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 한국 여행을 마치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은 무난했지만, 마음은 은근히 긴장된 상태였다. 그 이유는 가방 안에 들어 있는 것들, 그러니까 엄마가 챙겨주신 반찬들 때문이었다. 냄새나는 가자미식해는 입국심사보다 더 날카로운 심문관 같았다. 가방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틀림없이 존재를 드러내며, 미국 땅에 고향 냄새 한 조각을 밀반입하려는 내 마음을 매섭게 추궁하고 있었다. 나는 셔틀버스를 향해 걸어가며 킁킁거리는 상상 속 승객들의 코에 이미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주차장은 십 분 거리였고, 나는 십 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긴 것이었나 초조해했다. 운전기사는 필리핀 억양이 있는 남자였다. 일하는 병원에 필리핀 간호사들이 많았기에 나는 그 억양을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는 덩치는 크지 않았지만 짧게 자른 머리에 약간 걸걸한 목소리로 “Good afternoon!”을 외쳤다. 모든 승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나는 조용히 앉아, 스멀스멀 풍겨오는 바다 냄새를 모른 척하며, 어서 이 셔틀이 나를 내 차까지 데려다 주기를 바랐다.
셔틀버스는 어느덧 공항을 빠져나와 101번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기사 아저씨는 카페인을 너무 들이켰는지 어쨌는지 꽤 들떠 있었고, 각 승객에게 어느 주차장으로 가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고속도로를 막 빠져나가려던 찰나, 기사는 갑자기 "어이쿠!" 하고 외쳤고,
셔틀버스는 갓길에 급히 멈춰 섰다. 나는 순간 무슨 테러라도 난 줄 알았다.
“아니, 고속도로를 걷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데 저러고 있어!”
기사는 오른쪽 창문을 가리켰고, 내 시선도 그쪽을 향했다. 셔틀버스가 멈춘 바로 그 뒤에서 누군가가 걷고 있었다—붉은 재킷을 입은 여인은 마치 길 위의 불씨 같았다. 이글거리는 햇살 속에서 바람과 차들 사이를 헤치며, 꺼지지 않으려는 작고 고집스러운 불꽃처럼 걷고 있었다.
기사는 뒷좌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저분 좀 태우고 갑시다!”
버스 문이 열리자, 쌩쌩 지나가는 차들의 바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어디 가세요? 고속도로를 걸으시면 안 됩니다, 불법이고요, 위험합니다!”
여자는 덤덤했다. 마치 이런 일이 가끔씩 있는 일인 것처럼.
“00 갑니다.” 그녀는 짧게 말했다. 기사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곳까지는 꽤 멉니다. 일단 타세요. 제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태워다 드릴게요.”
그녀는 마치 포위망 속의 작은 새처럼 주변을 훑어보다가, 간신히 찾은 나뭇가지 하나에 몸을 맡기듯, 조용히 셔틀에 몸을 실었다. 그녀가 앉은자리는 내가 앉은자리에서 대각선 앞쪽이었다.
셔틀이 다시 움직이자 운전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다 큰일 나요! 정말 위험한 일이에요.”
그 목소리를 텍스트로만 옮긴다면, 그저 윽박지르는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듣고 있던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말속에는 ‘제발 무사히 다니세요. 당신이 걱정됩니다.’ 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조용했다. 앞을 응시한 채 손은 무릎 위에, 마치 동상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나는 내 눈을 그녀의 뒷모습에서 떼어낼 수 없었다. 무슨 일을 겪었을까? 남미 어디서 왔을까? 불법 이민자일까? 오늘 무슨 사연으로 고속도로를 걷고 있었을까? 직장은 있을까, 지갑 안에는 현금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태워달라고 부탁할 친구 한 명조차 없는 걸까?
류시화 시인은 그날도 김혜자 씨와 함께 네팔의 어느 시장길을 걷고 있었다. 관광지 특유의 소란함, 줄 지어선 좌판들, 그리고 관광지 어디에나 흔히 볼 수 있는 진열된 장신구들.
그 여인도 그런 좌판을 벌인 사람 중 하나였을 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고개를 땅으로 늘어뜨리고 훌쩍훌쩍 울고 있다는 사실. 갑자기 김혜자 씨가 그녀 앞에 멈춰 섰고 그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울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 여인의 얼굴은 울음과 웃음이 겹쳐진 수채화처럼 번져 있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통했던 것이다.
그 후, 김혜자 씨는 그녀의 좌판 위에 있는 팔찌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지갑에서 300달러를 꺼내 물건을 파는 여인에게 건넸다.
그 여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돈과 김혜자 씨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좌판을 빠르게 정리하더니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그날의 장사는 거기서 끝이었다.
시인은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다가 왜 그렇게 큰돈을 건넸느냐고 물었다. 김혜자 씨는 한참을 생각하지도 않고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한 번쯤 횡재하고 싶지 않겠어요? 인생은 누구에게나 힘들잖아요.”
그랬을 것이다. 오래전 책을 읽다 받은 어떤 감동이 내 마음 한 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나도 모르게 비슷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주머니 속을 더듬기 시작했다. 지폐 몇 장이 손끝에 느껴졌다. 여행에서 쓰고 남은 돈이었다. 셔틀이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멈췄고 내가 내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났고, 그녀의 손에, 말없이, 지폐를 쥐어 주었다. 꽤 큰돈이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했지만, 이건 글을 위한 예외라고 변명할 수밖에 없겠다. 그래도 다른 승객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우리는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나는 그녀의 빨간 재킷 위로 솟은 어깨쯤을 톡톡톡,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힘내요’라는 말은, 그런 때엔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게 더 진심 같아서.
주차장에 서 있던 내 차는, 일주일을 묵묵히 기다린 늙은 개처럼 익숙한 소리로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