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수업이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코로나 19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내게 있어 가장 큰 변화는 수업이었다. 원격 수업
잘하고 싶었다. 열심히 수업을 만들었다. 수업을 찍고 편집하고 파일을 변환하고 업로드하고, 여기까지 많은 에너지를 끌어 다 쓰고 학교에서 구축한 플랫폼에 탑재된 순간 피드백의 난관이 이어진다. 1차시의 수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열정과 시간을 쏟았는가? 수업을 위해 동영상 편집 어플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구매했고 데이터 무제한으로 갈아탔다. 방학은 달콤한 것 같기도 하다. 방학이라고 해도 자주 학교에 나가야 하지만 그렇지만 쉼과 여유를 찾았다. 무엇으로 나를 재충전할 수 있는가 하던 차에 새로운 것을 배우기로 하였다.
수업 제작에 허덕이던 지난가을에 후배 교사님의 아이패드를 활용하여 자신의 필기를 바탕으로 쉽게 수업을 제작하는 과정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고 큰 마음먹고 주문을 했었다. 그런데 배송 준비 기간 동안 이 가격이 우리 가족의 삶의 질을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만, 워시타워를 주문하고 말았다. 아이패드는 내게 오려다가 돌아갔고 환불받은 금액에 조금 더 보태어 세탁실에 자리 잡은 (별안간 계획에 없던) 워시타워는 세탁으로 인한 남편과의 여러 갈등을 해소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노트북 대신 조그마한 폰으로 계속 수업을 편집했다. 코로나가 곧 끝나서 원격 수업이 사라지겠지라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아쉬웠다. 그렇게 기나긴 2학기가 끝났다. 8월 말의 짧은 여름 방학이 끝나고 1월 중순에 종업식을 했으니 2학기는 정말 끔찍하게 길었다. 수업 준비의 고통으로부터 일시적 해방으로 자유를 누리고 있을 때 남편이 선물을 하나 건네주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이패드’
내가 수업 만들 때 쓰고 싶어서 그토록 갖고 싶었던 패드
크리스마스 선물로 12월에 주문했는데 배송이 오래 걸려서 어제 도착했다며 건네준 때는 1월 26일이었다. 해를 넘겨 새해 선물이 되어 버렸다.
당장에 수업을 만들 것도 아니고 이것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유튜브에 검색을 해 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굿노트’였다. 유료 어플이니까 그냥 메모장에 키보드를 활용해서 텍스트도 쓰고 손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려보았다. 재밌었다. ‘이것만으로도 이렇게 재밌는데 다른 것을 배우면 얼마나 더 신기할까?’
대학교 후배이자 인근 지역에서 꽤 널리 자기만의 필체로 인정받고 있는 캘리작가 ‘정륜’이 생각났다. 그녀는 디지털 캘리그래피, 아이패드 드로잉 수업도 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륜아, 언니 다시 캘리 좀 배우고 싶은데 수강 가능할까?”
코로나 때문에 조심스러웠지만 그녀는 보고 싶은 동생이기도 했고, 중요하게도 내게 이 패드를 활용할 방법을 가장 세심하고 꼼꼼히 알려줄 수 있는 선생님이었다.
“네, 언니. 패드 사셨어요?”
“응, 그렇게 됐어. (웃음 웃음, 으쓱으쓱)”
“그런데 패드로 뭘 배우고 싶으신 거예요?”
“나 말이야...? 음, 패드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하려고. 크리에이터!”
“... “
다음 주 주중에 한 번 공방에 와서 대면 수업을 하기로 하고, 그 이후에는 줌으로 원격 수업을 한다고 했다. 지난주 공방에서 첫 수업을 하던 날 유료 어플이라 주저했던 ‘굿노트’와 함께 처음 듣는 ‘프로크리에이트’라는 앱을 시원하게 결제했다. 신세계였다. ‘나는 모르던 신세계, 나만 몰랐던가? 유저들이 이 얼마나 재밌는 시간을 즐길 때 나는 하나도 몰랐다니? 자신만의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면서 즐거워했을까? 지금이라도 이 새로운 외래문물을 수용하여 적극 배우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2월 4일 목요일 오후의 그 날의 수업을 잊을 수가 없다. 설 연휴로 한 주는 쉬고 오늘 오전 2차시 나는 2차시 원격 수업을 들었다. zoom으로, 듣는 내내 심장이 쿵쾅거렸다. 너무 설레고 재미있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연애하는 마음과도 같았다.
그러고 보면 그즈음 나는 ‘나만의 책 만드는 방법, 독립출판’ 원격연수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 스케치북에 그냥 그림을 그려보았고 패드로 혼자 글자를 써 보았다. 혼자 종이에 하니 잘 안되던 것이 한두 시간의 수업으로 패드 위에서 멋지게 완성되는 것을 보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검색 중에 ‘하루북’이라는 앱을 만났고 갑작스러운 프로젝트로 아이들의 일기를 기록화하여 책을 만들겠다는 큰 꿈을 찾았다. 그리고 그것은 브런치로 이어져 와 내가 다시 글을 쓰게 했다. 여기까지 글에 담기지 않는 나의 충격과 놀라움, 즐거움과 희열 같은 것은 모두 아이패드라는 기기에서 기인하였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렇게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건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오마에 겐이치, 난문쾌답
사는 곳은 바뀌지 않았지만 패드는 결국 내가 새로운 곳에 가서 평소 만나지 않던 다른 사람을 만나 시간을 달리 쓰게 만들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멋진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들어 낼 힘이 내 안에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