 규모의 열세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기회와 위협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기회:

- 첫째, 하드웨어에서 강점을 살려 AI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메모리, 센서 등을 묶은 첨단 패키지나 전력효율 칩에 집중하면 독자 기술 확보가 가능하다.

- 둘째, 특정 응용 분야의 세계 1위 사례를 만들어 신뢰 (Trust)를 쌓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팩토리 AI나 의료AI 솔루션에서 글로벌 표준을 선도하면 해당 분야 리더로 발돋움할 수 있다.

- 셋째, 글로벌 / 로컬 협력의 허브 역할이다. 미국 등 우방국가와의 동맹을 맺어 첨단 기술을 공유 하며, 동시에 아시아 신흥국에 한국의 적정기술형 AI 솔루션을 수출하는 등 브리지 역할을 추구할 수 있다.


위협: 미·중 양강의 AI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이 기술 종속될 위험이 있다. 최악의 경우 한쪽 진영 기술을 못 쓰게 되거나, 둘 다 한국 시장을 잠식해버릴 수 있다. 또한 글로벌 인재 확보 전쟁에서 밀려 우수 인력이 부족해질 수 있으며, AI 격차가 벌어지면 산업 전반 경쟁력이 떨어지고, 경제안보 측면에서 타국 기술에 의존해야 하는 취약성이 커진다. 정부 투자 역시 지원이 분산되고 중복 투자하면 효율이 낮아지고 실질 성과 없이 버블이 꺼질 위험이 있다.


위을 토대로, 한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다:


세계적 수준의 하드웨어와 인프라에 계속 투자: 이는 한국의 기존 강점이므로,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융합, AI 특화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 등에 집중해 AI 시대의 제조 패권을 이어가야 한다. 민관 협력을 통해 국내에 AI 초거규모 컴퓨팅 센터를 만들고, 기업들이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데이터 및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 비록 약점 영역이지만, 장기적으로 자체 AI 기술 역량 없이는 응용 경쟁력도 유지하기 어렵다. 오픈소스 활용과 글로벌 공동연구 등을 통해 최신 알고리즘 흐름을 쫓아가고, 한국어 등 강점 분야의 AI 연구개발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 또한 데이터 표준화와 공유 시스템을 확립해 산학연이 데이터를 쉽게 활용하도록 하고, 프라이버시 보호 기술 개발로 데이터 활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


특정 응용 분야에서 1등 사례 만들기: 모든 산업을 다 잘할 수는 없다. 선택 분야를 정해 국가 역량을 결집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헬스케어 AI나 스마트 모빌리티(자율주행차, 드론)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관련 스타트업 육성, 규제 완화, 테스트베드 제공 등을 통해 세계 최초·최고 사례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파급효과가 커서 다른 분야 AI 도입도 촉진하고 수출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AI 인재 양성: AI 생태계 모든 축의 근간은 사람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자원이 없는 나라의 경우 더욱더 그렇다. 국내 대학과 교육기관에서 AI 인재를 대폭 늘리고, 기업 재교육으로 현업 인력을 업스킬(up-skill)해야 한다. 해외 인재를 유치하고, 유학파 인재가 국내에 돌아올 유인책도 마련해야 한다. 글로벌 연구협력 허브를 한국에 만들어 인재들이 모이게 하는 것도 전략입니다.


윤리적이고 신뢰성 있는 AI 추구: 대외적으로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은 이 시점에 한국산 AI가 신뢰성(Trustworthiness) 측면에서 우수하다는 이미지를 갖추면 국제 시장에서 차별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의료AI의 경우 철저한 임상시험과 인증을 거쳐 안정성을 보장하고, AI 윤리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해 글로벌 고객들의 신뢰를 얻는 식이다. 이것은 단순히 도덕적 차원을 넘어, AI 사고 방지와 사회적 수용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끝으로 정리하면, 한국은 AI 생태계의 전 부분에 적극 또는 소극적으로 참여하되,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하드웨어와 제조 인프라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생명선이고, 데이터와 응용 분야에서는 기민하고 창의적인 접근으로 틈새 시장의 세계 1위를 노려야 한다.


그러면서도 글로벌 AI 생태계와 호흡을 같이하여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표준 설정에 기여하면, AI 시대에 한국이 주도권을 가진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할 수 있다. 작게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 크게는 국가 경제와 안보가 달린 문제인 만큼, 민관이 함께 장기적 안목으로 전략을 실행해 나가야 한다.


지금처럼 AI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는 우리나라와 같이 자원이 제한된 나라나 기업일수록 '선택과 집중' 전략이 중요하다.


마무리: AI는 종합 예술, 판을 보자

AI는 모델 하나로 움직이지 않는다. 반도체, 클라우드, 데이터, 알고리즘, 산업 응용까지 모두가 모여야 진짜 AI가 된다. 한국은 그중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조각에 집중해, 한국이라는 퍼즐이 빠질 수 없는 그림을 만듦으로서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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