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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mellperfumes Jul 12. 2022

향수의 함정

모든 취미가 그렇듯이 향수에도 위험이 도사린다

들어가며


내가 어렸을 때, 정확히 말하면 중학생 때쯤 있었던 일이다. 나는 케이팝이나 드라마나 여러 게임 등 당시 청소년 사이에서 유행하던 것들에 별 관심이 없었고 그 날은 학원이 없는 날이었기에 집에 와서 혼자 책을 읽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친구분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는데, 대화 내용 중 이런 말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너네 남편은 차, 오디오, 카메라, 낚시엔 관심이 없잖냐."

"맞아 맞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래, 누구네 남편은 낚시에 그렇게 환장해서 보트를 빌린대더라."

"완전 주말과부 신세네."


물론 이런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전부 가산을 탕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네 가지 취미에 겉잡을 수 없이 빠져버린 사람은 돈과 시간을 많이 쓴다는 인식이 중년층에서는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어쩌다 보니 남자들이 주로 즐기는 취미를 힐난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성별과 연령 관련 없이 취미에 광적으로 몰입하다 보면 재정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혹은 시간적으로 문제가 생기게 된다. 무언가에 중독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게 부정적인 현상이라는 것은 다들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행동에 중독되는 것은 개인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안 좋은 결과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아무튼, 나 역시 최근에 중독같은 행동패턴을 보이고 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건강이 안 좋아져서 잠시 향수 관련 취미를 쉬었다가 최근에야 다시 향수를 접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보면 꼰대스러운 말일 수도 있다. 다른 면에서는 내 개인적인 경험도 어느 정도 들어가 있으므로 내 치부를 알리는 일 같아서 부끄럽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수를 취미로 삼는 사람들이 꼭 읽고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피할 수 있길 바란다. 그게 더 건강하게, 더 오래, 더 행복하게 향수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목적과 수단이 도치되는 순간


왜 나는 향수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장미를 키우면서 시작한 것 같다. 어느 날 활짝 핀 장미를 맡고 있었는데, 장미의 경우 향이 강할수록 꽃이 피어 있는 시간이 짧다. 그래서 아, 이 향을 좀 더 오래 맡을 수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향수를 알아보게 되었다. 백화점에 가서 여러번 시향하고 내가 무슨 향을 선호하고 무슨 향을 선호하지 않는지를 알아보는 과정은 정말 재미있었다. 마치 어렸을 때 처음 악기를 배우던 때와 비슷했다. 내 자신을 새로운 매개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굉장히 신선했고 즐거웠다. 어느 새 장미향을 선호하던 나는 초창기에는 싫어했던 앰버향, 특히 겔랑 샬리마를 좋아하고 있었다. 내 세상이 비교적 심플한 플로럴에서 좀 더 복잡한 플로럴, 앰버, 시프레, 이런 것들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빈티지 향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당시 나는 주로 서양 블로그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향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읽는 것을 즐겼는데, 한 블로그에서 현재 샬리마보다 예전 샬리마가 훨씬 더 낫다는 글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빈티지 향수의 길을 가게 되었다.


몇 달 후 나는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빈티지 향수는 현재 만들어지는 향수와 달리 유한하다. 만약 내가 우리 집에 있는 겔랑 샬리마 빈티지 50~60년대 병에 든 향수를 다 뿌려버리면, 내가 다시 그 연대에 만들어진 샬리마를 구할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다. 때문에, 어쩌면 현재 향수보다 더, 사람들은 "이걸 꼭 당장 가져야만 한다"는 유혹에 시달린다. 이건 특히 겔랑 샬리마나 샤넬 No.5나 이런식으로 지금도 만들어지는 향수가 아니라 단종된 빈티지 향수, 그 중에서도 단종된 빈티지 향수이고 역사적으로 중요하거나 굉장히 짧은 시간동안에만 만들어졌으나 그 미적 가치를 인정받는, 혹은 둘 다인, 향수의 경우 그런 충동은 정말 조절하기 힘들다. 더 나아가 빈티지 향수에 대한 가치를 자신의 "교양있음"과 연결하는 경우 이 충동이 더 강해진다.


이 재정난은 내가 향수 리뷰를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심해졌다. 나는 이 지점에서 영화 <라따뚜이>에 나오는 미식가인 안톤 이고가 한 대사가 기억나는데, 바로 이것이다.


여러 면에서 요리 비평가란 직업은 편하다. 우리는 별 수고 없이 남이 정성껏 만든 요리를 마음껏 먹고 비판할 특혜를 누리니까.


마찬가지다. 나는 별 수고 없이 남이 정성껏 만든, 어쩔때는 조향하기에 몇 년이 걸린 향수를 마음껏 뿌리고 감상하고 내 리뷰를 올리면 되었다. 굉장히 간단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의 함정이 숨어 있다. 바로, 빈티지 향수의 경우, 내가 내 돈으로 그 모든 향수를 다 하나하나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겔랑에서 나한테 이메일을 보내서 협업을 권하고 그들의 돈으로 나한테 무슨 조향사 코스를 교육시켜주겠다고 한다고 치자(절대 없을 일이다). 이 가상의 시나리오에서 나는 다음의 내용이 들어간 이메일을 보낸다.


"참 감사합니다. 당연히 참가하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1927년에 만들어진 겔랑 쩨디가 있으신가요? 제가 샘플로만 가지고 있어서 본품을 들이고 싶은데, 주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겔랑에서는 부정적인 답을 할 것이다. 베르사유에 있는 향수 박물관인 오스모테크나 빈티지 겔랑 쩨디를 갖고 있는게 확실한 다른 향수 수집가들의 집에 침입해서 쩨디만 도난하여 집에 가져오지 않는 한, 나는 내 돈으로 어떻게든 쩨디를 구해야 한다.


니치 향수나 디자이너 브랜드 향수의 경우 빈티지 향수와 비슷하면서 다른 매커니즘을 가진다. 빈티지 향수는 다시는 구할 수 없음의 불안에 의해 중독되게 된다면, 니치 향수나 브랜드 향수는 나 혼자만 뒤처진다는 두려움때문에 중독되게 된다. 이걸 FOMO(Fear Of Missing Out)이라고 하는데, 대략 "너 이 브랜드도 몰라? 아직도 저 브랜드 써? 야... 좀 촌스럽다. 그거 언제적에 유행하던 건데. 요즘은 이게 잘나가더라.(웃음)"라는 말을 들었을때 느끼는 감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 향수 리뷰 특성상 같은 향수를 두 번 리뷰하진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한번 어떤 향수를 맡았으면 그걸로 끝이다. 나중에 비교시향이나 다시 돌아가서 그 향을 재감상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의 향수를 여러 번에 나눠서 다시, 또 다시 리뷰하는 방식을 채택하는 향수 블로거, 혹은 리뷰어를 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유브 방송인이 맨날 똑같은 이야기만 한다고 하자. 시청자들은 흥미를 잃는다. 같은 원리다. 그래서, 리뷰를 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향수를 한 번 혹은 몇 번 뿌리고(빈티지 향수의 경우 양이 적게 남아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정말 한 번밖에 못 뿌리는 경우도 있다)리뷰하고 그게 끝인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아니면, 자기가 가진 향수를 리뷰하고, 팔고, 다른 걸 사고, 팔고, 그 돈으로 지금 "힙"하고 "유행"하는 향수를 다시 사고 이런 사이클에 갇히기도 한다. 당신이 그 정도의 재정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당신은 향수의 덫에 빠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재벌인가? 내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면 팔로우 목록중에 한 러시아 이 있다. 엄청난 부자다. 러시아 부호다. 그 사람은 맘대로 향수를 사도 된다. 향수가 무슨 차 한 대 가격하는 경우는 아주 적다. 내가 직접 본 향수 중 가장 비싼 건 1200만원짜리 디올 향수, 세계에서 제일 비싼 향수는 대략 12억이다. 이런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대부분의 정말 비싼 빈티지 향수는 대략 몇백만원에서 그친다. 치 향수의 경우 몇십만원정도 한다. 몇달, 혹은 몇년 모아서 사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향수 리뷰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만약 내가 에디션 드 프레데릭 말 제품을 한달에 한번 리뷰한다고 치고, 다 50ml 본품으로 산다고 하자. 그럼 1년에 대략 240~360만원이 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향수 블로거들은 한달에 한번 리뷰를 올리지 않는다. 1주일에 한번정도 올린다 치자. 1년에 960~1440만원이다.


한번 취미에 대해 말하거나 글을 적는 일을 하면, 그게 블로거든 인스타그래머든 유튜버든, 중간에 끊는 일이 쉽지 않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컨텐츠를 보면 좋겠다는 열망이 우리 모두 안에 도사리고 있다. 인스타그램 좋아요 수, 유투버 구독자, 이런 것에 민감해질수밖에 없다. 브런치 등 블로그 사이트에서는(이게 그 자체로 나쁘다는건 아니다) 통계까지 만들어서 누가 언제 얼마나 무슨 키워드로 당신의 사이트에 방문했는지 알려준다. 신경이 쓰일수밖에 없다. 당신이 정보와 지식과 관심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런 플랫폼 특성상 당신에게 타의로든 자의로든 다른 사람의 연관된 주제에 대한 포스트나 사진을 계속 보여준다. 자연히 내면에서는 비교하고 싶은 충동이 생겨난다.


'왜 저 사람은 저런 리뷰를 썼는데도 유명하지? 그냥 산뜻하고 무난하다밖에 안 썼는데.'

'저건 장미가 주제인데 어디서 자스민향이 났다는 거야? 프래그런티카나 공식 사이트에서도 자스민은 안 나와 있어.'

'향수에서 앰버는 호박석을 뜻하는게 아니라고! 아 제발! 잘못된 정보를 저렇게 퍼트리면 부끄럽지도 않나?'


이런 비슷한 생각이 드는 순간, 잠시 멈추고 자아성찰을 해야한다. 이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은 관심을 끄고 그냥 내 할일이나 해야지 이런 생각을 절대 하지 않는다. 나쁜 예시로는 잘못된 정보를 올린 글을 캡쳐해서 올린 후 신랄하게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하거나 저 리뷰어는 향수에 대한 지식이나 예민한 후각때문에 뜬 게 아니라 뭐 무슨 다른 이유(금수저라서, 얼굴이 반반해서, 인맥이 있어서, 글솜씨만 번지르르해서, 기타 등등)때문에 떴다고 멸시한다. 이런 행동을 하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원 목적인 향수를 즐기기 위한 글을 쓰지 않게 된다. 당신은 당신이 얼마나 잘났는지를, 당신이 저 무지한 대중들에게 분에 넘치는 관심을 받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가치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다.


앞에서 말했던 향수라는 물체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물욕과 결합해 이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유독한 시너지를 일으킨다. 니치든 디자이너 브랜드든 빈티지든 마찬가지다. 더 사게 된다. 계속 사고, 또 사고, 이러다보면 재정난이 온다. 그러면 이제 자기합리화의 단계, 즉 내가 "향수 꼰대"라고 부르는 단계가 온다. 이 단계가 먼저 오기도 하는데, 아무튼 대략 다음과 같다.


"너 이 브랜드 몰라? 야 이게 얼마나 유명한데."

"아직도 다이소에서 향수 사냐? 나는 향수에 (거금)썼다."(자랑스러운 톤으로)

"솔직히 그 브랜드는 좀...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좋아하지."

"내 생각에 (향 계열)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냥 향알못인거 같아. 너무 흔하고 유치하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것 같은 소리다. 당신에게 FOMO를 느끼게 한 사람들이다. 주로 중독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한다. 이 사람들은 누가 "진짜" 팬이고 누가 "가짜" 팬인지 나누는데 혈안이 되어 있으며, 자신의 돈 씀씀이로 이걸 "증명"하려 하고, 설사 돈을 많이 쓴 사람이라도 자신의 주관적인 기준에 맞지 않으면 "가짜" 취급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이제 아무도 모르는 소규모 인디 브랜드, 아티저널 오우드 오일 판매 사이트, 이런데에서 제품을 구입하면서 요새 브랜드들은 다 자본에 눈이 멀어 타협한 배신자들이라는 그야말로 꼰대스러움에 푹 찌든 발언을 하게 된다(물론 이런 인디 브랜드나 소규모 업체에서 제품을 산다고 모두가 다 이렇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과 동일한 것을 당신과 동일한 열정으로 당신과 동일한 방식으로 좋아할 필요는 없다.


만약 누가 프루티 플로럴이나 "아저씨 스킨냄새"나 "할머니 냄새", 혹은 베이비파우더향이 나는 다이소 향수를 사서 그것만 평생 뿌리고 다녀도, 혹은 그걸 한번만 뿌리고 향수는 자기 취향이 아닌것 같아 먼지쌓이게 내버려두다가 당근마켓에 팔아버려도 그건 그 사람 자유다. 교양이 없다거나 그런게 아니다. 향알못이면 또 어떤가. 그 사람은 당신은 완전 문외한인 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그 사람이 보기엔 당신의 향수 취미가 시간과 돈과 노력의 낭비일 수도 있다. 내 애인은 향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종이접기를 좋아한다. 영수증이나 가끔 종이비행기로 접고, 종이접기용 종이가 문방구에서 파는 색종이 외에도 더 많이 있다는걸 최근에나 알게 된 나는 아마 애인이 보기엔 "종알못"일거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애인이 나보러 하찮은 영수증 따위는 왜 쓰고, 종이비행기를 왜 그리 삐뚤빼뚤하게 접냐고 뭐라한적은 없다. 나는 이런 "향수 꼰대"들이 왜 사람들이 특정 향수를 안 좋아하냐고 불평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이 그렇게 지적하고 비웃는데, 관심을 가질지 생각해보던 사람도 흥미를 잃는게 인지상정 아닐까.


향수 관련 리뷰나 기타 블로깅, 영상등을 하는 경우 명심해야 하는 게 하나 있는데, 당신은 아마도 이걸 통해 돈을 벌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가끔 리뷰어들이 협찬을 받기도 한다. 나도 받아봤다.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가끔이다. 샤넬에서 당신한테 시즌마다 다음 레 젝스클루시브 라인 향수를 평가해 보라고 주거나, 톰 포드가 손수 쓴 편지와 함께 미공개인 다음해 향수 샘플을 보내거나, 이런 일은 없다고 보면 편하다. 다른 분야에서 리뷰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흔히 협찬을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평론만 하더라도 국제영화제나 GV에 초대장을 받는 사람들은 굉장히 적다. 이동진씨와 영화 비평을 하는 수많은 유튜버 수를 비교해봐도 당신이 에디션 드 프레데릭 말 신작 런칭 행사에 초대받아 파리나 뉴욕행 비행기 티켓을 들고 인천공항에 갈 가능성은 아주 적을 거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마치 음악 비평가와 음악 장르 팬사이트의 차이에서 볼 수 있듯, 후자에서는 나의 "전문성", 즉 내 리뷰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가 일종의 보증수표이자 내 지위가 된다. 돈을 버는 취미였다면 내가 이걸로 얼마 벌었다고 하면 되고, 대회가 있는 취미면 수상 내력으로 증명할 수 있는데 그런 취미가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를 취득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로는 정말 화학공학과를 나와서 조향사의 길을 밟거나, 두번째로는 그정도까진 아니어도 관련 분야에서 오래 일한 경력이 있거나, 아니면 마지막으로향수 관련 커뮤니티에서 오랜 시간동안 활동하고 친목을 쌓고 당신이 무엇을 얼마나 소비했는지, 즉 얼마나 "진심"인지를 과시하고 런 행동을 통해서 사람들이 당신의 리뷰에 신뢰성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지막 길을 택하게 된다. 그러면 이제, 당신의 이름값을 만들고 당신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 더 많은 향수를 사고, 예쁘게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자극적으로 제목을 달고, 결국 이를 통해 당신은 원래 목적이었던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써야지"라는 마음가짐을 잃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여서 당신의 발언권을 늘리고, 관심을 더 받고, 이게 목표가 되는데 이러다 보면 당신은 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엉뚱한 짓을 하기 시작한다. 더 자주 향수 관련 컨텐츠를 올리고(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은 재정적인 부담과 이어진다), 자극적인 캐치프레이즈를 쓰게 되고(충격! 나체가 연상되는 향수...진짜일까요?), 가짜 뉴스를 유포하고(어디 브랜드 페로몬 향수를 뿌리고 2년 전 헤어진 전애인하고 스쳤는데 그날 밤에 걔한테서 연락왔음) 이런 짓 말이다. 당신은 더 이상 향수를 즐기지 않는다. 당신은 이를 통해 얻는 유명세를 즐긴다.


향수는 일종의 후각적 자극이다. 흔히 "향태기"라고 말하는 시기가 오는데, 모든 향수가 다 거기서 거긴 것 같고, 더 이상 당신이 처음으로 향수를 접했을 때 느끼던 즐거움을 못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되는 것을 그렇게 지칭한다. 이제 아무것도 당신을 환희나 혹은 더 심각한 경우에는, 경악에 휩싸이게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리뷰를 읽고 잔뜩 기대했는데 실제로 맡아보면 취향이 아니거나 그렇게까지 좋은지 모르겠는 경우가 너무 많아 이제는 모든 리뷰에 냉소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중독된 경우 더 큰 문제가 생긴다. 문뜩, 당신이 지출한 돈과 시간과 노력이 아깝게 느껴진다. 당신은 향수 컨텐츠를 만드는게 귀찮거나 부담스럽거나 막막하거나 거부감이 들거나 아무튼 싫다. 하지만 유명세는 잃고 싶지 않다. 그래서 계속 꾸역꾸역 한다. 이게 향수를 즐기는 사람의 태도인가? 앞에 써놓은 모든 것을 다 결합하면, 당신은 더 이상 향수에서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데 돈은 펑펑 써대면서 친구가 향수 뿌리고 나타나면 거기에다 너는 향을 모른다니, 요새 브랜드는 다 자본의 노예라니, 왜 그렇게 유치한 취미를 가졌냐니 낮잡아보고 동시에 왜 향수계에는 새로이 향을 접하는 초보들이 없냐고 불평해대며 리뷰 자극적인 내용으로 꽉꽉 채워 조회수를 올리는 최악의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게 당신이 원하는 미래인가? 향을 처음 접했던, 향초보였던 당신이 이렇게 변해버린 당신과 대화를 한다면 향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것 같은가?


다른 경우에는, 전세계에서 한 해에 새로 나오는 향수가 아마 몇만개가 넘을 텐데, 유행은 늘상 바뀌기 때문에 당신은 더 새롭고, 더 힙하고, 연예인 누가, 어디 사람들이 쓴다는, 앞으로 유행한다는 트렌드를 위해 끝없이 나오는 향수의 홍수 속에서 영원히 헤엄치며 계속 얼리어답터 위치를 잡기 위해 노력하여 거금을 들여야 한다. 이게 당신의 일상생활에는 얼마나 지장을 주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향수에 의해 맺어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관심과 주목을 받는데에 집중하느라 학업이나 직업이나 인간관계, 일상생활등 다른 것을 등한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당신이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 같으면 당장 모든 걸 그만둬라. 나는 올해 2월 즈음에서 6월 말까지 운이 좋게(?) 몸이 아팠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 건강, 내 인간관계, 내 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몸이 굉장히 아프면, 내가 향수 관련 소식을 올리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와 비슷한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나는 아픈 시간동안 내가 앞으로 뭘 할 것인지, 향수 리뷰에 대해 목적과 수단이 도치된 것은 아닌지, 왜 이 취미를 시작했는지 이런 생각을 하며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리뷰를 올리는 횟수를 줄이기로 하고, 대신 이미 가지고 있는 향수를 다시 감상하는 이 블로그를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 블로그는 끝이 정해져 있는 공간이다. 인스타그램과 다르게, 나는 이 블로그에서 빈티지 향수'만' 리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도, 중요하거나 역사적 가치가 있거나 이런 빈티지 향수'만' 리뷰하기로 했다. 그런 빈티지 향의 갯수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언젠가 나는 이 블로그에 더 이상 향수 관련 글을 올리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추가하는 부분인데, 2011년에 BBC에서는 향수에 관한 3부작 다큐멘터리를 찍은 적이 있다. 1부에서는 뉴욕타임즈에서 2006년~2010년까지 향수 비평을 하던 기자 챈들러 버가 나온다. 사람은 직업이 향수를 비평하는 사람이었다. 집안을 비쳐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상에서는 "향기나는 쓰나미에 포위당했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만큼 사방이 샘플과 본품 투성이다. 영상에서 그는 택배로 샘플들을 집에 들여넣고 가지 향을 꺼내 감상하다가도 택배로 많은 샘플을 받으러 나가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내가 뛰어나다, 혹은 그냥 평이하다라고 생각하는 향을 오래 감상하고 비평하기 위해 하루에 내 취향이 아닌 향을 몇 개씩 몸에 바르고 맡아야 하는 삶 말이다. 당신은 이런 생활과 지위를 갈망할 수도 있고,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챈들러 버는 유명하고, 부유하게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당신이 챈들러 버만큼 유명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독인지 알아차리는 방법 및 해결책


개인적으로는 여기 첨부한 링크의 글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https://www.fragrantica.com/news/Dear-Fragrantica-When-Does-Collecting-Fragrances-Become-an-Addictive-Habit-10918.html


이 글에 따르면, 지금 당신은

1. 당신과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들에게 주기적으로 얼마나 많이 돈을 쓰고 있는지 거짓말할 충동이나 필요를 느끼는가?

2. 향수 구매가 실패, 두려움, 분노,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이라고 느끼는가?

3. 향수를 구매할 때 희열과 동시에 불안감을 느끼는가?

4. 향수를 구매한 것에 대해 죄책감이나 후회가 드는가? 특히,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 습관을 바꾸겠다고 했는데도 구매해 버렸다는 것에 대해 더욱 그런 감정을 느끼는가?


경험상 이런 증상도 해당된다.


5. 저 향수 하나만 더 사면 행복해질것 같은가?당신은  향수에 당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것 같거나 그런 비슷한, 과도한 기대를 투여하고 있진 않는가?

6.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이나 유투브나 커뮤니티 등에서 극찬을 받은 향수 리뷰를 읽었을때, 지금 당장 가지지 못하면 너무나 괴롭고 뒤쳐지는 것 같고 불안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가?


이건 향수를 취미로 삼는 것과 쇼핑중독중 함께 나타나는 특징이고, 중독에 대한 결정적인 자가진단이 될 수 없으며,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아도 중독된 상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중 몇개에 해당한다고 느끼면 이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행동을 추천한다.


1. 구매 전 살 것의 목록을 정해놓아 충동구매를 막는다.

2. 당신이 과하게 쇼핑하는 것을 막아줄 친구나 다른 지인, 가족을 데려간다.

3. 다음 구매를 하기 전까지 기다리는 기간을 늘린다.

4. 정말 이 향수가 꼭 필요한건지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5. 스트레스나 실망을 풀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본다.

6. 향수 취미를 가진 다른 사람들 중 중독에 빠졌던 사람들과 대화하여, 어떤 방식으로 빠져나왔는지 물어본다.


나는 여기에 몇가지를 더 추가해보고 싶다.


7. 굳이 사야 한다면 본품이 아니라 미니어쳐나 샘플, 혹은 트래블 사이즈로 사는 것을 추천한다. 값이 더 싸기 때문에 재정적 부담이 덜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양을 늘리진 말아라. 정해진 것만 사라.

8. 빈티지 향수의 경우, 정말 꼭 필요하다 싶으면 샘플을 파는 사람들이 있으니 굳이 경매 사이트나 빈티지 판매 사이트에서 새로고침을 누르며 시간을 보내지 말고 샘플로 구입.

9. 당신의 행동에 대해 재고해보아라. 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당신의 언행에 의해 향수에 더 관심을 가질 것 같은가? 아니라면, 당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10. 향수 리뷰 블로그나 유투브, 인스타그램, 기타 커뮤니티를 끊고 몇주, 혹은 몇개월동안 다른 것을 하거나 푹 쉬거라.

11. 이도저도 안되면 심리상담센터를 찾아보는 것이 좋다.



끝맺으며


모든 취미는 정도가 있다. 하루이틀 향수를 즐길 것이 아니지 않는가. 평생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팔아대며 그 돈으로 향수를 사고, 리뷰를 올리고, 노인정에 가서도 택배박스를 열고 3일에 한번씩 블로그 글을 쓰면서 옷장에 향수를 쌓아둘 것인가? 이 취미를 오래오래 가져갈 것이면, 어떻게 건강하게 취미를 즐길지에 대한 고려를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굳이 향수가 아니라 모든 취미에 해당하는 말이긴 하다. 운동중독에 걸려서 약물에 손을 대거나 대출받아서 몇천만원짜리 명품을 사거나 이런 것도 다 중독이 아닌가? 그러면 결국 흥미가 떨어지고 취미를 오래 즐길 수 없게 된다. 스스로를 지키고, 우리가 가졌던 열정과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삶을 길게 보고 취미를 가지는게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SNS가 보편화되고 "퍼스널 브랜딩"이 중요한 사회에서 이게 어려울 수도 있다. 모든 곳에서 우리에게 더 소비하라고 부추기고, 마치 안 그러면 촌스러운, 나쁜 사람이 될 것만 같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유혹을 이겨내야만 하고, 나는 우리 모두가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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