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lie 수현 Jun 30. 2019

내 삶의 '롱샷'에 관하여

보스턴에서 영화보기 (2) - 영화 <롱샷 long shot>


" Uh, I know this is a long shot, but how about tomorrow night?" 미드 <How I met your mother> 에 나오는 대사 중 한 대목. "말도 안되는 얘긴 줄 알겠는데, 혹시 내일은 어떻겠냐"며 주인공 테드가 한창 작업 중인 썸걸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막 만난 여자가 마치 언젠가 자신과 결혼할 미래의 배우자처럼 느껴진다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테드. 운명을 직감한 남자는 '에라 모르겠다' 데이트 신청을 해버리고마는데 그래도 그게 참 수줍기는 했는지, 'long shot'을 운운하며 잔뜩 소심해져서는 겨우겨우 말을 던졌다.


롱샷(long shot), 영영사전의 정의를 참고 하자면 'something you try even though it is likely to be unsucceful'이라 표기되어있다. 어차피 안 될 걸 알면서도 시도해본다는 것. 한 마디로 가능성이 상당히 희박한 일이지만 그걸 잘 알면서도 냅다 던져보는 그 어떤 작업들을 의미한다. 불가능할 것만 같은 상황들에서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스토리들. 내 인생 안에는 어떤 '롱샷'들이 나타나있었을까. 그리고 그 롱샷을 영화는 어떻게 그려낸 걸까.


'롱샷'이 롱샷이 아닌 걸 보여줄게. 온몸으로 힘껏 표현해내는 듯한 두 주인공의  몸짓과 표정. 이마저도 통쾌하지 아니한가. 미국에서는 5월 3일 개봉.


미국에 와서 두 번째로 봤던 영화 <롱샷>. 한국에서도 7월중, 곧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석달 전 봤던 그 영화를 다시금 머리 위로 떠올렸다. 스크린 안에서 배우 샤를리즈 테론_Charlize Theron은 미 국무장관 샬롯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내 급작스럽게 대선주자로 뛰어들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들. 또 다른 남주 세스로건_Seth Rogen은 그녀의 대선 캠프 안에서 연설문 작업을 돕는 프레드 역할을 맡았다. 그 속에서 번져나가는 다소 황당한 러브라인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코미디 장르인 만큼 빵빵 터지는 웃음 포인트가 장면장면 참 많았던 영화. 미국식 유머코드가 곳곳에 흩어져있고 단번에 알아듣기 힘든 '쓱' 지나가버리는 언어유희들이 꽤나 많아서 다른 관람객들과 동시에 웃음 터뜨리지 못했던 안타까운 상황이 종종있었으나, (아, 고단한 유학생의 삶. 끝나지않는 영어 적응의 나날들이여) 그래도 코미디는 코미디인지라, 마냥 어렵진 않았다.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들에 이런저런 정치적 상황들을 절묘하게 풍자해내려는 시도들이 잘 녹아있다. 함의를 읽어내야 하는 대사들이 많았던 건 미국와서 자막없이 영화를 봐야만 하는 내겐 살짝 버겁기도 했으나 이미 '롱샷'이라는 단어 안에 영화가 표현해내고자 하는 의도가 절반이상 담겨있지 않는가. 말도 안 될 것 같은 이야기. 그래서 한번쯤은 '상상'해보게 되는 상황들. 그 의미만으로도 이미 의미를 반이상 읽어냈으니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해두겠다.


감독 조나단레빈_Jonathan Levine 의 'Powerful message'라는 것. 롱샷을 롱샷답지 않게 풀어낼 수 있는 힘.


대통령이 되기 위해 당차게 뛰어든 '엄친딸' 여자 주인공, 그리고 그 프로페셔널 에 홀딱 빠져버린 다소 괴짜 같은 남자 주인공. 연설문 작업을 돕다가 애정은 더욱 깊어가고, 진심을 다해 글을 써주다가 때론 그녀와 부딪치기도 한다. 그러면서 서로의 존재, 앞으로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한다. 둘의 그러한 관계 발전을 흥미진진 지켜보는 사이 그녀의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감을 방해하는 주변의 얄미운 세력들도 샤샤샥 지나간다.


흔하게 볼 수 없는 시도를 하는 자들 곁에는 늘 방해꾼들이 있기 마련이다. 단순히 시샘을 하는 걸지, 아니면 주류라고 믿는 자들이 본인의 위엄을 지키는 데 위협이 된다고 생각해서일지, 아니면 그냥 약올리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일지, '롱샷'은 롱샷답게 허울 좋은 상상에 그쳐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하고 좌절케 만들고 싶어하는 세력들 같다. 롱샷 같은 상황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는 자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달까. 정치하는 여자의 역할을 과소평가 하고 싶어하고 어차피 안된다고 깎아 내리고 싶어하는 자들. 무대가 한국이 아닌데도 '욱' 하는 순간들이 몇번이고 등장한다. 롱샷이 롱샷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응원하게 되는 순간이다.


말도 안될 것 같은 일련의 상황들이 '진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내 응원하게 된다. 이건 그냥 '롱샷'이었어. 하고 끝나버리면 영화속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기운 빠지고 서운할 것만 같다. "롱샷인 줄 알았지? 사실 이거 엄청나게 큰 빅샷이었어. 진짜야. 진짜." 이마저도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기운을 불어넣어 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될 것 같았지만 뭐 안될 것도 없잖아? 꿈을 가지라고! 말뿐만이더라도 그렇게 관객들을 쓰다듬어줄 수 있다면 충분히 참 통쾌하지 싶다. 영화 <롱샷>은 그렇게 불가능해보이는 무언가도 가능해질 수 있다고 토닥이며 끝을 낸다. 남자 주인공의 몸개그나 '루저'임을 자처하는 상황, 우스꽝스러운 옷매무새만이 웃겼던 요소만은 아니었음을. 안 될 것 같은 이야기를 될 것 같은 이야기로 여운을 남긴 그 기운이 후련해서, 웃음이 배어나왔고 그 언젠간 그려질 수도 있을 이야기라는 생각도 어렴풋이 섞어내며 낄낄, 기글기글 모두 함께 웃었다. 2시간가량 관객은 한번의 '빅샷'을 꿈꿀 수 있다.


말도 안될 것만 같은 희박한 가능성들을 '웃음끼' 더해 풀어내는 작업들. 내 삶 곳곳에 흐어진 롱샷들을 되뇌어 보는 하루.


내인생 안에서도 '롱샷(long shot)' 같던 상황들은 천천히 제법 꾸준히 나타나주었더라. 볼 빨개지기 일쑤였던 극히 내성적인 성격의 내가 매일 무대에 올라서 사람들과 마주해야 하는 '아나운서'가 되었다. 생방송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이 되어버렸던 지난 10년. 이 또한 희박할 것만 같던 가능성이 현실이 되었던 '롱샷'의 변신 하나. 굳이 외국으로 떠날 필요가 없는 전공을 택했던 21살을 기억하는가. 국어국문학을 택했지만 결국엔 유학행을 하게 된 서른 훌쩍 넘긴 날의 선택. 예측하지 못했던 선택과 그 의미있는 결정에 새로운 꿈을 담아 묵묵히 걷고 있는 내 모습, 사실은 10년 전쯤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롱샷같은 상황이었다. 이 또한 또다른 롱샷의 변신 둘. 그리고 진짜 롱샷 중의 롱샷. 그땐 몰랐다. 중학교 3학년 옆 자리에 앉아서 종종 이야기를 주고 받곤 했던 그 같은 반 남자애가 결국 내 남편이 될 거라고는. 20년 전쯤엔 진심으로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 롱샷인 줄 알았는데 진짜 완전히 크디큰 빅샷이 되었네. 이 또한 롱샷의 변신 셋.

3년 전쯤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상. 현실이 될 지 몰랐던 '롱샷' 같은 상황들은 결국엔 매일 마주하는 풍경. 메가박스와 CGV만 오가던 나의 발걸음은 어느덧 AMC에.


다시 영화 속으로 돌아가서! 주인공은 과연 첫 여자 대통령이라는 하나의 역사를 써낼 수 있을까. 사실은 롱샷 같기만 한 이야기 같은데 진짜 그 한계를 깨고 우뚝 설 수 있을지, 관람객들은 내내 애가 탄다. 물론 애가 타는 과정마저 풍자 투성이. 웃음터지는 요소는 군데군데 많으므로 인상 잔뜩 쓰고서 심각해질 필요만은 없겠다. 더군다나 이미 알고 있지 않는가. 살면서도 롱샷 같은 이야기가 때로는 진짜 마주할 순간이 되고야 만다는 걸.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겪게 되는 상황들. "어머 이건 기적임에 틀림없어. 어떻게 이런일이?" 한 번 경험해 본 롱샷의 반전 상황들은 또 한번 마법을 일으킬 롱샷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믿게 이끈다. 영화에서 결국 롱샷이 빅샷을 터뜨려준다면 말이지, 그건 영화 속 이야기에 그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삶 안에서도 그런 '샷의' 반전들이 벌떡 일어나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롱샷과 빅샷 사이


롱샷이 롱샷으로만 그치지 않을 수 있는 하루를 어렴풋이 그려본다. 안 될 거라고, 그런 일이 솔직히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체념했던 일들이 결국엔 '내 편'이 되어주면 그 얼마나 더 아름다운 세상이려나. 안 될 일이 '되는 일'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일이 결국엔 완벽하게 '일어나는 일'로 '변신'을 해내면 와아 신기함을 넘어서서 절묘하고 통쾌하겠다. 이세상 좀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싶다. 혹여 롱샷이 결국엔 이뤄지지 않을 '한계'만 잔뜩 보여주고 끝이나도 그리 싫지만은 않을 것 같다. 혁명처럼 일어난 가끔의 '상상력'들은 생각만으로도 때론 힐링을 남길 수 있지 않나. 없을 일을 있을 일로 상상하고 나면 적어도 '재미'는 있는 거니까.


때론 '롱샷'에 그쳐도 괜찮아. 가끔은 상상만 해도 기운과 여운이 남아 흐르는 법. 디즈니 무비를 사랑하는 이유.


내 안에 지금 담긴 '롱샷'들은 어떤 게 있으려나. 가만 가만 생각해본다. 지금 생각하는 A라는 롱샷, B라는 롱샷. 10년 뒤 그 아이들은 마냥 롱샷 중의 롱샷이 되어 주춤주춤 사라져가고 있을까. 혹은 롱샷의 옷을 화끈하게 벗어내고 보란듯이 일상 속의 풍경이 되어 변신한 제 자신의 자태를 자랑하고 있을까. 오늘도 또 한번 지금 이 순간, 롱샷 꾸러미를 몰래 훔쳐보듯 꺼내본다. 롱샷의 변주를 꿈꾸며. 또 한번 롱샷이 빅샷의 자태로 천천히 바뀌어나갈 반전 있는 스토리를 꿈꿔보며.


알라딘이 소원 세 가지를 반신반의 하며 빌 듯, 때론 '롱샷'이 '빅샷'으로 변주되기를 어렴풋이 기다려 보기. 알라딘처럼
"이게 도대체 가능해?" 영화 <허슬>에서의 말도 안 될 것만 같던 속임수들이 기가막히게 먹히듯이, 이성적으로 가능성 낮은 상황을 꿈꾸는 힘도 감쪽같이 진짜가 되어주기를
또 어떤 롱샷(Long shot)이 내 삶을 뒤흔들 준비를 바삐 하고 있을까. 또 한번 상상해보는 재미


매거진의 이전글 [보스턴 밑줄긋기] ‘간헐적' 걱정이 필요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