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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어쩐담, 미국출산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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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Nov 16. 2019

철분제 권하지 않는 나라

달라도 너무 달라, 한국 vs 미국 (3)

달라도 너무 달라, 한국 vs 미국

미국 산부인과 다섯 번째 방문. 한 가지 고민에 빠지고야 말았다. 한국에서는 다들 그렇게 한다고 들었는데 미국에서는 다른 게 있었기 때문. 미국에 와서 임신과 출산을 모두 경험하고 있으니 이쪽 법에 따라 맞춰가야 하는 게 당연지사일텐데, 자칭 뼛속까지 한국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 나와 비슷한 또래들의 한국판 경험담들, 조언들 또한 그냥 흘려듣기는 쉽지 않다. 18주차 다섯 번째 방문에서 가장 중요했던 내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이것. "한국 임신여성들은 보통 16주차때부터 철분제를 먹는다고들 하거든요. 저는 Iron supplement 따로 복용하지 않아도 될까요?"

한국에서 출판된 임신관련 서적. 17주에서 20주에 해당하는 권장사항. 한국에서는 보건소에서도 나눠준다고하니 조바심날 수밖에.

흔히들 가입하는 맘 카페를 참고해봐도, 한국판 임신 출산 서적 두 권을 꼼꼼히 살펴봐도 임신 중기에 해당하는 16주부터는 '철분제를 복용하라'고 권장되고 있었다. 임신 초기에는 엽산, 중기부터는 철분제를 먹으면 되고 단 철분제 복용 시 흔히 변비 때문에 고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제법 많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임신 확인 이후, 보건소에서도 엽산과 철분제를 배부한다고 익히 들어왔기에! 약 복용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15주차 방문 때까지도 따로 철분제에 대해 언급이 없어서 다음번에 처방받거나 괜찮은 브랜드를 추천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 어라? 따로 수치가 낮지 않기 때문에 복용하지 말라고 한다. 괜한 변비만 유발할 수 있다고.

저 진짜 안 먹어도 되는 것 맞아요?

현재 복용하고 있는
임산부용 멀티비타민제로 충분해요

지금 먹고 있는 약 역시 병원 첫 검진 전, 미국맘들이 많이 먹는다는 비타민제를 직접 구입해서 먹었던 것. 엽산과 철분이 상당량 함유되어 있다. 이미 필수 성분이 함유된 비타민제를 먹고 있기에 굳이 따로 또 보충할 필요가 없다는 것. 약을 더 구입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 좋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진짜 안 먹어도 돼?' 내심 물음표가 자꾸만 간질간질 떠올랐다. 한국 또래맘들은 기본 영양제에 이것저것 함량을 더 많이 얹어서 더 많은 약들을 복용하는 것 같았는데. 담당의의 조언에 따를 마음이기는 했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주 들락거렸던 맘 카페에 글을 남겨보았다. 한국에서는 요즘 어떻게들 임신 중기를 넘어가고 있나. 나만 철분제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건 아닐까.

미국에서 현재 복용중인 멀티비타민. 병원진료 전, 스스로 알아보고 구입했던 비타민제. 엽산800mcg, 철분 27mg이 들어있다.

맘 카페에 질문글을 남겼던 이래 가장 많은 댓글이 달렸다. 의견은 정확히 반반. 나와 같이 미국에서 임신 출산을 경험하고 있는 맘 선배, 혹은 또래 예비맘들은 나와 같은 경험을 공유했다. "멀티비타민만 먹으면 된대요.", "철분제 복용이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처방을 따로 해주고 그게 아니라면 먹을 필요 없다고 했어요.", "미국에서는 권하지 않던데요." 등등.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지만 한국의 또래 맘들은 정반대의 목소리를 강력히 냈다. "미국은 우리랑 출산 문화가 달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철분제만큼은 꼭 먹어야 해요.", "임산부 건강을 위한 제도는 한국이 더 낫다고 봐요. 산후조리만 봐도 그렇잖아요.", "토종 미국인과 식습관이 달라서 그런 거겠죠. 꼭 드시길 권장합니다." 등등.

참 다르다. 미국과 한국. 다들 각자가 선택하고 경험한 길이 옳다고 믿는 수밖에 없겠지. 나 역시 '선택'을 해야 한다.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나는 그냥 임산부로서의 '기본'을 지키기로 했다. 지금 내 담당의와 스태프의 권장사항에 맞춰 따라가는 것. 기본적인 동, 서양인의 체질과 임신출산문화가 다를 수밖에 없는 건 인정하지만, 어쨌든 임신 첫 검진부터 출산까지 이곳 미국 현지에서 경험해나가고 있으므로 현지 의료진을 믿고 따르는 것 역시 내겐 중요한 과제일 테니.

성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기. 대부분 많은 미국 예비맘들이 선택해 먹고 있는 것 같았는데, 다행히 담당의도 이거면 충분하다고.

비단 철분제 복용에 대한 문제뿐만이 아니다. 비교하고 선택에 대해 고민하자면 끝이 없다. 한국과 비교해서 좋은 점 (이를테면 아기 성별을 빨리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는 것)도 있고 때론 아쉽고 불편할 것 같은 점들도 제법 눈에 띈다. (보스턴에는 산후조리원이 없다는 것, 산후조리에 대한 개념이 한국만큼 강조되지 않는다는 점, 출산 진행 시 미세한 처치들이 한국의 보편적인 처치들과 좀 다르다는 점 ; 이를테면 한국맘들이 흔히들 말하는 출산 3대 굴욕과 관련해서). 임신 출산을 경험한 친구나 선배들 역시 대다수가 한국판 경험담을 들려주기에, 나 역시 병원에 갈 때면 자꾸만 이 말을 읊게 되는 걸 어떡하리.

저기, 한국은 이렇다는데요

자꾸만 반복하는 말한마디. “한국에서는 이렇다는데요?”

긴 한주를 마무리하며 한국판 임신출산 서적 두 권을 정독하고 있자하니, 또다시 '철분제' 대한 강조 단락이 눈에 띈다. 내 담당의는 먹지 않아도 된댔는데 한국판 정보들에는 '철분제' 이야기만 있는 것 같아서 또다시 내심 신경이 쓰인다. 의사 선생님 말에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1인 여기 추가요. 괜한 조바심에 다시 한번 복용중인 멀티비타민 성분을 확인해본다. 엽산 (Folic Acid 800 mcg, Iron 27mg). 하루 철분 권장량이 30mg라고 쓰여있으니 이 정도면 그래도 괜찮겠지? 따로 더 안 먹어도 되겠지?

의학적으로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하고 그렇지 않고를 가리고자 함은 아니다. 어떤 게 더 좋고 안 좋고의 차이는 아닐 거다. 단지 그냥 다를 뿐이다. 다만 낯설었다. 예비 엄마로서 겪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두고 두 나라의 권장사항이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것이 신기하면서도 여전히 생경하다. 물론 개개인의 건강상태에 따라 맞춰가는 게 가장 우선이겠으나, 때때론 한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 미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 것이 있다. 미국에서는 모름지기 이래야 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오히려 갸우뚱하게 되는 것들도 있다.

이런저런 다름 속에서 어쨌든 너만 건강하다면!

남은 임신 기간, 또 어떤 '다름'을 느끼게 될까. 은근히 다른 문화차 속에서 나는 또 어떤 말들에 고이 귀 기울이고 있을까. 또 어떤 선택들을 하며 대장정을 마무리 짓게 될까. 글을 쓰고 있는 동시에 내가 남겼던 질문글에 또 다른 새 댓글이 달렸다. "저도 미국 맘인데요. 저도 안 먹어도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괜찮겠죠?" 고민하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한국의 또래 경험담을 힐끗거리며 타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예비맘들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