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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Jun 20. 2019

[식食] 한인마트, 이건 꼭 사야해요 5

보스턴에서 먹고 살아요 (3)

주말마다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호텔 레스토랑? No. 언제가도 초록초록해서 기분 좋아지기 마련인 보스턴 커먼 공원? No. (Boston Common 사실 일상생활 속 반복되는 동선덕분에 매일 지나다닌다. 평일에  마주하므로 굳이 주말까지는… 뭐 패스) 소소한 공간을  그리 그럴듯하게 소개하려고 잔뜩 힘을 주냐며 볼멘소리를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100% 솔직하게 대답하자면,  여기가 너무 좋다. “이따 오후에 여기갈까?아침 일찍 남편과 약속이라도  날이면 심지어 정오도 되기 전부터 두근거리더라. 혹여 누군가가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있더라도 이곳에 가기로 예정된 날은 너그러이 넘겨줄  있을 것만 같다. 괜찮아. 여기가면 힐링 되잖아.  무엇도 용서가능하게 해 주는 천하무적의 치유 효과. 이토록 무한한 파워를 지닌 공간은 바로 다름 아닌 한인마트.


주말마다 가고싶은 곳이 생겼다.
정오가 되기도 전부터
두근두근

.


일찍이 ‘한인마트’에 대한 단상을 브런치에 적었던 적이 있다. 미국에 와서 몇 주 되지 않았던 때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석 달 전쯤. “없는 게 없는 곳. 내가 미국에 와 있는 건지 실감이 안 날 정도로 한국에서 즐기던 참 많은 먹거리들이 그득그득 들어찬 곳”이라 묘사했었다. 해외에서 잠깐 여행이 아니라 아예 정착해 살아보는 건 처음이었던 내게 한국의 향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 그 자체는 환상적이었다. 신기하고 어떨떨 했던 첫 방문 이후로도 꾸준히 정기적으로 생각보다 아주 자주, 한인마트로 향했다. 여행을 가도 여행지 먹방에 전혀 관심 없는 우리 부부이기에 먹성 상당히 안 좋은 나나 남편이나 뭐 그렇게까지 한인마트에 집착하겠나 싶었는데 명백한 오판이었다. 한 주의 스트레스를 싹 날릴 수 있는 힐링 플레이스이자, 당충전 하고 싶은 간절한 욕망을 가장 최적으로 풀어줄 수 있는 원초적 욕구의 해소지점.

 

한국에서의 엄마표 반찬이 그리워지는 순간들.  막상 한국에선 커피랑 베이글만 먹었으면서. 이런 아이러니라니!


한인마트. 생필품을 사는 것 그 이상의 마음 충전효과가 있다. 집 주변에도 stop&shop, 매일 타는 commuter rail 역 주변엔 wholefood가 있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E마트나 L마트쯤인데 굳이 먼 여정을 의도치 않아도 필요한 건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 고기나 과일은 이곳에서 사도 충분하다. 어쩌면 더 저렴하고 질 좋은 농수산품을 골라오기 좋다. 굳이 태평양을 건너 장시간 피곤에 찌들어 있을 것만 같은 식재료를 고집할 필요는 없으니. 이곳에선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고 선택하는 게 현명한 쇼핑법. 자주가다 보니 갈 떄마다 꼭 사오게 되는 나만의 필수템이 생겼다. 지극히 개인 취향을 반영한 것이다보니 수많은 사람들의 고개가 갸우뚱거릴 수도 있겠으나, 먹고 사는 일이야 말로 내 맘에 차면 그만 아니던가. 34세 초보새댁의 한인마트 장바구니 필수템 몇 가지를 풀어본다.

둘러만 봐도 고소한 냄새가 여기저기에 가득. 친숙한 풍경덕분에 맛보지 않아도 마음이 기분좋게 노릇노릇 익어가는 듯.

 

#1. 너는 귤 나는 참외


과일 중에선 사과와 바나나, 체리와 망고를 가장 좋아한다. 아! 허니멜론도 빠질 수 없지. 비행기에서 과일식을 주문할 때면 가장 먼저 비우는 게 오렌지 빛깔의 사각사각 멜론이니까. 미국에 오고나서 가장 좋았던 건 올망졸망 예쁘고 작은 사과들이 종류별로 참 많았다는 것. 그 외 과일들도 싱싱하고 그 세부종이 다양한 편이어서 그 어떤 마트에 들르나 든든한 만족감을 선물해줬다. 단! 그 과일이 그과일이지, 둔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섬세한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한인마트 행을 할 필요가 있다.


미국 마트에도 과일은 얼마든지 많지만 종종 한국마트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과일도 있어서. 애타는 목마름으로 고고


 

남편은 한인마트에 갈 때마다 ‘귤’을 잔뜩 담는다. 오렌지 먹는 거랑 뭐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유독 한국산 귤을 고집하는 걸 보면 분명히 만족감에 상당한 차이가 있나보다 짐작해본다. 더더군다나 사온 뒤로 사나흘도 채 되지 않아 그 많던 귤은 다 어디갔을까. 물음표를 떠올리게 만드는 귤먹방의 속도를 고려한다면. 그에게 귤은 필수 아이템. 그러고보니 나도 몇 주 전에 한인마트표 참외를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는 지금 이 시기에 하루에도 몇 개씩 참외를 먹었던 것 같은데 흔히 볼 수 없는 과일이라서 더 탐이 나고 더 그리워지는 군. 지난주에 한인마트에 갔을 땐 참외가 보이질 않아서 결국 망고와 복숭아 정도만 담았다. 다음 번에 갈 땐 꼭 만나자. 참외.


예쁘게 깎지 못해 민망하지만 맛은 너무 좋았던 거니까, 맘 속에 고이 저장. "참외야 또 나타나주렴"



 #2. 빵순이는 떡도 좋아합니다.

 

밥먹는 사진은 많지 않아도 빵 굽는 사진, 혹은 빵 먹는 사진은 자주 등장한다. 말해무엇하리, 많은 내 또래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자칭 타칭 빵순이다. 빵순이가 빵만 좋아할 리는 없지. 방송국에서 일할 때도 한 입에 쏙쏙 넣어서 오물거리면서 씹을 수 있는 떡은 최애 페이보릿. 인절미, 꿀떡, 호박설기, 각양각색의 떡을 사랑한다. 종종 누군가가 결혼 답례품이나 백일 기념떡을 돌릴 때면 회사에서도 그날은 어찌나 든든하고 좋던지. 고이고이 아껴뒀다가 저녁밥을 대신해 먹곤 했으니! 어찌 그냥 지나치리오. 한인마트의 떡 가판대 앞에만 서면 눈도 동그래지고 마음도 둥글둥글 넉넉해지는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떡만드는 걸 잔뜩 배워올 걸 그랬지? 포기할 수 없는 떡사랑


다만 좀 많이 비싼 건 인정. 한국에선 한 팩에 3~4천 원 정도면 샀던 것 같은 떡이 한 팩에 7~8달러가 넘어간다. 웬만한 떡순이가 아니라면 굳이 안 먹고 말지 돌아설 것 같은 가격. 그래서일까. “한인마트에서 떡 사먹는 애가 너였구나?” 하고 우스갯 소리를 건네던 친한 지인의 이야기를 곰곰이 되뇌어 보니 가격 다시 살피면 못 사겠지 싶다. 그래도 어쩌나. 나는 누가 뭐래도 흑미경단과 쑥개떡 하나에 고단한 새벽 기상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인 것을. 아아...그래도 생각할 수록 자꾸만 아까워지는 주부 마인드라는 것은 또 어떻게해야하나. 미국와서까지 굳이 떡을 고집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소심하게 이렇게 대응하겠다. "떡 하나만 주면 안잡아 먹을게요"



#3. "선배, 막상 유학가면 '쫄면' 같은 분식이 그립더라고요"


아마도 쫄면에 꽂힌 건 그때부터였을 거다. 같이 방송하던 후배님의 말은 미국 현지에서 고대로 현실이 되었다. 미국으로 떠나오기 전 "한국에서 꼭 먹고 떠나야할 것들은 무엇일까요?" 지인들에게 추천을 받았는데, 일본 유학생활을 했던 아나운서 후배는 내게 '쫄면'을 추천했다. 지나가는 듯이 스친 후배의 한마디가 내 마음에 불을 지폈다. 어찌저찌하다보니 한국에서 결국 '쫄면'만 시도하지 못하고 출국을 했는데 그때부터 계속 기회만 닿으면 쫄면이라는 아이가 먹고 싶더라. 평소 즐겨먹던 음식도 아닌데, 심지어 라면마저 좋아하지 않는 나라서 스스로도 의아했던 나날들.

비빔면과 미슷할 거라고 잠정 생각했는데, 정말 묘하게 '진짜쫄면' 같았다는 사실! 작명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으며


다행히 없는 게 없는 한인마트에는 쫄면이 상시 구비되어 있었고, 비빔면스러운 인스턴트 쫄면을 비롯해 좀 더 진짜 음식점 쫄면스럽게 조리해먹을 수 있는 반조리 제품도 어렵지 않게 겟잇! 매운 걸 즐기지 않던 나임에도 쫄면의 새콤달콤함 정도는 신나게 맛보았다. 워낙에 모든 면 종류 음식을 애정하는 남편은 말해무엇하리. 넉넉히 2인분 삶아서 얼음도 얹고 남은 샐러드를 고명으로 토핑하고 나면 완벽한 우리만의 분식집 테이블이 만들어지곤 했다. 라면은 거부해도 쫄면은 애정해 마지않는 별난 식성. 과일과 떡까지 담았다면, 그 다음 코스로 향해야 할 곳은 바로 '쫄면' 코너다.


한국에서 방송하면서 분식이 배달와도 쳐다도 안 봤던 분. 여기서는 쫄면 없이 못살겠다고 전해지는 중


#4. Hello, Chocoboy! Hello, Homerunball!


방송사에서 오래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군것질'을 좋아하는지. "밥은 먹고 사니?"라는 말을 너무나 자주 들을 정도로 끼니를 대충 때우기 일쑤였던 내가 한 가지 분명하게 선언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한 마디. "과자는 거르는 법이 없지요!" 라떼 한 잔에 소소하게 초콜릿이 묻혀진 과자 한 입 깨물면 스트레스 해소에 완벽했다. 뉴스진행하기 전에 달콤한 걸 먹으면 자꾸만 침이 배어나와 발음에 자칫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작은 죄책감을 종종 떠안고 좋아하는 과자를 소비하곤 했다. 봉지과자는 짠 맛이 강할 때가 많아 싫고 대부분은 칸O이나 빈O같은 작은 박스 과자류.


"네. 저는 오늘 살 건 다 산 것 같습니다" 이거면 충분한 소확행. 한 주 당충전 완성 직전.



군것질거리의 천국, 미국판 마트에도 과자는 얼마든지 많지만, 내가 먹는 '그 과자'에 대한 집착은 쉽게 포기가 되질 않는 법이어서 결국 "안 먹어. 살쪄. 안 살거야"라고 선언을 했다가도 결국엔 계산대로 가기 직전 카트 밑에 몇 개는 구겨 넣게 되는 게 당연지사. 어쩔 수 없는 진부한 결론. 한국 과자 역시 당연히 한국만큼의 가격대를 기대할 수 없겠으나 알면서도 최대한 가격표를 외면하며 장바구니에 넣어버린다. 해외 여행가면 현지 과자가 신기해서 기념품 삼아 몇 개씩 사가곤 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돌연 여기까지 와서 한국 과자를 먹는 삶이라니. 남편과 연애할 땐 한국으로 미국과자 소포를 보내주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뭐 어찌됐든 그리운 건 그리운 거다. Lays 감자칩보다는 감자깡, 고구마깡이 좋고, Tates 쿠키보다는 쿠크다스 한 상자가 더 반가운 걸 어찌하겠나.


#5. 마지막으로 여기만 보고 가실게요. 아이스크림!


이쯤하면 너무 군것질거리만 구매하나 싶어서 내심 찔린다. 하지만 다른 농수산물은 미국마트에서도 충분히 언제든지 살 수 있는 거니까 과감히 제하는 거라고 땅땅. 선언하는 걸로 하고! 자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 마니아는 꼭 아이스크림 냉장고도 마치 MOMA에서 잭슨폴록 그림을 보듯이 아주 천천히, 경건한 자태로 서성여줘야 하는 법이다.  아이스크림을 워낙에 좋아해서 한꺼번에 많이 사다 놓고 쌓아둔 채 편히 먹을까 싶다가도 애써서 고개를 젓는다. 그렇게 되면 통제불가능한 속도로 너무 빠르게 다 소비해버릴 게 뻔해서 한번 갈 때마다 욕심 버리고 딱 한 아이템만 사는 걸로 잠정적인 원칙을 세워뒀다.

미국표 아이스크림도 좋지만, 왠지 정겨운 봉지 하나는 뜯어줘야할 것 같아서 늘 데려오지요.

오늘은 콘을 살까, 샌드스타일이나 모찌스타일을 선택할까, 신중한 고민 끝에 하나를 집어들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내 품에 쏙 안고 있으면 그 누구도 안 부럽던 걸. 집 근처 DAIRY Farm에서도 그야말로 현지인에게도 인기 절정인 신선한 아이스크림을 목장 풍경 즐기면서 유유자적 맛볼 수도 있지만, 한인마트에서 한국 아이스크림을 먹는 건 또다른 힐링 포인트가 된다. 사회 초년생 때도 밤늦게까지 이어진 회식 자리에 고단할 때면 꼭 집으로 오는 길 월드콘 하나를 조물조물 씹으며 돌아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무겁게 질척거리던 귀갓길에 작은 날개를 달아줬던 '그 아이스크림'의 기억덕택인지 해외 여행지 그 어딘가의 유명한 맛을 깨물어도 이때 이맛을 범접하지는 못하는 모양. 미국에서 먹고 살면서도 꼭 때가 되면 익숙한 포장지를 뜯게 될 줄이야. 사진을 같이 첨부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국화빵 아이스크림 고작 딱 한 개 남아버렸다. 어떡하지? 이번 주말도 한인마트 가야겠는데?



뒤늦게 발견한 깨찰빵 믹스. 한국 빵집에서 늘 사먹던 아이템. 내가 내 손으로 구워먹으리.


돌아보면 돌아볼 수록 자꾸만 중독성이 생기는 이곳. 한국에서 새벽 배송, 문앞 배송만 줄곧 선호했던 내모습이 생경할 정도로 '마트'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굳이 '한식'을 고집하지 않는 내가 '한인마트'라는 공간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탐색하는 습관을 피워내다니. 피할 수 없으면서도 치명적이다. 자꾸만 여기에 들른다는 것은. 시간마저 규칙적이고 돌아보는 동선마저 매번 닮아서 하나의 리추얼이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갈 때마다 꼭 집어내는 아이템만 두서없이 나열했지만 어쩔 땐 예기치 못한 새 아이템을 발견해 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얼마 전에 발견한 '찰깨빵 믹스' 아이템 역시 빵순이의 한국 빵 욕구를 자극해 내기에 적절했으므로 글을 끝내기 전, 소소하게나마 이미지를 첨부해 보기로 한다. 쓰다보니 더 애잔하게 타오르는 방문욕구. 이번 주말엔 뭐 사오지? 필수템 다섯가지를 빗겨간 또 하나의 모험을 시도하게 된다면, 또 한번 한인마트 포스팅을 이어가는 걸로. 약속.



쫄면 사랑은 이렇게 종종 쫄깃한 자태로 완성되어서 짠짠!
쫄면 짝꿍 떡볶이도 데려와서 쓱싹쓱싹. 뚝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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