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smellperfumes Jul 04. 2022

빈티지 향수의 아름다움  

왜 하필 빈티지 향수인가

들어가며


현재 한국에서 향수 및 향 관련 제품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향수 블로거나 유투버들도 늘어나고 있고,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다양한 향수를 접할 기회가 늘어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만큼 향수를 즐기는 방법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새로 나오는, 인디/니치 브랜드의 향수를 좇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는 이런 향이 좋더라, 하고 결정한 후 한 제품을 꾸준히 자신의 시그니쳐 향수처럼 쓰는 사람들도 있다. 향수는 어쨌건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서, 내가 어떤 이미지를 내보이고 싶은지, 혹은 내가 어떤 향을 선호하는지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에서는 내가 왜 하필 빈티지 향수를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쓰고 싶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빈티지 향수의 아름다움을 전파하고 싶다.




1. 빈티지 향수는 도대체 무엇인가?


빈티지 향수의 정의는 사실 굉장히 느슨하다. Scentgrail(해외 향수 블로깅 사이트)에서는 "현재의 재조합으로 인해 향이 변하기 전의 조합을 가진 향수는 빈티지 향수라고 합니다. 론칭 후 10년 정도 지난 향수는 대략 빈티지 향수라고 인식됩니다." 라고 적혀 있다. (출처: https://scentgrail.com/scent-grail-learning-center/vintage-perfume/) 그러나 Basenotes(해외 향수 리뷰 사이트)의 포럼에서는 20년 정도 지난 향수를 빈티지 향수라고 친다는 사람도 있고, 정확히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이게 빈티지라고 하는지에 대해 통일된 정의는 없는 것 같다. 나는 대략 2000년대 이전의 향수를 빈티지라고 부르고 있다. 2003년부터 향수 재료에 대한 규제가 공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 왜 하필 빈티지 향수인가?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향수는 패션과 같아서 한번 트렌드가 돌면 다른 트렌드가 돌았다가 다시 예전의 트렌드를 재해석한 향수가 나오곤 한다.


물론 현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향이 마린, 혹은 아쿠아 향인데, 이건 소위 "물냄새"가 나는 향이고, 90년대에 엄청나게 유행했다. 혹은 구르망 계열(음식 냄새, 특히 디저트에서 나는 단 향, 설탕, 솜사탕, 카라멜, 초콜릿 등을 뜻한다. 후각적 디저트라고 설명하기도 한다)향의 경우 티에리 뮈글러의 엔젤을 위시해 90년대에 굉장히 유행하고, 지금도 어느 정도 흔하게 맡을 수 있는 향이다.


또, 다른 지역에서 많이 쓰이던 향이나 재료가 서양에서 유행하면서 재발견되기도 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오우드 향 붐이 바로 이런 것이다. 오우드는 한국에서는 침향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중동, 극동,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쓰이던 향이다. 그러나 서양에서 오우드는 2000년대에 와서 유행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서양 전통의 향수 업계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재료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향수는 계속된 재해석과 창조에 의해 만들어지고, 이 때문에 나는 어떤 향수를 감상할 때 기존에 무슨 해석이 있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었다. 무슨 틀이 존재했고, 이것을 어떻게 변형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게 어떠한 중요성, 혹은 창조성을 보이는지 알고 싶었다. 예로 에디션 드 프레데릭 말의 카넬 플라워의 경우, 프레데릭 말은 2005년 WWD와의 인터뷰에서(출처: https://wwd.com/fashion-news/fashion-features/frederic-malle-s-take-on-tuberose-560340/) 이 향수에 대해 "튜베로즈 향수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은 고전, 그러니까 프라카스를 따라하려 하는데, 나는 자연의 튜베로즈와 가까운 향수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그는 프라카스는 "살짝 성숙하고 팜므파탈적"이라고 묘사하며 자신은 "아주 신선하고 자연같은" 튜베로즈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것을 읽은 후 나는 프라카스가 대체 어떤 향수인지 몰랐기 때문에 이게 왜 혁신적인지, 창조적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 수 없어 좌절감을 느꼈다.


“Every single person making a tuberose fragrance is trying to knock off the classic, which is Fracas,” said head perfumer Frederic Malle. “I had an idea to create a fragrance that’s very close to natural tuberose.”
Malle describes the classic Fracas by Robert Piguet scent, created by perfumer Germaine Cellier in 1948, as “slightly mature and femme fatale.” In contrast, he envisioned a version of the tuberose genre that “is very fresh and true to nature.”



비슷하게, 향수 리뷰를 읽을 때, 특히 서양 향수 리뷰를 읽을 때, 리뷰어가 다른 고전적, 예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가치 있는 빈티지 향수를 언급하면서 "이 향수의 느낌이 있다" 라고 설명할 때가 흔했다. 나는 해당 향수를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대체 이게 어떤 느낌인지, 무슨 뉘앙스를 설명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어떤 영화 평론을 읽는데 평론가가 나는 듣도 보도 못한 여러가지 영화를 자료로 쓰면서 어떤 부분에서 이 영화가 이 고전 영화를 오마쥬했는지, 혹은 저 고전 영화에서 쓴 기법을 재해석했는지에 대해 읽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내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였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시프레나 푸제르 유형의 향수의 경우, 마치 에세이를 쓸 때 서론, 본론, 결론이 있는 것처럼 향수의 구조가 존재한다. 향수 감상의 길에 처음 나섰을 때, 나는 시프레나 푸제르가 무슨 향을 뜻하는 것인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기본적으로 어떠한 조합이 필수적인지, 이런 것들을 모르고 있었고, 이 때문에 안개 속에 갇혀서 더듬거리며 길을 찾는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시프레의 경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현대에 들어서 어떤 향수를 시프레라고 부를 때, 이 향수를 시프레 향수로 만드는 구조 자체는 코티의 시프레(1917)에 의해 정형화되었고 대중화되었으며 이 이후에 나온 모든 시프레 향수는 이 구조를 유지하면서 어떠한 뉘앙스를 부각하거나 반대로 위축시키고, 다른 향을 구조 위에 넣고 덧붙이고 하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나는 이 구조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같은 시프레 유형 향수를 맡았을 때도 뭔가 비슷한 느낌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왜 이것이 둘 모두 시프레 유형으로 분류되는지, 정확히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더했는지를 알 수 없었다. 이것은 특히 시프레 향조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인 오크모스가 규제되었기 때문에 현재 나오는 대부분의 향수에서는 오크모스향을 맡기 어려웠다는 점에 의해 더욱 복잡해졌다.


푸제르도 마찬가지로 우비강의 푸제르 로열(1882)에 의해 정형화되고 대중화되었고, 시프레와 유사하게 구조를 짜놓은 다음 뭔가 더하고 줄이고 늘리고 하면서 여러 향수들이 만들어졌다. 개인적으로 시프레보다는 푸제르가 이게 대체 무엇인지 감을 잡기 더 쉬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제르의 본질에 대해서는, 빈티지 향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기 전에는, 지금만큼 확신을 가지고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마지막으로는, IFRA라는 단체에 대해 조금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이 단체는 향과 맛을 낼 때 들어가는 제품을 관리하는데, 여기에서 특정 성분을 배제하거나 어느 농도 이하로만 넣으라는 연구 결과를 내면, IFRA 회원(대다수의 향료 제조사들이 IFRA에 가입해있다)들은 이 권고문을 따라야 한다. 알러지나 암 등 질병 유발 성분이 주로 문제가 된다. 이 때문에 어떤 향 원료는 이제 향수에서 아예 쓸 수 없거나, 해당 원료를 쓰기 위해서는 특정 농도 이하로 넣어야 한다.


이렇게만 보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한번 규제가 생기면 예전에 존재했던 클래식 향수들이 더 이상 같은 향을 내지 못하거나, 다른 재료로 규제된 재료에서 나던 향을 따라하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 안 그러면 그 향수는 단종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만큼 훌륭한 과학자들이 새로운 성분을 만들고, 혹은 원료에서 문제가 되는 성분을 배제하는 노력을 하고, 뛰어난 조향사들이 갖은 창의력과 혁신적 아이디어를 통해 어떻게든 향을 대체한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노력이 성공적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클래식한 향수, 몇십년간 혹은 백년 이상 사랑받아왔던 향수들이 더 이상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건 사실 향수가, 마치 음식처럼, 경험이 필수적이고 시간에 따라 사라지는 아름다움의 영역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게 미술 작품이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예로 납은 흰 물감에 계속 쓰이다가 19세기에 납 중독의 위험성이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납에서 흰 색을 추출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세상 모든 미술관에 걸려 있는, 납을 이용한 흰 물감을 쓴 그림을 꺼내서, 납 물감을 지우고 다른 흰 물감으로 대체하진 않는다. 하지만 향수는 이게 가능하다.


나는 예술적 아름다움을 위해 모든 규제를 풀고 완전한 자유를 창작자에게 쥐어줘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만일 그란 일이 일어난다면, 지구상에 남은 모든 사향노루나 마이소르산 샌달우드는 다 멸종해버릴 것이고, 향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암 유발 성분을 들이마시고 접촉하며 일하다 죽는 일이 수시로 발생할 것이다. 난 어떠한 예술도 노동자들의 죽음이나 동식물의 멸종을 감수할만큼 가치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알러지 유발 성분의 경우, 해당 성분을 향수에 정확히 명시해서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이 피하게 하는 것이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은 이따금 들곤 한다. 땅콩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이 땅콩이 들어간 제품을 피하는 것처럼, 향수도 베르가못 알러지가 있으면 피하는 식으로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향수는 지적재산권에 의해 보호되지 않으므로, 만약 이런 방식으로 향수에 들어간 화학물질을 다 나열하는 식이면 카피 제품이 늘어날 것이고, 이 때문에 아마도 향수 업계에서는 이런 방식을 채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향수가 무슨 느낌이 나는지에 대해서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빈티지 향수를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3. 빈티지 향수에 관해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


첫 번째, 서론에서 밝혔듯 많은 사람들이 향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때문에 향수나 기타 향 제품을 리뷰 하거나 설명하는 매체도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빈티지 향수에 대해 주력으로 다루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매체나 리뷰는 니치 향수나 디자이너 향수를 다룬다. 건 전혀 나쁜 게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다.  리뷰어들도 돈을 벌어야 하고, 현재 유행하는 향수를 다루면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내가 향수를 좋아하는 방식과 비슷하게 향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잘못되거나 나쁘거나 견문이 부족한 게 절대 아니다. 유행하는 향, 무난한 향을 고르는 것은 그 사람의 교양이나 지식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의 취향, 혹은 직장에서 향에 민감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향을 제한적으로밖에 쓸 수 없는 경우 등 환경적 요인에 인한 것이지 잘못된 게 절대 아니라고 다시 한 번 강하게 주장하고 싶다. 또한, 지금 향수 트렌드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혹은 어떠한 방식으로 다양화되고 있는지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한 지식이자 정보며, 사람들의 구미가 충분히 당길만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위에서 썼던 이유 때문에 빈티지 향수를 좋아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빈티지 향수에 대해 잘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실제 빈티지 향수는 위에서 말했던 Basenotes 포럼 같은 곳에 가면 따로 포럼 섹션이 나눠져 있을 정도로 해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인데, 한국에서는 정보나 지식의 부재로 관심을 가져도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곳에서 쓰는 글이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혹은 자신이 더 많은 정보를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또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젊었을 때나 나이드신 가족 혹은 친족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을 되짚는 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두 번째, 빈티지 향수라는 취미 자체가 돈과 정보가 없으면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솔직히 말해서 향수는 비싼 취미다. 돈이 많이 든다. 향수는 관세를 매길 때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부가세가 붙으며, 굳이 해외 브랜드 향수를 사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만든 향수를 사는 것에도 역시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부담이 들곤 한다. 이래서 요새 많이들 텀블벅이나 와디즈, 아이디어스 등에서 크라우드펀딩이나 소규모 제작품을 구매하는 형식으로 향수를 고르곤 하는 것 같다.


지금 파는 향수도 비싼데, 단종되거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향수의 경우 더욱 비싸진다. Ebay나 etsy에 가면 이것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다. 프리미엄이 붙기도 하고, 그나마 대중적인 샤넬 No.5나 겔랑 샬리마 같은 경우 비교적 구하기 쉬운 반면(이것도 연도별로 다르다. 정말 오래된 경우 구하기가 아주 어렵다) 그 당시에는 잘 안팔렸는데 후대에 다시 조명을 받아서 역사적으로 가치있다고 평가되는 향수의 경우 매물 자체가 없어서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뒤진다. 혹은, 당시에 너무너무 유행해서 사람들이 쟁여놓지 않고 다 써버리는 바람에 매물이 없는 경우도 있다. 특히 Ebay에서 경매 형식으로 나온 경우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가격이 확확 올라가기도 한다. 이걸 스나이핑이라고 하는데, 아무도 경매 참여를 안 해서 룰루랄라 즐거워하며 안심하다가 다음 날 일어나면 믿을 수 없는 가격에 놀라는 경우도 있다. 다행히 어떤 사이트에서는 빈티지 향수를 소분해서 샘플 형식으로 파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1ml에 50달러를 낼 만큼 턱턱 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1ml에 50달러면 만한 고급 와인보다도 비싸다.


설상가상으로 빈티지 향수 쪽으로 가면, 향수가 아닌 향수 병만 모으는 사람들도 있다. 당신이 늘 소유하고 싶어했었던 꿈의 향수가 병이 바카라나 라리끄에 의해 제조되었고 디자인되었을 경우 이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나는 한 서양 향수 리뷰 블로그에서, 자신이 굉장히 희귀한 향수인 겔랑 사의 빈티지 쩨디에 경매를 걸었는데, 누군가 더 높은 가격을 마지막 순간에 불러서 구매하지 못했고, 마지막 동앗줄이라도 잡아보려는 심정으로 구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혹시 소분해서 샘플이라도 사고 싶은데 나눠줄 수 없냐고 물어봤는데 구매자가 자기는 향수 병만 모은다고, 향수는 이미 다 버렸다고 말해서 좌절했다는 일화를 읽은 적도 있다.


향수는 정보가 많이 필요한 취미다. 가품과 진품을 나누는 것부터 해서, 이 향수가 어떤 노트가 들어갔는지, 이런 것을 대략적으로라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미가 어떤 향을 내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일랑일랑 꽃을 맡아본 적이 있는가? 몇 해 동안 묵은 아이리스 뿌리나 향제비꽃을 맡아본 적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답을 내놓을 것이다. 이건 그래도 향수를 쉬이 시향하고 착향하다 보면 어떤 향인지에 대해 감을 잡게 되는데, 이마저도 서울이나 수도권 근교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재 팔리고 있는 향수를 사는 것만 해도 지방에 사는 지인들이 "저희 집 근처에서는 이 브랜드를 다루는 백화점이 없어서요" 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하물며 어느 해외 사이트에서 빈티지 향수를 구할 수 있는지 찾아보고, 해외 사이트에 계정을 개설하고, 해외 판매자에게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올려놓은 향수의 상태에 대한 질문을 하고, 이 빈티지 향수가 진품인지 가품인지에 대해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쓰여 있는 사이트를 뒤지고, 이 향수가 대략 몇년대에 만들어졌는지 알아볼 수 있는 정보를 정리해놓은 사이트를 검색해서 읽고 판매자가 올려놓은 사진과 비교해서 꼼꼼히 고르는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비싸게, 어렵게 향수를 구했는데 판매자가 관리를 소홀히 해서 식초가 된 상태로 오거나, 배송 과정에서 포장이 잘못되어 향수가 다 포장재에 새어버린 상태로 오는 경우도 있다.


현존하는 향수를 사는 것만으로도 시향이나 착향이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데, 단종된 향수, 혹은 오래된 빈티지 향수를 구하려면, 나는 ebay나 etsy밖에 선택권이 없었다. 해외에 사는 사람들은 빈티지샵이나 동네 누군가가 필요없는 물품 정리시 향수를 찾아 혈안이 되어 돌아다니곤 하는데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빈티지샵을 간다고 해도 향수 자체가 그리 많이 수입되던 품목이 아니기 때문에 빈티지 향수를 구하기가 어렵다.


Ebay 같은 경우 더욱 곤란해지는 것이, 빈티지 향수가 경매 형식으로 판매되는 경우, 판매자가 물품을 올린 시간에 맞춰 끝나기 때문에, 새벽 4시 26분에 일어나서 5분 후에 끝나는 경매에 알람을 맞춰놓거나 하는 일이 생긴다. 나같은 경우 가족 여행을 갔는데 그 날 중요한 경매가 있었어서 한참 고민하다가 포기한 경우도 있다. 또, 향수는 인화성 물질로 분류되기 때문에 특정 국가에서는 향수를 해외로 배송하기 어렵다. 배송대행 사이트를 이용해도 어떤 국가에서 한국으로 향수 택배는 불가능하다고 써져 있는 경우가 흔하다.


여기에 더불어, 빈티지 향수라고 해서 다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Avon 사의 향수들은 대부분 향수 역사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분류된다. 물론 당신이 그 향을 좋아한다면, 당신에게는 굉장히 가치가 있겠지만, 니치 향수나 인디 향수 브랜드가 어떤 빈티지 향수 트렌드를 재해석하거나 오마쥬할때 정보의 레퍼런스 포인트로 쓸 때 Avon 사의 향수는 쓰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떤 빈티지 향수가 중요한지, 무엇이 향수계의 고전이라고 여겨지는지, 이런 것을 찾아봐야 하는데, 현대 향수는 서양 쪽에서 발전했기 때문에 죄다 영어, 혹은 프랑스어로 써져 있다. 한국 웹에서도 서양의 블로거들이 정리한 빈티지 향수 목록이나 이런 것들이 돌아다니긴 하지만, 나는 브런치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성을 높이고 싶었다.


4. 빈티지 향수에 대해 뭘 쓸 것인가?


물론 인스타그램에서도 빈티지 향수를 곧잘 리뷰하고 있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이라는 어플 특성상, 사진이 위주고 길게 글을 쓰면 아무도 읽지 않는 불상사가 벌어지기 때문에, 브런치라는 색다른 공간을 골랐다. 글 제한이 풀리고 자유를 얻었으니 이제 어떤 글을 써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먼저, 어떤 향수 관련 매체건 상관 없이, 향수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필수적인 정보가 있다. 이건 내 입장에서도 편리한데, 내가 아무 배경지식 없는 사람에게 시프레, EDC, 앰버, 이런 단어를 던지면 피차 곤란할 뿐이다. 상대는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고, 나는 그럴때마다 하나하나 다 설명해야되기 때문에 쉬이 지칠 것이다. 그래서 향수 전반적인 용어정리 관련 글을 올리기로 했다. 사실 나보다 우수한 사람들이 이미 유려하게 정리한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기 때문에, 사용하는 용어 관련해서 총체적으로 정리한 글을 하나 올리고, 모든 글에 해당 소개글을 링크할까 생각중이다. 또, 향수를 어떻게 어디에 뿌리고,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 당근에 향수 판매한다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 근처 벽에 흰색 장을 만들어서 향수를 이리저리 잘 보이게 예쁘게 진열해놓은 사진을 볼 때마다, 아, 이 사람에게선 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정보의 부족으로 인해 일어나는 참사를 줄이고 싶다.


둘째, 앞에서 말했듯이 빈티지 향수는 구하기 어렵고 비싸며 정보도 찾기 어렵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니 지금 당장 60년대 이전에 출시된 빈티지 코티 시프레를 어떻게든 구해서 즐기세요" 라고 말할 의향이 전혀 없다. 그건 무책임한 짓이다. 때문에 빈티지 향수를 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향수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대중적으로 여겨지는 향수들을 엄선하여, 인스타그램에 리뷰한 것에 덧붙여서 조금 더 깊이 리뷰를 올리고, 역사적인 가치를 설명할까 생각 중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내 주관적인 감정이나 느낌, 내 체향에 의해 다르게 발향되는 향, 보관상태에 따라 같은 향수라도 내가 소유한 향수가 다른 사람 소유의 향수와는 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이 리뷰는 평점을 남기는 것이 위주가 아니다. 10점 만점에 몇점이라고 평가하기보다는 무슨 향이 나는지에 대한 소개에 더 가까운 리뷰와 비슷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 말고도 빈티지 향수를 모으거나 체험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실제 빈티지 향수를 구하면서 알아낸 팁이나 빈티지 향수가 언제 만들어졌고 어떤 상태인지 구별하는 법, 어떤 판매 사이트를 가서 어떠한 키워드로 검색하면 유용한지 등에 대해 써보고 싶다. 사실 해외 사이트에서는 이런 구별법이나 조심할 점에 대한 글이 이미 존재하는데, 이걸 번역해서 올리는 간단한 작업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깨져가며 알아냈던 팁도 더해서 조금 더 친절하고 풍부한 내용의 글을 쓰고 싶다.





끝맺으며


내가 빈티지 향수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사실 별 거 없었다. 겔랑 샬리마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해외 향수 블로그를 뒤지다 빈티지 샬리마가 정말 아름다웠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적당한 가격에 매물이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내 첫 빈티지 향수는 겔랑 샬리마가 되었고, 실제로 내가 비교했을 때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예전 샬리마는, 같이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친구에 따르면, 정말 사랑에 대한 향수인 것 같았고, 현재 샬리마는 사랑을 연기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렇게 내 빈티지 향수 여정의 첫 순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찾아왔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인스타그램에 안 쓰지만, 빈티지 향수를 리뷰하면서 많은 재밌는 일이 있었다. 좋은 인연을 만든 것은 물론이고, 어머니께서 외할머니가 선물받은 향수에 대한 재밌는 일화를 말해주시는 일도 있었다. 나이드신 외국인이 지나가다가 어머, 그거 내가 쓰던 향수인데, 어디에서 구했니? 라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단연컨대 현재 나오는 향수에 대한 내 감상이 더욱 풍부해졌다.


긴 글이 되었다. 이걸 누가 읽을지는 몰라도, 당신에게도 빈티지 향수에 대한 이 공간이 잠시만이라도 행복하고 편안한 순간으로 가득차 있길 바란다. 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던, 같이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Y, 그리고 인스타그램에서 만나 친해진 루크레치아 조향사님께 이 글을 바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