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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Aug 13. 2020

나이 마흔엔 뭘 배우지?

보스턴 유학, 그 이후에 대한 취미 상상


각종 원데이 클래스 섭렵하기. 작년 초 무렵, 퇴사를 하고 유학을 오기까지 약 한 달가량의 시간이 주어졌다. 한국을 잠시 떠나 있기까지 마무리지어야 할 일들이 생각보다 많았지만 틈새시간을 짜내서 각종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 등록하고 수강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했다. 미국에 머무는 사이에도 이런저런 원데이 클래스 찾아 들을 수야 있겠지만 마음 편히 모국어로 수강하는 것만큼 힐링이 되진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유학 일상 속에 언어 적응하고 생활 적응하기도 바쁜데 취미 삼아 무언가를 배우러 가는 여유가 도저히 안 날 것 같았달까. '때는 지금이야!'라는 마음으로 몰아 들었다. 다섯 가지 종류의 파운드케이크 클래스, 3가지 종류의 잼과 스콘 클래스, 일본에서 인기 절정이라는 딱 그 스타일의 치즈 타르트 클래스 등등. 빵순이다 보니 주로 베이커리류 수업을 찾아드는 게 치유 그 자체였던 시절.  


새로운 '배움'은 일상에 지치고 뜯겨 균열된 틈을 메우는 힘이 있다. 주어진 하루하루를 꽤나 열심히 살다 보면 여기저기 닳아가기 마련. 이쪽저쪽 모서리마다 마모되고 매끈한 면마다 흠집이 나다 보면 그걸 지켜보는 스스로도 지쳐버리는 건 부지기수. 그럴 때마다 경험해보지 못한 무언가를 배우면 침잠해있던 에너지가 생동하는 느낌이다. 익숙한 걸로 닳아버린 일상을 새 경험으로 광택을 더하는 작업. 주말마다 찾아 듣는 원데이 클래스가 좋았던 이유. 자격증이나 인증서가 남지 않아도 자꾸자꾸 수강료를 덧대어가며 뭔가 '배워보고 싶었던' 이유 되시겠다.


새 경험으로
내 하루에 윤기내는 작업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것



<아무튼, 발레>를 읽으면서 적잖이 감화되었던 이유. 정확히 '발레'를 배우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뭐가 되어도 좋으니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거다. 읽으면서 책장 넘기기를 잠시 멈춰두고 생각에 잠겼던 부분도 바로 이 대목. 나이 들어감과 '배움'의 상관관계. 마흔이 넘어서도 심리적 에너지 수준을 지켜나가려면 무언가에 뛰어들어 배워봐야 한다는 것. 그게 어릴 적 희망사항과 연관이 있다면 더 좋겠고.



나이 마흔을 넘어서도
심리적 에너지 수준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린 시절 꼭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해보는 게 좋다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내게는 그게 발레였다.

- 최민영 <아무튼, 발레> 중에서




유학 그 이후, 새로운 '배움'들을 상상하게 됐다. '유학 중'이라는 명명 아래 아직은 새로운 '배움'을 추구할 여력도 여유도 없는 게 사실. 하지만 언젠간 다시 찾아오겠지. '경험해보지 않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 작가가 언급한 대로 '심리적 에너지를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몇 가지 비기들. 하나의 학위를 끝내고 난 뒤 조금은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소소하게 배워나가고 싶은 것들은 크게 세 가지로 좁혀진다. 어린 시절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 중심으로.

유학 그 이후, 난 또 어떤 배움을 갈망하고 있을까.


마흔, 불혹의 나이
새로운 선율로
내 안의 의심들을 다스리기


1순위는 바이올린. 악기 하나쯤은 할 수 있어야 하는 세상, 80년대 중반에 태어나 국민학교와 초등학교가 교차하던 지점에 학교에 다닌 밀레니얼 세대. 피아노 학원 안 다니는 친구들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건반에 익숙한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악기가 한 두 종류가 아닌데 다른 악기들에 비해 피아노는 그나마 대중적이었던 걸까. 바를 정자를 그어가며 수학 학습지 풀듯이 꼬박꼬박 배운 피아노. 같은 반 친구들 중 한 두 명 제외하곤 다들 한 번씩은 당연하듯 거쳐가는 악기여서였을지, 나는 늘 다른 악기도 배워보고 싶다는 목마름이 있었다. 왠지 악기를 두 개나 배우면 사치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고교시절 가볍게 제2외국어를 접하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두 번째 악기와 친구가 되어보고 싶은 마음을 늘 품고있다. 10대 때부터 바이올린 배우고 싶었는데 여전히 해보고 싶은 걸 보면 이 마음은 '찐'이겠지. 마흔이 될 무렵, 앞자리가 바뀌는 걸 기념하며 내게 바이올린 수업을 선물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불혹의 나이, 가녀린 줄을 섬세하게 조율해 가면서 세상 속 많은 의심들을 연주하듯 다스려가야지.


취미 바이올린 도전하기. 마흔 무렵 도전하고픈 꿈. 이 다음에 아들과 소박한 합주회 정도는 열 수 있지 않을까.


완전히 새로운 언어로
40대, 50대, 60대, 70대 살아보기


2순위는 새로운 외국어. 영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를 접할 때면 늘 같은 생각이 날 짓눌렀다. '영어나 좀 제대로 하고 생각해보지 그래?' 막상 유학생의 신분으로 살다 보니 영어가 흠잡을 데 없는 국제학생도 많지만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도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당당하게 활약하는 친구들 참 많았다. 공식 교과과정에서부터 영어를 접한 것만 따져봐도 족히 20년이 넘는데 여전히 '영어를 대단히 잘하고 싶은' 지점에 머문 내가 때때로 작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그러다 보니 새로운 언어에 대한 욕심을 내지 못했던 것도 어쩌면 자연스럽다. 제2외국어, 제3외국어를 시도하고 싶어도 늘 '영어'가 그 앞을 막았던 게 사실이니까.


언제까지 이럴 수만은 없잖아!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재미로 나이 들어가고 싶다. 50대에는 불어, 60대에는 스칸디나비아어, 70대에는 러시아어, 이런 식으로 지평을 넓혀 가다 보면 매년 외국어 배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지 않을까. 점점 외국어가 축적되는 삶을 살면 나이 드는 게 싫지 않을 것 같다. 한 살 더 먹을수록 단어 하나 문장 하나라도 내 안에 쌓여 있을 테니. 고로 마흔 가까운 지점엔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생각하고 새로운 단어를 외우는 재미에 빠져볼 테다. 지금까지 한번씩 접해 본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를 다시 시작해볼 수도 있겠고, 늘 배우고 싶다고 생각만 했지만 전혀 배워보지 않은 독일어에 대한 열망도 크다. (어렵다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접해서 얼마나 어려운지도 느껴보고 싶고) 여기에 언급하지 않은 또 다른 외국어가 될 수도 있겠다.


수영, 11살의 기억을 더듬어
41살 다시 태어나기



마지막은 운동 한 종목. 왠지 마흔 무렵, 배워보고 싶은 세 가지 리스트를 적는 데 있어서 운동 하나쯤은 숙제처럼 곁들여져야 할 것 같잖아. 고민 끝에 위시리스트에 넣은 것은 다름 아닌 수영. 11살 때 너무나 즐겁게 배웠던 수영인데 지금은 그 어떤 영법의 흔적도 몸에 남아있는 게 없다. 토요일에도 학교 갔던 시절. 수업이 끝나고 나면 친구들이랑 동네 실내 수영장에서 4시간을 훌쩍 넘겨 자유수영 찬스를 즐기다 나왔던 게 진짜 '나' 맞나? 지금은 물에 뜰 수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아기를 키우다 보니 차츰 물놀이 가야 할 일도 늘어날 텐데 "저기 가서 아빠랑 놀다 와"라고 심심한 말만 반복하기는 싫은 거라서 이것만큼은 꼭 다시 배우고 싶다.


물에서 힘을 쫙 빼고 배영을 즐기면서 이고 지고 왔던 하루하루의 스트레스를 쏴르르 흘려보내고 싶고, 굴곡진 영법이 매력적인 접영을 있는 힘껏 뽐내며 출산과 유학으로 너덜너덜해진 몸 안에서도 이렇게나 에너지가 깃들어 있었다는 걸 스스로 확인해보고 싶다.


아기가 매일매일 새로운 걸 배워가듯이



상상. 끊임없이 '배울 게 '많은 유학생활 중 또 달리 배우고 싶은 것들을 무한 상상.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에서 백영옥 작가는 빨강머리 앤의 이야기를 통해 전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람이 상상했기에 태어난 것. 상상력은 반드시 너의 힘이 되어줄 거라는 것." 새롭게 배우고 싶은 것들을 호기롭게 설레며 배우고 있을 수년 뒤의 나를 '상상'해 본다. 그렇게 반짝일 유학 그 후, 마흔의 나를 상상해보는 하루. 기분 좋은 상상으로 고단한 유학생활 견뎌보기.

    


혼난다고 멈춰선 안돼.
그건 상상력이란다.
인간만이 가진 멋진 능력이지.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람이 상상했기에 태어난 거란다.
네 상상력은 반드시 너의 힘이 되어줄 거야.

백영옥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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