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면

아들 시점, 딸 시점 그리고 전지적 엄마 시점

by 서사임당

“엄마,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한참을 촐랑 맞게 뛰던 지원이가 내 손바닥 위에 하나 윤서 손바닥 위에 하나 꽃잎을 살포시 올려주면서 우리에게도 각각 소원을 빌라고 하였다.


“넌 뭐 빌었는데?” 물으니


“난 코로나 종식”


우리 아들 1년째 같은 소원이구나.


“윤서는 소원 뭐 빌었어?”


“나 인형 많이 갖게 해 달라고 했어”


우리 딸 인형 많은데 또 갖고 싶었나?


내 소원은 뭘까?

엄마가 되면 이런 건가? 왜, 이런 걸 빌게 되는지 모르지만 내 소원은 우리 엄마가 그랬듯, 우리 할머니가 그랬듯


“가족들 건강하고 큰 사고 없이, 이렇게 사는 것”




2021.03.30. @어율곡


이야기의 발단은 아들이었다. 퇴근 후 아이들과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는 길에 큰 아이가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하며 요리조리 춤을 추듯 뛰어다녔다.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아서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고 다시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십여 분 걷는데 계속 춤만 추더니 도서관에 다다를 무렵 갑자기 큰 소리로 불렀다.


“엄~~~~ 마~~~~”


계속 허탕이었는데 한 번에 떨어지는 세 장의 잎을 잡았으니 얼마나 기뻤는지 한참이나 멀어진 저 멀리서도 그 마음이 어찌나 기쁜지 느껴지는 목소리로 나를 찾았다. 작은 아이와 함께 뛰어가니 한 장씩 나누어 주며 소원을 빌라고 했다. ‘봄의 낭만은 이런 것 아닐까?’ 속으로 생각하며 소원을 빌려고 하는데 도통 빌어야 할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지금처럼 일하고 쉬며 조금 천천히 아이들이 커가고 그러니까 뭐 지금처럼 살아도 좋은데... 나의 고민이 한창일 때 아이들은 벌써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다시 바람결에 잎을 하늘로 보내주고 있었다. 무엇을 빌었는지 궁금했는데 도서관 운영 종료 시간이 가까워 정신없이 뛰었다.



벚꽃비를 맞으며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 아빠가 퇴근하고서 셋은 다정하게 저녁을 먹고 가래떡을 구워 꿀에 찍어 먹었다.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생활의 달인 [생존의 달인편]을 유튜브로 시청하면서 영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글쓰기 시간이 늦춰졌는데 적당한 주제를 못 잡다가 도서관 가던 길에 그 벚꽃잎 이야기를 하니 아이의 마음을 담아 시를 지었다. 아이의 가장 큰 소원은 1년이 넘도록 같다. 코로나 종식, 마음이 참 그렇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는 소원을 빌 때마다 코로나 종식을 기도한다.




2021.03.30. @어윤서

큰 아이 글이 마무리될 때쯤 작은 아이가 오늘은 자기도 남겨야겠다고 퇴고나 번복 없이 거의 바로 타이핑 가능한 문장을 술술 불러주었다. 제목도 없고 그냥 생각을 쭈욱 불러주는데, 참 7살의 그 순수함이 가득해서 사랑스럽다. 오빠가 분명 빌면 이루어진다고 해서 빌었는데 아무런 변화 없음으로 소원을 빈 지 서너 시간 만에 그것이 가짜라고 단념해버리는 칼 같은 판단력, 인형을 갖고 싶었다는 개인적인 욕망 그 자체도 너무 순수하고 사랑스럽다. 아이들의 이모도 작은 아이의 이 솔직함이 주는 글이 참 매력 있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더 그렇다. 낭만은 집어치우고, 마지막엔 정말 순수 그 자체의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꽃이 왜 떨어지냐고 묻는데, 갑자기 너무 철학적인 질문 같아서 가슴이 쿵했다. 그냥 꽃피면 피는구나, 꽃 지면 지는구나 했는데 이렇게 왜?라고 생각할 수 있구나.



퇴근 후 아이들과 보내는 평범한 일상 속에 작은 벚꽃잎 한 장이 훗날 두고두고 이야기할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떨어지는 벚꽃을 볼 때마다 나는 아이들 9살, 7살 봄이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