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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Sep 08. 2021

시간에게 끌려 다닌 날

안굿모닝한 다음날이 더 중요하다

화요일은 분명 다른 날보다 공강이 하나 더 있는 여유가 있는 날이다. 그런데 어제는 시간적 여유 대비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고 계속 쫓기는 느낌이 드는 효율이 낮았던 하루였다. 어제 하루를 다시 떠올려보니 모든 것은 시간에게 내가 쫓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는데 생각보다 가볍게 일어나지 못하고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여기에서부터 하루의 삐끄덕거림은 시작된 것이다. 그래도 6시 30분부터 30분이라도 나를 위해 쓰기로 마음먹고 책을 펼쳤는데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브런치에 글을 쓰려고 제목과 함께 한 문장을 쓰고 마침표를 찍었다.

"굿모닝."

친구에게 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걸 보내려고 인증 사진을 찍고 톡으로 전송했다. 그 순간 불현듯 떠올랐다. 매일 점심으로 먹는 내 샐러드 도시락을 지난밤에 싸지 않았다는 것을. 휘리릭 냉장고로 가서 로메인 상추를 꺼내 헹구어서 뜯었다. 파프리카와 사과를 썰고 냉동실에 있던 치킨너겟을 꺼내어 에어프라이에 데웠다. 아이들 먹을 우유와 빵을 식탁에 올려두고 작은 아이 식판을 챙겼다. 아이들 가방에 넣을 물병도 채우고 내 도시락통에 준비해둔 샐러드 재료들을 적절히 담아서 출근 전까지 냉장고에 다시 두었다. 저녁에 해두어야 하는 일들을 미룬 결과 짧은 나만의 아침 시간도 자유롭지 못했다.


친구에게서 카톡이 답장이 왔다고 알람이 울렸다. 오늘 아침에도 그녀는 밑줄 그으며 경제서 209쪽을 읽고 있었고 "파이팅"이라고 했다.


첫 문장 다음으로 글이 이어지지 않고 커서만 움직여대는 모니터를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저건 가짜 인증인데 오늘 오전 공강에 꼭 글을 마저 써서 올려야겠다.'


적당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집에서 나왔는데 평소에 출근하는 방향과 달리 신호등을 5개나 거쳐야 하는 병목 구역으로 우회전을 해버렸다. 15분이 넘게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우중충한데 비가 올까? 다시 또 해가 날까? 저 신호 끝에 내가 갈 수 있을까? 출근 시간까지 늦지 않겠지?'

출근에 최적화된 선곡에도 음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냥 생각 없이 앞차 범퍼와 신호등만 주시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이번 주부터 차들이 훨씬 늘어나서 출근길 도로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늘었다. 아찔하게 출근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갓 내린 원두커피를 내 잔에 채우고 일정표를 점검하고 업무 창을 열었다. 정보 공시 기간이라 관련 계획서를 점검하고 장애인 학대 신고자 연수를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리고 아뿔싸. 보건 선생님 메시지가 보였다.


"자가진단 부탁드립니다."


'평소 매일 아침 루틴으로 일어나면 매일 먼저 하는 일이 앱을 켜서 자가 진단을 하는 것인데, 내가 정말 안 한 걸까?'

 앱을 켜서 확인해보니 미참여라고 되어 있었다. 아이도 오늘은 자가진단을 하지 않고 학교로 들어간 모양이다. 서둘러 진단을 마치고 답장을 보냈다.

"아침에 정신이 없었나 봐요. 죄송해요. 바로 했어요~"


1교시 종이 쳤다. 오늘 수업할 반들의 진도를 한번 더 확인했다. 수업 시수를 나누면서 동아시아사를 따로 주당 1시간씩 배정했는데 3개 반은 다른 선생님께서 1시간씩 수업을 진행하신다. 그런데 내가 주당 3시간 모두 들어가는 학급은 학생들의 이해의 흐름을 고려해서 송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쭉 이어서 수업을 진행해서 학급마다 제각각 나가는 진도가 달라 다양한 시공간을 함께 내달려야 했다. 그래서 교재 연구와 수업 자료를 다시 정리했다. 설명할 때 참고하려고 빌려온 책에서 '정화의 원정'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부터 시작해 명, 청의 대외교류로 이어지는 정책 변화까지 읽다 보니 어느새 1교시가 끝나가고 있었고 독서기록 파일에 몇몇 내용을 다시 정리해서 타이핑하면서  시간이 많이 흘렀다. 다시 2교시를 알리는 종이 쳤다. 오늘 안내받은 사이트에 접속해서 회원가입 절차를 밟아 연수를 신청했고 연수를 들으려는데, 갑자기 교무실에 학생이 찾아왔다.


“선생님, 우리반 수업이신데 왜 안 들어오세요?”

“선생님 3교시 수업인데? 내 수업이야?”


시간표를 다시 확인하니  수업이었다. 1반은 3교시가 아니라 2교시 수업이었다. 1교시 시작 전에 확인했을 때는  3교시로 보였던 것일까?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고 수업에 늦어서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앞에 날린 5 때문에   조급해질 것이 뻔했다. 그리고 실제 시간에 살짝 쫓기는 듯했다. 수업이 끝나고 공강 시간도 아주 빠른 속도로 흘렀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 메이트와 각자의 샐러드 도시락을 먹고 교정을 조금 걷고자 나갔는데 비가 내렸다. 다시 올라오니 보란듯이 해가 뜨길래 다시 내려가 걸었다. 밤늦게 해안도로에 나가고 싶지 않거든 낮에 조금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좋다. 그래서 열심히 걸었다.


그 연수 사이트는 네트워크 환경이 불안정하다고 계속 멈추었다. 총 13페이지를 넘겨야 1강을 이수할 수 있었는데 재생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재생 바를 끌어서 볼 수 없고 끝까지 차분히 들었을 때 다음 클릭이 가능했다. 2시간 인정해주는데 4강으로 이루어져 훨씬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연수, 나는 3강의 48%를 들었을 때 도저히 오늘 나의 인내심으로 이 연수를 모두 다 이수할 수 없음을 깨닫고 노트북 전원을 껐다. 퇴근 전 30분이 남았다. 3층에 있는 학교 도서관에 가서 경제와 철학, 신간 코너를 한참을 들여보며 읽고 싶은 책을 찾았는데 그런 책이 없었다. 빈 손으로 돌아왔고 그대로 퇴근했다. 주차장에서 내 차에 시동을 걸었다가 갑자기 껐다.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시립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대출하고 가기로 했다.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는 아이들 동화책을 대출해둬서 여유가 없으니 여기서 빌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2층의 종합열람실에서 30여 분을 다시 책 숲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찾았다. 고민 끝에 거실 공간에서 어떻게 아이들과 공부하는지를 알려주는 자녀 교육 관련 책 1권과 경제 분야 2권을 골랐다. 자동 대출반납기에 회원증을 올리고 대출 버튼을 눌렀는데 붉은색 경고창처럼 ‘대출 정지 회원입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아 당황스럽다. 아침에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아이들이 빌린 동화책이 떠올랐고 도서관에서 며칠 전 보내온 메시지에 9월 6일까지 반납일인 것이 생각났다. 사서 선생님께 여쭤보니 이렇게 연체되어 대출이 정지되면 지역의 모든 도서관에서도 이용이 안된다고 하셨다. 하는 수 없이 어쩔 수 없음을 알고 또다시 빈 손으로 돌아왔다. 다시 시동을 걸고 집으로 가는 길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친구가 밥 먹자고 하는데, 먹고 들어가도 될까?”


의문문의 형식을 갖춘 문장이었지만 결국 오늘은 밖에서 밥을 먹고 오겠다는 말이었다. ‘그가 저녁에 없으니 애들이랑 대충 챙겨 먹으면 되겠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고 했지만 마음이 벌써부터 지쳤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연체된 동화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으로 가야 하니까 지하주차장으로 책 챙겨서 바로 내려오라고 했다. 주차장에 도착해도 아이들이 없어 다시 집으로 전화를 거니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유튜브 영상 보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오라고 했지만 날더러 올라오라고 했다. 아이들로부터의 거절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집으로 들어오니 너무나도 허기져서 서둘러 냉장고 문을 열고 나물을 꺼내 식은 밥과 비벼서 먹어 치웠다. 허기가 잦아들자 아이들이 먹고 싶다던 라면을 끓여주었고 계란볶음밥을 곁들여 주었다. 먹고 나니 몰려오는 졸음에 나도 모르게 소파에서 입을 벌리고 잠에 들었다. 8시가 못 되어 다시 깨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널브러진 식탁 위, 건조기에서 뛰쳐나와있는 마른빨래들, 다시 수북 쌓여 세탁기로 들어가길 바라는 옷들, 싱크대에 설거지거리들. 아 숨 막히는 광경.


8시면 필라테스 시작하는 시간인데 오늘은 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자고 일어나니 해야 할 일들만 보여서 속상했지만 서서히 잠에서 깨어난 나는 그것들을 차분히 해내었다. 아이들은 하루에 풀기로 한 문제집 분량을 스스로 해내었고 씻고 난 후 알아서 잠을 청했다. 뒤늦게 말똥해진 나는 늦은 밤 세탁물이 돌아가는 동안 책을 읽었는데 마음속에 쿵하는 구절을 찾았다. 오늘 하루 종일 해야 할 일들에 끌려다닌 이유는 결국 나 스스로 내게 주어진 시간의 주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향상심이 강한 사람이 전날보다 매일 1퍼센트씩 자신의 행동을 개선하여 그것을 1년 365일 지속해간다. 그리고 그것을 1.01의 365승이라 생각하면 1이 약 38이 된다. 한편, 어찌 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아서 전날보다 매일 1퍼센트씩 행동이 절하된 상태로 1년 365일을 이어나가면 0.026이 된다. 20년, 30년이라는 시간 간격으로 샐러리맨을 보고 있으면, 이 수식이 무척이나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와다 이치로, <18년이나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후회한 12가지>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진 하루를 살아내었을까?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수업이었고 동아리 활동에서 학생들의 의미 있는 생산 활동을 도왔다. 애터지던 문제의 연수를 마저 이수하고 퇴근했고, 늦을 듯했지만 시간 맞춰서 예약된 시간에 가서 아이는 치과 치료를 잘 마무리했다. 연체된 것은 어쩔 수 없었고 6시가 지나 도서관 운영시간은 끝났지만 자가 반납기를 이용해 모든 책을 반납했다. 매일 아침 글 발행을 목표로 해서 지금은 충분히 많이 늦었지만 시간을 쪼개어 틈틈이 쓴 글을 이제 마무리한다. 찰나의 노력이 쌓여 어제보다는 조금 더 괜찮은 기분으로 저녁을 맞이했다. 오늘 저녁에는 맛있는 밥을 먹고 가족들과 걷고 돌아올 것이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10분은 더 일찍 일어나 더 충만한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벌써 내일 아침이 기대된다. 웃으며 굿모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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