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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Jul 04. 2019

[보스턴 밑줄긋기] 퇴사자를 위한 노래 처방전

삶의 변곡점을 지날 때 필요한 10곡

열 곡의 노래를 골랐다. 이 모두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마음이 어지러울 때 안정제 같은 역할을 기꺼이 해줬다. 특히나 인생에서의 중대한 결정, 퇴사를 앞두고 귓가에 흘려둔다면 더욱이 제격. 내 인생 총 세 번의 퇴사를 경험해 오는 사이, 틈새시간들에 쏠쏠한 힘을 주었던 노래들이니 비슷한 경험을 앞두고 있다면  믿어봐도 좋겠다. 물론 난 음악 전문가는 아니다. 아나운서로 일해오며 DJ 역할이 자연스레 주어지다보니 선곡자로서의 역할에 살짝 익숙했을 뿐. 장르, 작사와 작곡의 어우러짐, 가수의 이력과 역량에 대한 정밀한 평가에 있어서는 다소 부족할 수 있겠다. 음악방송 10년 가까이 했다고해서 특정 가수들과 대단한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님을 밝혀둔다. 그러니 홍보 목적이나 역주행을 꾀할 목적은 전혀 아님.


삶의 변곡점을 지나는 누군가에 선물같은 노래들


하지만 마음이 안 좋을 때마다 열렬히 맹신하듯 들었던 노래들 10곡. 그 이유가 어찌됐든 지금 '힘든 사람'이라면 기꺼이 같은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보길 권장한다. 나라는 여자 역시 나름의 변곡점들을 꾸역꾸역 지나오며 이 노래로부터 일종의 안정제를 먹은 듯한 기분을 선물받았고 적잖은 시간을 셀프힐링했다. 힘든 시절을 누구나가 그렇듯 꾸역꾸역 버텨 보내온 누군가가 "이 노래 괜찮아요" 꼽은 리스트, 그래도 열 곡 중 한 곡 정도는 마음에 쏙 와닿을 수 있지 않을까. 퇴사 직전까지 음악 생방송을 진행한 감각 살짝 얹어서 10곡을 골라봤다. 변화를 맞닦뜨리기 직전의 여정에 '기운' 툭 얹어줄 수 있는 노래들.


창문너머 그대가 걸어갈 새 길에 음악을 놓아드립니다
(1) 온유, 이진아 <밤과 별의 노래>
(2) 스윗소로우 <So cool>
(3) 치즈 <Romance>
(4) 혁오 <위잉위잉>
(5) 안녕하신가영<우울한 날들에 최선을 다해줘>
(6) 노리플라이 <끝나지 않은 노래>
(7) 이바디 <끝나지 않은 이야기>
(8) 샵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9) 윤하 <Sun flower>
(10) 페퍼톤스 <Thank you>


(1) 온유, 이진아 <밤과 별의 노래>

복잡한 세상들이 부지런히 괴롭혀
창밖에 햇살이 내얼굴 가득 덮어도
눈을 뜨는 일이 싫은 걸

모두들 잠드는 침묵의 밤 너머에
네가 내 친구가 되어줘.
나도 너의 불안한 밤에 빛이 되어줄게
내가 길을 잃고 헤매면
별이 되어줘.

시작은 콜라보레이션이 예쁘게 녹아든 듀엣곡으로 출발. 가사에 그대로 묻어나듯, 세상사 정말 짜증나게 내 편이 아닐 때가 있다. 회사 가는 길인데 이미 퇴근길이었으면 좋겠고, 몸은 도서관에 앉아있는데 공부가 되기는커녕 딴 생각투성인 데다가 생산성은 제로라서 스스로가 싫어지는 순간이 있다. 연인인지 가족인지, 친구인지 모르겠지만 마음 이리저리 붕떠있는 상황 속에서 나를 '딱' 잡아줄 가상의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디가 바른 길인지 짚어줄 수 있는, 혹은 길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마음에 한뼘의 온기를 얹어줄 수 있는 손난로 같은 존재. 어디에 있는지, 언제 나타날지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그 누군가는 내편일 거라고 믿게 해주는 가사. 이 노래를 들은 날엔 그래도 세상 어디 '내편' 하나 있겠지 어렴풋이 생각한다.




(2) 스윗소로우 <so cool>

만만치 않은 내일을 기다려
마지막에 웃는 게 더 멋진 거잖아.
그렇잖아.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잖아.
시소처럼 왔다갔다 하는 것.
난 내일을 닮았어.
길은 어디에나 있는 것.

24살에 첫 퇴사를 경험했을 무렵, 그 여름날에 정말 무척 많이 들었던 이 노래. 전혀 쿨하지 않은 상황에서 진짜 쿨하고 싶었나보다. 10년 전쯤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함정이지만, 과장 조금 보태서 하루24시간, 잠자는 시간 빼고 계속 이 노래만 반복재생했던 것 같다. 입고 싶은 옷은 A였는데 마음이 급해 일단 B부터 입었다. 옷매무새 나쁘지 않았고, 그 옷 계속 입어도 괜찮은 일상이 이어질 거라고 많은 사람이 격려했다. 결국 '나'의 마음이 중요한 법. 이런 저런 이유로 적당히 타협해 입은 옷은 계속 불편하게 끼었고 때때로 숨막혔다. 결국 A라는 옷을 다시 입기 위해 몸의 군더더기를 빼고 바닥부터 천천히 다시 준비했던 날들. 결국엔 A라는 옷을 거머쥐고 벅찬 마음으로 새로운 날들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A옷을 입기까지, B옷을 벗어던진 직후의 나날들, 약 100일 정도의 시간은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이 늘 발가벗겨진 느낌으로 살았다.


'마지막에 웃는 게 더 멋진 거잖아.' 스윗소로우 오빠들은 이야기 했지만 그 마지막이 언제가 될 지 몰라서 하루하루 초조했던 여름날들을 지나고 있었다. 운명이라는 게 '시소처럼 왔다갔다'한다는 건 알겠는데 고백하자면 나 어릴 때부터 무서워서 시소도 잘 못탔다. 위로 '쿵' 한번, 아래로 '쿵' 한번... 아 생각만해도 또 아찔해진다. 아래 위로 확확 각도가 꺾이는 움직임이 무서워서 친구랑 시소에 오르면 최대한 평형 밸런스만 맞춘 채 살짝만 흔들자고 졸라댔었으니. 어찌됐든 20대 초반 퇴사 이후, 다시 아나운서에 재도전 하려고 여백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던 내게 '괜찮다'고 무한 주문을 걸어준 노래. 이 노래 수백 번 듣고 결국엔 합격했으니, 어쩌면 내게는 행운의 성취쏭이 될 수도 있겠다. 믿어봐요! 이 노래의 쿨한 기운을.



(3) 치즈 <Romance>

어두운 곳에 갇혀있는 듯해
두 눈이 멈춰있는 그 곳에
달콤했던 순간인지 악몽인지
어지럽게 날 뒤흔드는 가위처럼


마음이 어두울 땐 굳이 밝은 척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어두우면 어두운 채로 내버려 둬야 차라리 나은 법. 괜히 환한 척 해보려고 감정을 숨기고 애쓰다간 나만 지친다. 주변 사람들도 다 알겠지. "아 얘가 힘든데 억지로 아닌 척 하는구나." 그럴 땐 그냥 나 힘들어 죽겠다고 티 팍팍내는 것도 힐링의 방법일 수 있다. 적어도 한 둘쯤은 토닥여주시지 않겠는가. 뭐 아무도 관심주지않아도 그만이고. 우리에겐 노래가 있으니까. 이거 괜찮다. 어두울 땐 그냥 시꺼먼 분위기의 노래를 머리 위에 무심하게 얹어두는 것.


이 노래, 치즈 노래 중에 제일 어둡지 않나 싶다. 봄날의 페스티벌에 너무 잘 어울리는 인디밴드로 알려져있는 '치즈'에게 이렇게 우울한 느낌의 노래가 있었다고? 모르는 사람도 꽤 있을 듯한 숨겨진 보물이다. 어두운 노래는 전혀 보유하지 않을 것 같은 밴드에게 이런 노래가 있다는 반전 포인트가 마음에 들어서 자주 듣기 시작했다. '달콤했던 순간인지 악몽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있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휘청휘청' 날 더 휘젓는 노래 분위기가 오히려 편안하지 않을까. 괜찮은 척 포장하지 않고 나의 우울감을 있는 힘껏 담아낸 노래. 우울의 파도에서 찡그린 리듬과 흑백의 감성을 타다보면 거친 흐름이 정지하는 순간도 찾아와 주겠지. 막연히 생각해 보면서 '일단 재생'.



(4) 혁오 <위잉위잉>

비틀비틀 걸어가는 나의 다리
오늘도 의미없는 또 하루가 흘러가죠
좀처럼 두근두근 거릴 일이 전혀 없죠.

퇴사를 해야겠구나 생각했던 건 그쯤이었다. '좀처럼 두근두근 거릴 일이 전혀 없다'는 순간들을 마주할 무렵. 물론 설렘과 흥분만 입고 일상을 살아간다는 건 디즈니 환상 무비와도 같다. 매 순간 설레며 일할 수 없다는 건 잘 안다. 서른 중반부에 접어들까말까 한 나이라면 그 정도는 깨달았을 만큼 커버리지 않았나? 단, 의미없는 또 하루가 쓱 가버리는 날들을 체념하기엔 그래도 너무나 젊은 나이. 그렇다면 움직여야 한다. 의미 없음에서 의미 있음이 될 영역으로 날 과감히 떠 밀어야 한다.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위잉위잉' 소음만큼이나 신경이 쓰이는 일. 마음을 날카롭게 곤두세우도록 만들고 소음이 그치지않고 계속되면 좌절좌절한(?) 마음가짐까지 소환해 낼 위험부담이 있다. 하지만 어떻다고 해도 '지금 이순간'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면 움직여야지. 별 수 없다. 가만히 있다간 그냥 땅 속으로 고스란히 들어가서 영영 못빠져나올지도 모름주의! 비틀비틀 걷든, 운이 좋아서 제법 새 길에 빠르게 정착하고 캣워크를 하든, 타임라인에서의 속도감을 예민하게 남과 비교할 필요 없겠지. 적어도 비틀거리는 몸짓을 바로잡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박수 보낼만 하다. 퇴사를 결심한 자, 혹은 그에 해당할 법한 큰 결정을 해두고선 불안해서 표정 흔들리는 자, 이 노래 들으며 나의 결정, 여기까지 날 밀어붙인 이유들을 잘근잘근 곱씹어 보자. 약해져 있던 심장박동을 강하게 다시 단련시키기 좋은 노래.


(5) 안녕하신가영. <우울한 날에 최선을 다해줘>

예감했던 일들은 꼭 그렇게 되는지
놀랍지도 않지
바뀌지 않을 내 모습처럼
그냥 여기서 난 이렇게 슬퍼할래

울고 싶은 날엔 눈물을 보여줘
이 노래가 절대 슬프지 않게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에서 딱 와닿는 가사를 발견했을 때의 만족감이란! 제목부터가 직설적이면서도 꼭 내 마음, 내 결정과 닮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마음으로 오늘을, 어제를, 살아냈을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회사에서 마음으로 이런 생각들 자주 하지 않던가. "그럴 줄 알았지. 뻔하지 뭐. 우리회사가 그렇지." 이렇게 체념 섞인 어조로 툴툴거리며 동료와 불만을 수다로 풀어낼 때면 얄팍하게나마 힐링되곤했다. 볼멘소리를 하던 그날의 기분 살려 불평불만나누듯 이노래를 들어보기.


무언가 마음에 안 차는데 그렇다고 당장에 내가 어쩔 도리가 없을 때, 해결할 수 있는 일보다 처치곤란인 일들 투성이라서 '입만 떡 벌리고' 두손 두발 놓고 있을 때, 그럴땐 그냥 하던 일을 해나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우울하지만 늘 해왔던 대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다. 변혁을 꾀할 힘도, 반전을 꾀할 군대를 모을 기술과 재주도 없으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묵묵히 일단은 따라가야 한다. 별 수 있나. 일단 작전은 현.상.유.지. 모순덩어리로 둘러쌓인 순간들 속에서 변화를 갈망하며 '움직이는' 순간보다 사실은 이렇게 '참아내고 견뎌내는'시간이 훨씬 많을 거다. 어쩔도리가 없다면 와신상담. 일단 멈춰서서 견디고 기다린다. 지금은 그게 필요한 시간. 답답하다면 이 노래.



(6) 노리플라이 <끝나지 않은 노래>

너에게로 달려가고 싶었어
어디로 향할지 몰라도
날 둘러싼 이 세상이 나를 움직여
내 맘 깊은 곳에 울리는
그땐 말하지 못했던 이마음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어

서성였었어.
붐비는 마음 서투른 모습들
꿈은 저 멀리 아주 먼 곳
손에 닿지 않았기에
너마저 볼 수 없었어 빛나는 눈동자.
날 이끌어 준 그 모습어


몇 해 전, 봄날 뮤직페스티벌에 갔다가 처음 들었던 노래.  뻣뻣하게 굳어가는 몸 구석구석의 조직이 신기하게 유연해지는 느낌이었다. 노래의 전주부터 마음이 촉촉하게 물드는 느낌. 노래 가사에서 등장하는 '너'라는 주체는 꼭 연인이 아니어도 된다. 내가 지향하는 무언가의 가치도 좋고, 지금 위치하고 싶다고 꿈꾸고 있는 그 어떤 자리여도 좋다. 곧 내가 갈 곳이지만 아직은 손을 뻗고만 있는 답답한 지경이라면 '도약'의 기운을 품은 이 노래가 딱이다.


나를 감히 달리게 만드는 그 무언가. 내 마음을 '댕그랑' 울리게 만드는 물컹한 무언가의 가치. 천천히 속도를 늦추더라도 나만 멈추지 않으면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 노래, 의리있게도 '끝나지 않는'다. 혹시라도 노래가 끝날 것 같으면 감쪽같이 살아나도록 '반복재생' 모드 눌러 놓으면 된다. 될 때까지 슬럼프를 깨려고 시도하면 어려운 순간은 물러가고 환희의 순간은 걸어오겠지. 그때까지 노래는 결코 끝나지 않을 거다.


(7) 이바디 <끝나지 않은 이야기>

이길 끝에 긴 호흡 소릴 참으며 어디
날 발견했을 땐 너무 낢았고
제법 여러번 아픔을 견딘
아름답던 존재란 걸 알게된 지금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깨달음은 늘 늦다. 시시각각 제 때 깨닫고 한번한 실수는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대비하고 헤쳐나간다면 삶이 얼마나 재미없겠나. 무릎을 탁 치기도 전에 "아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구나."다 인지하고 있다면 오히려 '아차차' 감탄사를 부르짖을 겨를이 없어서 참 심심하겠지 싶다. '그때 미처 몰랐던 것들'이기에 지금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배움과 가치가 있는 거겠지. 회사생활을 해나가는 날들 속에서나 사적인 인간관계를 꾸려나가는 날들에서건, 또한 연인과의 사랑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 있어건, 그 언제나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 있을진대 그걸 발견했다면 "이때다!" 라고 당당히 미소를 띄워야 한다. "늦었다!"고 울상짓기엔 내 주름이 아깝다.


"당신도 아직 늦지 않았어요"라고 조언을 건네기엔 나도 아직 어린 축에 속할 것 같다. 좀 더 풍성한 우여곡절담으로 다져진 어른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얘, 너네들 다 하나도 안늦었어."라고 귀엽게 구박하실 만도 하겠다. 이바디 호란이 조곤조곤 읊조리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노랫말과 같은 생각을 했던 예전의 시간들이 떠올라 마구 공감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나만 그런 이야기를 가진 것이 아님'에 안도한다. 모두가 그런시간 속에 스스로를 '늦었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하지만 분명한 건 나이가 몇이든, 내가 어디에 있든, '너무 늦은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금 당장 접어야 한다는 거다. 이건 고백하건데 나 스스로에게 건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노리플라이가 말했듯,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아고, 이바디가 읊조리듯, 이야기도 아직 계속되고 있다.


(8) 샵 <내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어른이 되는 단지 과정일 뿐이야
어른이 되는 단지 과정일 뿐이야.


갑자기 세월 잠깐 거슬러올라가줘야겠다. 중학교 2학년 때쯤 '가까이'와 'Tell me Tell me'로 사랑받았던 이 언니오빠들. 발랄상큼한 노래만 들었던 그 시절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금 이 노래 이 가사의 중얼거림이 너무 좋더라. "어른이 되는 단지 과정일 뿐이야. 어른이 되는 단지 과정일 뿐이야" 더 수식어를 보탤 필요도 없이 말그대로다. 어려운 변수가 닥치면 자주 생각했다. "그래. 뭔가 배우는 건 있겠지. 힘든 만큼 성장하겠지." 다른 날보다 조금 힘든날, 이 노래를 얹어두고 자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노래가 말해준 것처럼 어른이 되어있을 거라고.


겨울이 아닌데도 마음이 차가운 날이라면 이 노래가 딱이다. 주문을 외우듯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누군가가 속삭여주면 어느샌가 스스로가 제법 자라난 느낌이 든다. 노래 속 반복되는 가사의 힘은 이토록 대단한 걸. 누군가의 주문은 그렇게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쿵 들어와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무기로 자리를 잡으니 말이다. 멜로디에 맞춰 3분 30초 정도를 뱅글뱅글 도는 노랫말들 안에는 때론 좌우명이 숨어있고 오늘을 살아가야할 태도들이 어렴풋이 녹아 있다. 커피한 잔까지 타 마실 수 있다면 안성맞춤. 차가운 날들을 미처 예방하지 못했다면 이렇게나 담요같은 노래를 덮어주면 된다.


(9) 윤하 <Sunflower>

내가 꿈꿨던 이 길이 맞는건지
불안한 난 뒤돌아 봤어.
어제와 다를 수 있어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마
언젠가는 눈물멎으면
힘들던 시간이 말하겠지
내게 고마웠다고. 힘내라고. 괜찮을 거라고.


마음이 이래저래 어지러웠던 지점에서 드라마 한 편을 1회부터 꼬박꼬박 시간맞춰 시청했다. 드라마 <닥터스>.  2016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박신혜, 김래원, 윤균상, 이성경, 훈훈한 의사들의 이야기로 채워졌던 월요일 화요일 밤10시. 채널 고정했던 스무번 남짓의 시간들. 어쨌든 결국은 가상의 이야기이기는 하나, 쉽지 않은 상황들이 자꾸 눈앞에 닥쳐오는 가운데서도 묵묵히 '난 내 갈 길을 간다'는 식의 박신혜 캐릭터 '유혜정'이 좋아서 미루지 않고 챙겨봤다. 조롱거리가 되어도 오케이. 싫은 상황이 와도 묵묵히 오케이. 어찌 사람이 괜찮기만 하겠냐마는 안 괜찮은 상황도 억지부리지 않고 있는 힘껏 받아내는 그 강단을 배우고 싶었다. 허구의 캐릭터가 롤모델이 된 건 이 때가 처음이었다.


종종 마음이 유들유들 한없이 연약해지려고 할 땐, 박신혜가 연기한 '유혜정' 캐릭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곁을 스쳐간 이 노래 윤하의 'Sunflower'가 잔잔히 겹쳐 흐르던 느낌을 자꾸 되뇌보려 애쓴다. 슬퍼할 땐 슬퍼할 줄 알지만 힘을 내야할 땐 거침없이 힘을 줄 줄 아는 윤하의 목소리가 캐릭터의 느낌과 너무 닮아서 노래도 드라마도 윈윈했다. 더불어 유혜정을 응원했던 나까지 그 기운을 입었으니 나도 '윈'했다고 하겠다. 윤하가 힘주어 말하듯, "언젠가는 눈물 멎으면 힘들던 시간이 말하겠지. 고마웠다고. 힘내라고. 괜찮았고. 또 더 괜찮을 거라고." 지금 당장 이순간에 '더 좋은 날이 가득할 거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간절히 필요한 사람에겐 이만한 노래가 없다. 그게 만일 퇴사나 이직, 새로운 삶의 전환점을 앞에두고 짐짓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10) 페퍼톤스. Thank you

서두르지 않기를
흔들리고 물들지 않기를
복잡한 세상에 지치고 무뎌져
어지러워 하는 우리들
설레고 벅차던 처음의 한 걸음은
조금씩 더 멀어져가는데

함께할 수 있기를. 햇살이 비추기를
소리내어 하하 웃고. 모두 내려놓기를

 

마지막 열 번째 노래를 적는 지금, 이 노래를 틀어두었다. 페퍼톤스의 앨범들 안에는 유독 마음이 정화될 만한 곡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나한테,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상에 '고맙다'고 고백하는 이 노래는 결국 내가 따라가야할 마음의 길을 억지스럽지 않게 조언해 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늘 끌렸다. 수많은 멘토들의 강연, 혹은 자기계발서에서도 비슷한 메시지는 만날 수 있지만 잔잔하게 흐르는 약 5분간의 멜로디에 부드러운 단어들만 얹혀지니 믿을만한 사람에게 인생상담 받고 난 느낌이다. 음, 그러니까 그 언젠가의 캠퍼스 동아리 방에서 뚝배기불고기나 버터장조림밥 같은 배달음식 몇 개 시켜두고 동아리 선배랑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느낌. 편안한 조언이다. 마음결이 곤두서지않는.


결국엔 모두 이걸 꿈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함꼐할 수 있기를. 햇살이 비추기를. 한치 앞도 캄캄한 이 먼길의 어딘가에 소중하게 간직해 둔 널 만날 수 있기를." 지금 마음에 담아둔 그 순간, 그 장면을 '너'라고 칭해본자. 당장 눈앞에 보이는 건 없어도 어렴풋이 '너'를 떠올릴 때마다 두근거릴 수 있다. 퇴사 후 꿈꾸는 제 2의 인생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겠고, 이직 이후 새로운 도전의 순간에 놓인 내 첫출근 지점이 될 수도 있다. 터닝포인트에 앞서서 굴곡진 계곡, 최저치로 낮은 공간에서 헐떡거리고 있어도 언젠간 '그걸'만날 수 있다고 마음에 품는다. 5분동안의 노래 전개 안에서 그 희망을 되새기고 마음에 찍어넣을 수 있는 기회. 3분 30초 정도고 좀 더 간결하게 끝나버렸으면 이 노래 좀 서운할 뻔했다. 넉넉히 5분을 공들여 예쁜 단어, 마음에 담고픈 이야기를 풀어준 덕분에 제법 충분한 치유가 가능하다. 지하철 정거장 2개 정도를 지나는 사이 헝클어진 마음 가닥가닥을 바로잡고 굳어진 얼굴 근육을 살짝 풀어 배시시 미소지을 수 있다. 이 노래, Thank You!


이유도 모른 채 시작해 버린 삶
이 머나먼 길 위에서
끝없이 걸어갈 의미가 되어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면



다시 한번 쓰러져도
손을 뻗어주기를



오늘은 이노래를 꼭꼭 씹어 소화시키고 잠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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