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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Sep 11. 2021

그들에게 수영장 호텔이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을 때의 행복

“엄마, 나 진짜 진짜 수영장 있는 호텔 가고 싶어.”

“엄마도 가고 싶은데, 사람들 많은 곳은 안 돼서 그래.”

“엄마, 솔직히 우리 집에 돈이 많이 없어?”

“원아, 왜 그런 걸 물어?”

“엄마 돈 많이 없으면 나랑 윤서랑 저금통에 모은 돈 중에 5만 원씩 더해서 10만 원 보탤 테니까 수영장 호텔 가면 안 될까? 8월에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때 선물로 호텔 가려고 윤서랑 돈 모은 거 준다고 했잖아.”

“... (10만 원으로 못가 얘들아.)”

“엄마, 나 진짜 진짜 가고 싶어. 내 생일에 아무것도 안 사줘도 되니까 수영장 있는 곳에 가자. 응? 그러면 안 될까?”

       

호텔이나 리조트, 펜션이나 풀빌라, 캠핑장까지 세상에는 가고 싶은 숙소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하룻밤에 몇십만 원이나 주고 사람들로 득실거리는 로비의 번잡함과 자고 나면 나가기 바쁘게 쫓기는 마음,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제대로 휴식도   없는 공간까지 어딘가  내키지 않았다. 요즘 숙소들은 기준인원 2인에 최대 인원 2인인 룸도 많고, 최대 인원이 4인이라도 별도 추가 인원 요금을 내야 하고 먹고 마시고 하다 보면 금세 수십만 원이 카드에서 빠져나가기에 그런 숙소로 가는 여행은 어딘가 즐겁지가 않다. 소비자로서 소비의 쾌감을 맛볼  없게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일까? 내가 지불하는 돈으로 모든 공간을 온전하게 즐길  있는 것도 아닌 코로나의 상황에서 수영장에서도 마스크를 계속 착용해야 하고 이용 시간도 한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물속에서 함께 하는 것이 어딘가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바람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달이 가고 어느새 해도 넘었다. 그러다 이번 봄에 남편의 생일이자 어린이날을 맞아 큰마음먹고  개교기념일을 활용한 평일 특가 찬스를 이용해 프라이빗한 고급 리조트에 갔었다. 남편 생일 기념이었으나 남편은 퇴근하고 부리나케 달려와 급하게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수영장 이용 종료 시간이 되기 전까지 급하게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새벽같이 출근했었다. 주말과 비교하여   아낄 거라고  잘못된 선택이었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내게 수영장은 극기 훈련과도 같은 공간이기에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아이들은 수영장이건 바다건 계곡이건 물이라는 물은  좋아하는데 내가 싫다 보니 수영장 노래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막고 외면했었다. 여름 내내 물놀이 가고 싶다는 아이들을 어찌어찌 어르고 달랬는데 가을의 문턱에 서서 가만히 생각을 했다.

     

‘그들이 그렇게 노래하는 이유는 분명 있을 테고, 그리 가고 싶으니 군것질 함부로 하지 않고 열심히 용돈을 모아서 내게 내밀었겠지. 나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그렇게 이루기를 꿈꾸면서, 내가 아이들의 그것을 무시하고 막는 건 우습지 않은가? 엄청 힘든 일도 아니고, 우리에게 있는 돈과 시간과 마음을 내면 되는데...’(물론 그것은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편과 고민 끝에 작은 아이 일곱 번째 생일을 맞아 그들의 소원 풀이를 해주기로 했다. 엄청난 검색과 비교 끝에 우리는 친정과 우리 아파트 사이에 있는 작은 섬에 있는 독채 풀빌라를 예약했다. "내일 우리 수영장 있는 펜션으로 갈 거야."라고 말해주니 아이들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이 안 온다고 해놓고 갑자기 잠들어 버렸다. 그리고 두 아이 모두 새벽같이 자고 일어나 하는 첫마디가 “엄마 나 수영장 호텔에서 수영하는 꿈 꿨어. 너무 행복해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어.”였다. 이것이 무어라고, 그렇게나 들뜨고 좋을까?

     

오늘 아이들이 원 없이 수영하고 침대에서 잠에 들었고 나는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행복 그 이상의 감정이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몰라 표현을 찾기도 어려운데 아이들에게는 좋은 침구에서의 숙박과 따뜻한 온수에서의 수영이 꿈에 그리던 행복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들의 그런 행복을 보는 것, 그것이 행복 이상의 행복이었고.   

   

“오늘 너무 행복했어. 호텔 데리고 와줘서 너무 고마워. 엄마 아빠.”     

 

아이들에게 다양한 기회와 경험을 주되 적당한 결핍을 함께 주어야 한다고 믿어 왔다. 세상에 좋은 것이 있다면 가장 먼저 또 전부 다 가져다주고 싶지만 그러지 않으리라. 그들에게 주어지는 고맙고 감사한 일을 당연한 권리로 착각하지 않도록, 그들도 우리도 늘 경계하기를 바란다.



TMI)

숙박비 초특가 198,000원, 10,000원 할인쿠폰, 36개월 이상 2인 추가 요금 40,000원, 온수 이용료 50,000원, 기타 경비 헤아리지않겠다 원. 아무튼 많이 들었다. 오늘의 이 감정은 지출 금액 이상의 행복 이리라. 우리는 이렇게 하려고 평일 내내 애터지게 일하고 돈 버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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