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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Jul 30. 2020

‘풍선불기’ 닮은 영어공부

내 인생 결코 끝나지 않는 영어

보스턴 유학 일기는 매주 목요일 아침 업데이트됩니다


아주 오랜만에 풍선을 불었다. 정확히 말하면 입으로 분 건 아니고, 핸드펌프로 열심히 공기주입을 해서 부풀리고 또 부풀렸다. 우리끼리 아기 백일을 기념하는 작은 잔치를 연 것인데 이래저래 준비가 꽤나 요란했다. (이 소재로만 세 가지 글을 쓰다니!) 모든 기념일들, 다 지나고 나면 남는 건 사진밖에 없지 않던가? 예쁘게 사진이 나오려면 요즘 유행한다는 아이템들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저런 아기 백일상 사진들을 보고 연구(?)해보다가 그 필수템 중 하나는 풍선이 되어야 한다는 걸 직감했다. 그냥 단색의 풍선도 있지만 좀 더 특별한 풍선들도 많았다. 그 예쁜 아이들을 명명하는 이름들마저도 다채롭고 요란하다. 커스텀 풍선, 레터링 풍선, 주문자의 취향과 스타일에 꼭 맞는 각종 DIY 풍선 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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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bostondiary/163


파티하는 자리엔 왠지 이런 풍선들을 들여두어야 할 것 같으니까.
이게 요즘 대세라면서요? 투명 풍선 안에 미니 풍선 방울방울 여러개. 근데 말이야, 이걸 어떻게 만들지.


풍선 안에 작은 풍선 여러 개. 요즘 유행하는 풍선 되시겠다. 커다란 투명 풍선 안에 여러 가지 색깔의 미니 풍선들이 예닐곱 개 들어가고 가장 커다란 풍선 위엔 내가 새기고 싶을 글자를 넣는다. 요즘 인기 있는 플라워 풍선들과도 비슷한 형태다. 커다란 투명 풍선 안에 꽃이 들어가 있는 것도 참 신기하기만 했는데, 풍선 안에 또 풍선이 잔뜩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있다니. 요즘 풍선 안에 못 넣는 게 없네!


이미지로 아른거리는 형태가 너무 예뻐서 당장 '주문하기'로 결정. 그런데 문제는 단 하나. 한국에서라면 이미 공급자가 풍선을 '완성품' 형태로 갖춰서 퀵 배달을 해줄 텐데, 이 넓은 나라 미국 안에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 이 어여쁘고 대단한 풍선을 '내가 직접 만드는' D.I.Y KIT 형태로 주문해야만 했다. 이걸 내가 불어야 한다고? 풍선 안에 풍선을 어떻게 불어서 끼워 넣지?

전문가들은 특수 장비를 이용해서 쓱삭쓱삭 어렵지 않게 완벽한 자태의 풍선을 탄생시킬텐데, 일반 풍선조차 불어본 지 너무 오래된 자에게 D.I.Y 키트라니. 이거 성공할 수 있을까.



Balloon in Balloon
뭐? 발루니 발루니라고?


'발루니 발루니' (Balloon in Balloon)를 만드는 순간은 한 마디로 '진땀 나는 과정'이었다. 풍선 안에 작은 풍선 여러개. 남편에게 스쳐지나가듯이 Balloon in Balloon 이라고 어설피 발음했더니 순식간에 '발루니 발루니'라는 별칭이 탄생하고야 말았다는 뒷 이야기. (편의상 이글에선 발루니 발루니라고 계속 지칭하겠다) 


나는 40도 가까이 오르는 폭염특보 날씨 속에서도 얼굴이 발그레 해질 뿐 '땀'을 잘 안 흘리는 특징이 있는 사람. 그런 내가 한 시간 내내 진땀을 뿜어냈다. 정확히 말하면 발루니 발루니는 풍선 안에 불어져 있는 풍선들을 끼워 넣는 게 아니라 공기 주입 전의 '불어지지 않은 풍선'을 큰 투명 풍선 안에 넣은 상태에서 부풀리는 것. 커다란 투명 풍선을 어느 정도 크기로 빵빵하게 부풀려 둔 뒤, 큰 풍선의 입구와 작은 풍선의 입구를 같이 '세게' 꽉 붙들고 공기를 주입해야 한다.


발루니 발루니. 풍선 안에 작은 풍선 여러개. 남편에게 스쳐지나가듯이 Balloon in Balloon 이라고 어설피 발음했더니 순식간에 '발루니 발루니'라는 별칭 탄생.



문제는 큰 풍선을 긴 껏 부풀려뒀더니, 작은 풍선에 공기를 주입하는 사이 바람이 스르륵 빠져나가버린다는 것. 반대로 큰 풍선 힘을 빵빵하게 유지하는 데 신경을 기울이다 보면 작은 풍선 예닐곱 개를 부풀려야 하는 작업이 더뎌진다. 한 마디로 이 풍선 신경 쓰다 보면 저 풍선이 쪼그라들고 있고, 저 풍선에 바람 넣다 보면 또 다른 풍선에 힘이 빠지고 있는 광경. 아이코, 정신없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풍선마다 제각각 부피를 더했다가 다시 줄어들었다가... 이러다가 언제 풍선을 온전히 완성하나? 자꾸 막막하기만 할 뿐.


‘작은 풍선 하나에 어느 정도 바람이 들어갔구나’싶을 때 큰 풍선은 힘을 쫙 빼고 사그라들어버린다. 큰 풍선에서 자꾸 공기가 빠져 결국 쪼그라들면 작은 풍선들마저 짓누를 수 있으므로 조심조심, 살살 공기를 집어넣어보기를 몇 차례. 와, 이거 보통 어려운 게 아니네. 마침내 내 안에 잠들어있던 깊은 속의 호흡마저 쫘악, 다 빠져나가버리는 느낌이라니.


작은 풍선 부풀려두면 큰 풍선 바람이 그새 다 빠져나가버리고마는



풍선 안의 작은 풍선들을 부풀리는 작업은 영어공부랑 닮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빗대 보자면 유학 오기 전 토플 공부했던 것과도 비슷하다. 긴껏 라이팅 점수 쫙 끌어올려놨더니, 조금 소홀했던 리스닝 점수가 보란 듯이 뚝 떨어져 있고, 그래서 리스닝 영역 점수 안정권으로 만들어놨더니 믿었던 리딩 점수가 이번엔 비실비실 힘을 잃고, 라이팅 선방에 리스닝, 리딩 평타는 쳤다 싶었더니, 스피킹에서 순간 정신을 잃고 예기치 못한 실수를 저질러 점수를 증발시키는 꼴.


이 풍선 통통하게 잘 만들어놨더 했더니 저 풍선에서 쓱 바람이 빠져버리고, 겨우겨우 두 개의 부피를 안정적으로 늘려뒀더니 그 두 개를 감싸고 있던 더 큰 풍선이 픽, 하고 새기를 잃는 모양새. 땀 삐질삐질 흘려야 하는 에너지 감각도 닮았는데 풍선 불기, 정말 영어 공부하던 패턴이랑 너무 닮았지 싶다.


닮았다 닮았어. 풍선불기와 영어공부. 처음부터 끝까지 땀 송글송글.


‘영어'에 대한 풍선불기는 언제쯤 '끝'이 날까. 이 풍선에 '끝'이라는 게 있긴 있나. 한국에서 이어온 정규 교과과정만 더해도 영어공부는 자그마치 20년이 넘는데, 이 공부는 끝날 줄을 모른다. 유학 오기 전에도 유학생활을 이어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모르는 단어는 쉴 새 없이 출몰하며 조금만 말하기 연습을 게을리 해도 혀는 꼬이고 답답하리만큼 버벅대기 일쑤. 워낙 페이퍼 작업을 많이 해왔으니 글쓰기는 이제 좀 괜찮지 않나 싶은데 튜터링 받아보면 빨간 줄 쫙쫙. 아직 멀었다, 멀었어.


단어와 여러 가지 표현법에 골몰하다 보면 말할 때 발음과 억양이 꼬여서 자신감이 '풍선 바람 빠지듯' 픽 빠졌다가, 어느 순간에 또 기분 좋게 통통하니 실력이 부풀어 오른 듯한 착각에 빠졌다가 다시 한번 내 풍선 바라보면 전반적인 크기는 또 커지지 않은 것 같아서 두 눈 질끈 감기를 반복. 참 지루한 과정이다. 풍선 속 풍선에 바람 넣는 지루한 반복만큼이나 기운 빠지는 순간들. 내 영어 풍선, 완성되긴 되는 거니.


“엄마, 풍선불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네요“



이쪽 불면 저쪽이 힘을 잃고
여기가 빵빵하면 저기가 홀쭉해지는

마치 ‘벌룬 인 벌룬’ 만들기 같아
영어공부란!



백일잔치를 위한 우리 가족의 ’발루니발루니’는 결국엔 완성되었다. 아마도 약 1시간 정도 진땀을 뺐지. 바람 자꾸만 빠져가는 풍선에 '물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심정'으로 바람을 틈틈이 재투입. 그 사이사이, 다른 새 풍선을 잽싸게 넣어가며 새로운 공기 넣기를 몇 차례. 큰 투명 풍선 안에 결국 7개의 미니 풍선을 쏙쏙 넣어 부는 데 성공하고야 말았다. 마지막으로 좀 더 탄력 있고 생기 가득하도록 큰 풍선 안에 최대한 규칙적인 리듬감으로 툭툭, 바람을 무심하게 투입해주며 펌프질 마무리 짓기.


영, 안될 줄만 알았는데 그래도 어떻게 하다 보니 풍선이 적당히 보기 좋게 완성되었다. 해내긴 해냈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것만큼 더 빵빵하고 알차 보이진 않았지만 이 정도면 '파티'의 느낌이 꽤 살아나겠지 싶은 모양새.


결국 완성되긴 하지만, 또 언제 새어나가버릴지 몰라서 조마조마


이 풍선, 결국
완성되기는 하는 걸까.



바람 넣고 또 넣고, 자꾸만 새어나가는 공기를 모른척해가며 공기 주입하다 보면 풍선은 이내 만들어진다. 참 다행인, 성취의 순간. 내 영어실력도 이 풍선처럼 비슷하게 배를 불려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이쪽 불면 저쪽이 힘을 잃고, 이쪽 빵빵하면 저쪽 홀쭉하기 마련인 비대칭, 불완전 풍선에 불과하지만 결국에는 전반적으로 조금씩 '커져나가고 있는 것'이면 참 좋겠다고 기대해본다. 내 영어 실력도 이쪽저쪽 바람 새듯이 빈틈이 많아서 그칠 줄 모르고 바람 새어나갈지라도 전체 크기는 차츰 부피를 더해가고 있는 것이기를.


물론 알고 있다. 아무리 내 발루니발루니가 완성되었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빵빵함을 유지하려는 그 어떤 노력도 첨가하지 않으면 다시 ‘쪼글쪼글’ 보기 흉하게 쪼그라들고 만다는 것을. 영어라는 것도 마찬가지겠지. "이 정도면 꽤나 빵빵하게 예쁜 풍선이잖아." 싶을 정도로 어학 능력이 부풀었어도 속절없이 노력 없이 세월이 흘러버리면 그 바람 쓱 빠져나가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 그러므로 그 어떤 순간에도 내 영어 풍선에 방심할 수 없다는 것.


내 영어실력도 언젠가는 여기저기 빵빵하게 두둥실 뜰 수 있을 거라고


유학을 오기 전에도, 온 후에도, 이 고단한 풍선 불기는 계속되고 있다. 때론 갑갑하고 실망스럽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불다 보면 언젠간 백일 잔칫날의 풍선마냥 적당하게 축제 분위기의 자태를 뿜어낼 날도 올 것이라고 믿고 있기에. 풍선 불기는 계속된다. 그리고 계속될 거다. 미국대학원 학업이 끝난 뒤에도, 졸업식장에서 당당히 학위장을 받아 든 뒤에도,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결국엔 이쪽풍선 저쪽풍선 빈틈 없이 부풀어 오를 거예요“


잊지못할 진땀의 ’발루니 발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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