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들, 딸이 남긴 ‘대한이 살았다’
지난 3월 1일, 102주년 3.1절 기념행사를 TV 생중계로 같이 보던 날에 우리는 가수 정인과 래퍼 매드크라운의 ‘대한이 살았다’ 공연을 보았다. 그날은 아직 쌀쌀한 기운이 가득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탑골공원에서 기획된 야외무대로 최소한의 참석자로 진행되었기에 이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들과 무대에 오른 가수가 얼마나 악조건의 상황에 있었는지는 나는 따뜻한 우리 집 소파에 앉아 보고 있었지만 그들의 힘겨움이 그냥 절로 느껴졌다. 아무튼 그들이 그 빗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른 노래는 바로 ‘대한이 살았다’였다. 그 노래는 예전에도 몇 번 들어보기도 해서 그런지 아이가 쉽게 따라 불렀다.
큰 아이는 7살이었던 2019년 그해 그 더웠던 여름 방학에 나와 단둘이서 상하이 여행을 떠났다. 빼곡한 답사와 같은 일정에 비몽사몽 버스에서 내려 혹시 우리가 푹푹 찌는 사우나에 왔냐고 물었었다. 그렇게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임시정부를 보러 떠난 그 여행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는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 몰랐었다. 이후를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인생에 여러 의미 있는 순간 중에 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이제는 글을 쓸 줄 아는 초등학생으로 자라서 그 노래를 다시 듣기를 하고 싶어서인지 더 알고 싶어서인지 유튜브에 검색을 해서 여러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하신 심영식 애국지사 아드님께서 인터뷰에 응하며 1919년 당시 어머니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전해주는 영상이었고 또 하나는 설민석 선생님께서 유관순 열사를 기념하여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서 이야기를 전해주는 영상이었다. 3.1 운동 100주년에 정재일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박정현의 목소리에 김연아의 내레이션이 나오는 버전으로, 2020년에 그 곡을 다시 부르는 루나, 매드크라운의 버전으로도, 상위에 링크되는 양주초 학생들이 직접 그리고 노래 불러 편집한 버전으로도 듣고, 안예은 버전의 국악풍 선율로도 들었다. 이렇게 다른 몇 가지 버전이긴 했으나 같은 곡을 몇 날 며칠에 걸쳐 수십 번 듣다 보니 우리의 고막에서 곧 피가 흐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터뷰나 노래를 보던 데에서 더 나아가 두 아이는 영화 ‘항거’의 17분이 넘는 긴 영상을 찾아보는 열정도 보였다.
그렇게 둘째 아이가 이 노래에 전염되기 시작했다. 그 어려운 이해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전중’, ‘일복’ 등의 어려운 노랫말에도 아이는 곧잘 그 뜻을 다 안다는 듯 구슬프게 노래를 불렀다. 정말이지 귀가 따갑게도 불렀다.
그렇게 한참을 영상을 보며 노래를 재생해놓고 제 목소리가 갖는 거친 선율을 입혀 열창을 하다가 갑자기 내게 물었다.
“엄마 일본군이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세 했다고 잡아가서 때리고 싸우고 했어?”
...
왜 그랬다고 설명해줘야 할까?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우리의 독립을 향한 다양한 노력을 중3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쳐왔다. 그런데 이렇게 스스로 궁금해하는 우리 집 꼬맹이들에게는 뭐라고 일러줘야 좋을까?
아이들이 불러주는 마음과 생각을 담아내면서 정말 나이를 떠나 한국인은 아니 사람은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끄럽게 계속해서 노래했던 이유가 무서워서 계속 불렀다는데 갑자기 울컥하려고 했다. 3.1 운동과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8호 감방에 수감되어 이듬해 다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던 그분들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나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그것을 이 아이들은 온전히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족이라는 것은 어떤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나누며 성장할 수 있는 감사한 존재이다. 나는 가끔 잔소리 마왕으로 군림하다가도 이 아이들이 성큼 자라 내게 가르침을 주고 동기 부여가 되고 해서 내가 가끔 아이들에게 배울 때가 있어 친구같은 감정을 느낀다. 어떤 감정과 생각을 느끼는지 온전히 알 수 없었던 웃고 울고 떼쓰고 하던 시기에서 이렇게 또록하게 감정을 드러내 말하는 어린이가 되어서 가끔은 골치가 아프고 말로 질 때도 있지만 이렇게 그 감정을 받아쓰는 과정은 아이를 공부하는 시간이다. 대한이 살아서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는 표현이 과연 어떤 것인지 알기까지 아직 많은 날들이 필요하겠지만 역사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로 자라나고 있어 엄마는 오늘도 감사하다.
어떤 것이든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왜?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로 넓게 이어질 수 있는 그런 나와 너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