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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Sep 26. 2020

아이와 바다 낚시

당분간 안 갈 것 같은 피로감

코로나로 인해서 거의 매주마다 가족과의 시간을 보낸다. 아이가 좋아하고 우리 부부도 즐겨하는 일, 오늘은 섬좌대 낚시에 도전했다. 지난 여름에 너무 좋았던 연대도, 지난주에 친구들과 가서 참돔도 잡고 돌돔도 잡고 무려 11종에 물고기를 잡으며 손맛과 행복을 누리고 와서인지 아이들과 같이 가자고 했다. 주중의 피로도 엄청나고 다음주 걱정도 구만리쯤 되고 하루에 소화해야하는 루틴도 여러가지이지만 나 또한 낚시라면 좋아하는 일이니까 조금 피곤할 것이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행복감이 더 클거라며 오케이 콜을 외쳤다. 매일 생물도감tv 유투브를 보면서 이런 저런 해양생물을 직접 잡고 보고 만지고 싶어하는 큰 아이의 오랜 꿈을 이뤄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도 했다.


아침 일찍 여섯시 반도 못된 시각 큰 아이가 더 먼저 일어나 우리를 깨웠다. 남편은 친구집에서 낚시대도 받아야 하고 채비도 사야하고 점심 도시락도 사야하는데 일곱시 오십분까지 매표소에 도착해야 한다며 챙기는 내내 마음이 급했다. 덩달아 조급했지만 난 이런 마음 급하게 시간 쫒겨 준비하는 것을 싫어한다. 유유자적 불현듯 적절한 타이밍에 딱 하고 싶은만큼만 그런 느긋함이 좋아하지만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7시 55분 우리는 달아항에서 도착해 여러 섬들을 순차적으로 들르는 배에 올라 바다를 보았다.




이른 아침의 바다를 보면 참 좋다. 배를 탔을 때 바람을 가르며 느껴지는 공기와 주변의 풍경은 정말이지 여행을 떠나는 것 같고, 바다를 터전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활기와 에너지를 얻는 것 같다. 아슬하게 도착했지만 배에 오르고는 너무 달뜨는 기분, 아이들과 좋아하는 낚시하고 다 못걸었던 연대도 산책로에 올라 또 다른 풍경의 바다를 가슴에 담아야지 했다.



낚시대 4대의 채비를 한 남편이 던진 낚시대에 작은 전갱이 한마리가 올라왔다. 아 전갱이랑 고등어를 늘 많이 잡아왔으니 오늘도 그렇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입질이 오는데도 몇 번을 놓쳤고, 새우를 끼우는 건 그래도 지렁이보다 낫지 하면 비린내를 참으며 반가운 입질을 기다려 서너마리의 잡어와 전갱이를 잡았다. 그리고 잘 기다리니 좀 작기는 했지만 청소년같은 감성돔 한 마리도 잡았다. 그리고 오전 10시 반이 넘어가면서부터 바다에서는 이무런 소식이 없었다. 떡밥을 던지자 몰려드는 눈 앞의 학꽁치떼가 찾아오고 망상어 치어떼가 보여도 낚시대는 조용하기만 했다. 너무 잠잠해서 올려보면 새우가 다 멀쩡하게 달려있었다. 가장 먼저 아이들이 흥미를 잃기 시작했고 오늘의 낚시터로 배정받은 뗏목에서 다른 곳으로 가자고 계속 졸라댔다. 혹 힘들까봐 가져온 원턴치텐트에서 유뷰브를 보여 주다니, 이 곳에 와서 아이는 다른 낚시유튜버가 잡아올리는 손맛을 비대면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러려고 그 새벽부터 부산하게 챙기고 무거운 짐을 싣고 이 곳에 온 것이 아닌데, 가져온 음식은 별로라며 잘 먹지 않고 배는 고프고 바다는 잠잠하고 햇살을 뜨거워지고 뗏목을 울렁거리고...



아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짐을 정리하고 뗏목에서 연대도로 나가기로 했다. 슈퍼 할아버지댁에 짐을 잠시 맡겨두고 추억의 몽돌해변을 걷고 못가본 산책로를 가기로 했는데 복병이 나타났다. 늘 동생이 동행해서 동생의 원터치텐트를 가져오면 동생이 접어서 정리를 했기 때문에 전혀 이것이 문제가 될지 몰랐다.


아마 삼십분에서 한 시간 가까이 남편이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 검색을 잘못해서 다른 텐트접는 걸 보고 따라했으니 될 턱이 없었고 나는 모르는 관광객 중에 그냥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해서 빨리 해결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남자 자존심과 직결되는 문제였음을 몰랐던 거였다. 아무튼 아이들과 우리는 주변 산책을 나섰고 남편은 유튜브 집중 시청과 분석으로 텐트정리를 마치고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섬을 나가는 배에 올랐다. 편안한 의자에 딱 앉아 달리는 배 밖 풍경을 보는 순간 그냥 편안히 여행할 걸 괜히 낚시를 한다고 이 고생을... 후회가 몰려들고 있었는데 하늘이 너무 예뻤다.



짐은 많고 배는 고프고 그닥 활동시간이 길지도 많이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배를 타고 나와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 집으로 오는 40여분 되는 시간동안 나는 집중 수면상태에 빠져 기억이 없었고 눈을 뜨니 어떻게 올라온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정신없이 씻고 침대에 누워 다시 잠들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그 사이 집에 오면서 아빠가 사 온 충무김밥을 맛있게 먹고 만화도 보고 책도 읽고 이모랑 통화도 하고 놀기도 했다고 한다. 수면에 취해 몸이 일어나지지 않았지만 샤워를 마친 딸 아이가 계속 드라이를 해달라고 한 것 같았다. 대충 말려주고는 다시 침대로 빨려들어가 잠을 잤고 주변이 껌껌해진 7시 반이 넘어서 깨어났다. 남편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나만큼이나 피곤해보이고 얼굴에 스트레스 때문인지 트러블이 올라와 샤워 후에 연고를 바른 상태였다. 딸 아이는 여덟시에, 오자마자 잠들었다가 배달시킨 햄버거를 마시듯 먹은 남편은 9시 반께 다시 쓰러져잔다.



남편은 지난주와 이번주 같은 장소 다른 사람들과 낚시를 했는데 얼굴에 묻어나는 감정이 천지차이다. 아마도 앞으로 당분간은 절대 아이들과 4인 가족이 함께 낚시를 간다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큰 아이는 또 에그박사의 바다 생물 소개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다. 절대 해산물을 먹지 않지만 어찌나 바다생물을 좋아하는지, 그나저나 이 아이는 피곤하지 않은 것인지 강철체력인 것인지 거실에 따뜻한 물을 받아와서 피곤한 내 발을 담궈 족욕을 시켜주었다. 만사가 귀찮고 힘들고 눈꺼풀이 무거운데 이 호사를 받으니 글로 남겨두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원아, 아마 아빠가 이제 낚시 안간다고 할 것 같아. 자아실현은 조금 더 커서 하자. 특히 해루질은 좀 더 많이 자라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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