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밥을 차리는 그 위대한 일을 내가 합니다.
돈을 받고 일하면 직업이지만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란 말이 있다.
직업으로 일하면 급여를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아이가 있다고 그가 어른이 아니며, 밭이 있다고 모두 농부가 아니다.
- 어디서 읽고 남긴 기록
남편이 내가 밥을 차릴 때마다 한 끼 6,000원 이상의 값을 지불하지 않는다. 아이들도 당연하게 “잘 먹겠습니다.” 한마디만 할 뿐 그냥 밥을 먹는다. 나는 돈을 받지 않는 밥 차리는 일에 대한 나름의 소명의식을 갖고 매일 같이 부엌에 섰다. 어릴 때 먹어왔던 푸짐했던 밥상, 그 속에서 엄마의 사랑과 정성을 느끼며 자랐다. 이제와 돌이켜 생각하니 그 음식에 담긴 부모의 마음을 먹으면 없던 기운도 생기고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지레 겁먹었던 일에도 용기가 났던 것 같다. 지금껏 당연하게 먹어 왔던 밥상이 얼마나 수고스러운 일인지 지금은 안다. 하지만 나 또한 엄마처럼 가족들에게 따끈하고 맛있는 밥을 주고 싶었다. 또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2011년 1월엔가 지역의 도예학교에 가서 도자기를 만드는 연수를 신청해 하루 6~8시간을 흙을 만졌다. 재밌고 즐겁자고 신청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처럼 예쁘게 빚어지지 않는 그릇과 물레를 돌리며 그릇을 생산하는 듯한 전문가처럼 보이는 다른 연수자들 틈에 주눅 들어 흙 만지는 것이 되려 고되게 느껴졌었다. 유일한 낙은 도자기 선생님 아내분 (그분 또한 완성된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는 예술가셨다)께서 차려주시는 어느 한정식 집보다 맛있는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매일 같은 그릇에 음식이 담기는 법이 없었고 같은 찬도 없었다. 음식의 맛 또한 그랬지만 음식을 담는 도자기와 상차림까지 그때 열흘간 그 식탁에서 나는 예술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첫 발령지에서 만나 식구처럼 지냈던 선생님들과 매일 같이 밥을 먹고 또 이따금 술을 마시고 학교 안팎에서 끊임없이 대화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진정한 소통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 나를 포함한 몇 명은 40대 기혼자셨던 부장 선생님과 함께 그 도자기 연수를 들었고 그 예술작품같았던 점심을 함께 먹었다. 밥을 먹고 믹스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대화가 이어졌다.
“서선생, 나중에 결혼하면 꼭 남편한테 반찬통에 그대로 내어서 밥 주지 말고 반찬 그릇에 담아서 차려줘. 엄청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서 남자가 식탁에서 행복해져.”
“맞아요. 정말 이렇게 밥 차려 주면 진짜 힘 날 것 같고 그래요. 잘 새겨들으세요”
“그럼 선생님 와이프 분들은 매일 이렇게 밥을 차려주세요?”
“당연히 아니지. 반찬통에 그대로 주지. 뭐 가끔 기분 좋을 땐 그럴 때도 있긴 한 것도 같고”
그때는 분명 그런 마음이 생겼다.
‘나도 꼭 나중에 결혼하면 이렇게 정성껏 예쁜 그릇에 예쁘게 담아 밥을 차려주어야지.’
지금의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 당돌하게 물어볼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 남편이 퇴근하고 와서 그렇게 아내한테 차려주면 안 되나요?”
10여 년 가까운 결혼생활이 이어졌다. 1년은 365일이니까 적어도 이천 번 이상의 밥을 차렸으리라. 매일이 다 그 식탁처럼 그랬던 것은 아닌데 그럼에도 나는 최선을 다해 밥을 준비했다. 내가 가장 성실한 자세로 꾸준히, 되도록 열심히, 그러면서도 즐겁게 해 온 일이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먹음직스럽고 정갈한 밥상을 차린 일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이 조금 빨라졌고 아직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 맛도 괜찮아졌다. 앞으로 나아갔으니 후회는 없다. 그런데 최근 자연식물식을 접하고 나서 나는 ‘정갈’과 ‘푸짐’에서 ‘소박’과 ‘건강’을 담는 식탁으로 밥상의 방향을 바꾸어 나갈 생각이다. 내겐 식탁 혁명과도 같은 대단한 전환이 되리라 생각한다.
어제는 집밥의 온기가 필요한 날이었다. 추적추적 비도 내렸고 수업도 많았고 몇몇 아이들이 많이도 엎드렸다. 수업에 지치는 날이라 그런지 호르몬 탓인지 얼큰한 것이 땡겼다. 집 앞 마트에서 장봐서 오자마자 돼지 목살이랑 김치에 간 마늘 한 숟가락 듬뿍 넣고 푹 끓였다. 어머니 깻잎지랑 새로 산 파김치랑 밑반찬 다 꺼내고 데운 밥이랑 급하게 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보통 저녁이면 식탁에 마주 앉아 찌개 하나를 앞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밥을 먹는다. 남편은 가끔 대접받는 왕의 기분을 느낀다. 대신 “나 만나서 좋지? 고맙지?”엄청난 나의 생색도 거쳐야 한다. 맛의 경험을 공유하면 관계는 더 깊어진다. 밥을 먹는 것은 내겐 하나의 놀이이고 역사이다. 나눔이고 즐거움이다. 무엇이든 좋아하는 일이어야 꾸준히 할 수 있다. 내겐 밥을 차리는 일이 그중 하나이다.
‘오늘 저녁은 또 뭘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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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임당가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