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에게도 있을까 궁금했던 것, 듣고 보니 놀라운 것
어쩌다가 블로그 구석에서 2015년 서른살의 상반기를 점검하면서 끄적여 놓은 나의 버킷리스트를 찾았다. 어쩌면 원대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주 소소한 그런 꿈들이 하나씩 번호 붙여져 기록되어 있었다. 지금의 서른의 중반이 된 나의 삶에는 그것이 현실이 되어 이루어진 것도 있고, 이룬 듯 이루지 못한 듯하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는 것도 있고, 여전히 마음에 그리는 꿈처럼 남아 있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랜 기간 그것을 마음에 품고 또 이루려 해 왔다는 것은 여전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나는 서른의 나보다 그때 바라던 모습으로 조금이나마 가까워진 모습이 되었다. 이 버킷리스트를 보면서 처음엔 피식 웃음이 났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래도 그때에 이런 진지한 고민을 했던 것이 고맙기도 했다.
주말에 아이들의 하고 싶은 것들을 이루었을 때의 행복에 관한 글을 담았다. 그리고 난 후 나의 서른 살 버킷들을 우연히 발견했고, 생각은 '지금의 우리 아이들의 버킷은 무엇일까? 그런 것이 7살, 9살 꼬마들에게 있기는 할까?'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오늘은 뭘 하지?'라고 매일의 하루를 고민하는 아이들의 버킷 리스트를 함께 알아보기로 했다. 때마침 노트북을 켜서 한글 문서를 하나 열고자 했는데 저장된 한글 문서를 드라이브에서 찾아 열지 않고 갑자기 한글 2018을 클릭했다. 그렇게 한글 작업을 시작했던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거기서 마주한 새문서 서식에 상단 두 번째에 자리하고 있는 버킷리스트를 보았다. 주변의 것들도 알아서 아이들의 버킷리스트를 담으라고 돕는 듯했다. 잠 잘 준비를 마치고 이리저리 거실을 배회하던 아이들을 테이블로 불렀다.
"얘들아, 너희들 2021년에 꼭 이루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10가지가 있을까?"
"응? 엄마, 나 그런 거 있어!! 그런데 이뤘지 호텔 수영장!"
"이룬 것 말고 앞으로 또 이렇게 이루고 싶은 거 정리해보자. 엄마가 여기 보이지, 이 파일에 너희들꺼 각각 써서 냉장고에 붙여줄게."
"엄마, 나 그럼 지금부터 말할까?"
"응. 둘이서 한 번에 하나씩만 이야기해. 시작~"
"나는 아빠랑 배드민턴 왔다 갔다 100번 신기록 달성하기"
"음.. 엄마 나는 오빠 사슴벌레 키우는 것처럼 물고기 키우기, 그중에서 용치놀래기!"
"그럼 나는 내년 봄까지 사슴벌레 산란해서 유충 낳으면 성충으로 키우기."
"나는 내 마음대로 그리고 싶을 때 자유 그림 그리기"
하나씩 하나씩 아이들의 마음에 있던 하고 싶었던 일들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와 한글문서의 버킷리스트 파일에 저장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그런 버킷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재미로 해보려던 것이었는데 기록을 마치고 나서 나는 깜짝 놀랐다. 아주 분명하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이기까지 했다. 핑퐁처럼 하나씩 왔다 갔다 하면서 말하는 것이어서 오빠와 여동생의 버킷에 비슷한 것도 꽤 있는데 10개를 다 찾고 보니 완전히 두 아이는 다른 성향이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이루고 싶은 10개의 꿈들을 떠올려본 것만으로도 그 꿈에 닿는 것의 시작일 것이다. 현실적이기도 하고 한편 비현실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것 같아도 보이는 그들의 모든 꿈들을 응원한다. 오늘 아침은 아이들의 귀여운 꿈들로 충만한 기운을 얻는다. 아이들 그림에 있었던 지니와 그들의 꿈이 생각나는데 그림 속 지니 대신 이 꿈들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이라는 것을 천천히 알아갈 것이라 믿는다.
서른 중반이 된 나의 버킷리스트도 차분히 정리해볼까 한다. 아이들처럼 바로 10개를 주르륵 자연스럽게 말하기는 어려운 게 어른의 무게인가? 나의 버킷리스트는 조금 더 고민하고 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