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ure or Pain VS Pain or Pleasure
눈을 떠보니 한국의 아침이다.
고양이가 내 머리 앞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다.
여행 내내 맡겨졌던 것이 서러웠나?
아내는 아직도 로마 광장의 분수 옆을 걷고 있는 듯하다.
눈빛은 첫날, 오션뷰 숙소에서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찍힌 그 눈빛이 아니다.
대신 충혈된 흰자위가 정수리 쪽으로 슬쩍 번지고 있다.
아들은?
비엔나 호텔의 폭신한 침대에서 아직 체크아웃하지 않은 투숙객처럼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당기고
내가 “학교….”라고 말을 꺼내자 고개를 휙 돌려 머리까지 덮어버린다.
수업시간에 졸 거라고 담임에게 미리 카톡을 보냈으니
녀석에게 도망갈 구멍은 없다.
나는 커피포트를 들여다본다.
오, 이것은 마지막 남은 나의 pleasure 버튼!
잊어야 한다, 카라칼라 욕장의 야외 오페라, La Pergola 미쉐린 별 셋 식사,
와인 한 잔과 노을을 배달하던 숙소의 테라스 테이블까지.
…여긴 군포시 외곽, 푸르지오 아파트 1718호.
낡은 식탁 의자를 당기니 드르륵 소리를 낸다.
씨리얼 그릇을 옆에 두고 한 숟갈 입에 넣은 채 고지서 봉투를 하나씩 연다.
흘깃 보니 씨리얼 그릇은 소여물통 같다.
B2 버튼을 누른다.
웃고 떠들던, 그래서 나도 멋쩍게 웃음을 지어 보여야만 했던 투숙객들은 어디로 가고
이제는 무표정한 윗집 아줌마와 낯선 이웃들이 서 있다. 빨리 문이 닫히기를 바라는 듯 하다.
(정확이 말하자면, 그 아줌마는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층간 소음을 딱 한 번 항의했을 뿐인데, 나를 원수처럼 대한다.)
붉은 시동 버튼을 누른다.
출근길에 신호등은 몇 번이나 나를 막아설까.
고통을 선택하면 기쁨이 따라온다던 말이 진실이길 바란다.
기쁨을 먼저 골랐다가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니, 믿어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