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계란을 호호 불면서 먹어라

Baptizing the devil를 읽고 2

by ENOCH 박두일

오늘 아침 나는,
계란 두 개를 깨어 프라이팬에 얹고 기다리는 동안
과학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진실에 가장 가까운 것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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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냉장고 문에 붙어있는
고등학생 딸의 과학 숙제를 떠올렸다.
렙톤, 쿼크, 중간자.
딸 아이는 쿼크가 초콜릿 이름이면 좋겠다고 했다.


물론, 과학은 멋지다.
전등을 켜고, 비행기를 날리고,
공원에서 우리를 GPS로 집까지 데려다준다.
하지만 말이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든 지 벌써 40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과학이란 게 정확히 뭐냐고 묻는 질문에
우리는 여전히 “글쎄요”라고 말한다.


내가 과학자라면
매일 아침 칠판 앞에 서서
먼지를 털며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자, 여러분. 오늘은 진리에 조금 더 가까이 가보도록 하죠. 물론 어제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요.”

누군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다는 모나리자 그림을
안료로 나누고 파장의 간섭을 설명해낼 수 있겠지만,

왜 우리가 그 그림 앞에 멈춰 서는지는
결코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혹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소립자의 상호작용으로 환원시켜도
그의 구절 하나에 왜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은 결혼을 결심하는지는
과학적 공식으로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진실이라는 이 친구는
왜 이렇게 옷장을 자주 들락날락 하는거야?
어제는 플루토가 행성이었고
오늘은 쿼크의 수가 다르고
내일이면 뉴턴의 법칙조차
“한때 유용했지만...”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조심히 뒤집었다.

딸은 거의 익지 않은 노란자를 좋아한다.

그래, 과학은 위대하지.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진실을 설명해주는 공식보다
이 노른자의 고소함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더 가까이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넌 아직 모른다,
진실이 항상 가장 똑똑한 사람을 통해 오지는 않는다는 걸.”

때로는 빅풋처럼 보이고,
때로는 네스 호에서 조용히 부상하는—
그게 바로 과학일지 몰라.
우리의 가장 확신에 찬 추측이자,
가장 오래된 질문이 담긴 수첩 같은 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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