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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mellperfumes Jul 21. 2022

교양이라는 이름의 착각

"부티난다, 교양있다, 취향은 돈으로 살 수 없지"

들어가며


나는 이 글을 쓸지 말지에 대해, 예전 "향수의 함정"글을 쓸 때처럼, 많은 고민을 했다. 이 글에 나오는 많은 예시는 사실 한국 향수 커뮤니티에서는 비교적 보기 어렵고, 서양 향수 커뮤니티에서 볼 수 있는 것이며, 때문에 한국의 상황에 바로 1:1 대입하기에는 조금 무리인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향수의 함정" 글에서와 비슷하게, 이 글은 내 사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드러나지만, 동시에 그 글과 달리 이 글에서 쓸 내용은 내 사생활이나 내 잘못된 선택이 아닌 내가 어떤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가진 사람인지가 상당히 드러나기 때문에, 어찌 보면 더욱 더 내 자신에 대한 많은 정보를 폭로하는 느낌일지도 몰라 굉장히 꺼려지는 일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얘기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 글을 쓰기로 결정했다.


사실 이 모든 의문은 내가 사랑한 겔랑 샬리마에 대한 한 가지 의구심에서 시작했다. <The New Book of Perfumes>에서, 저자 존 오크스는 243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교양있고, 재치있고, 매혹적이고, 교정할 수 없을 만큼 로맨틱한 사람이 아니라면, 샬리마의 불꽃놀이는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다"("if you're not sophisticated, witty, seductive and incurably romantic, forget the fireworks of Shalimar") 내 성별과 상관없이, 나는 교양있고 재치있고 매혹적이고 로맨틱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샬리마를 청바지하고 회색 후드티를 입었을 때 뿌리는 경우도 있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청바지와 회색 후드티는 매혹적이고 교양있고 로맨틱한 옷은 아니다. 근데, 그러면 나는 어디 중요한 곳을 가기 위해 정장을 입었을 때만 샬리마를 뿌려야 하는가?


특정 향수를 뿌리는 것이 어떠한 "자격"과 "교양"하고 연결되는 지점이 조금 의문스럽다. 그러면 못생긴 사람은 향수를 뿌리면 안 되는가? 혹은, 저소득층에 포함되는 사람이 향수를 뿌리면 안 되는가? 못생기지도 않고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그냥 평소에 편하게 있을 때 향수를 뿌리면 안 되는가? 그래서 내가 자신의 "이미지", 혹은 어떠한 유명인과 향수를 매치하는 것을 지양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내 이미지는 뭘까? 날 싫어하는 사람과 우리 어머니와 내 친구와 학부때 지도교수님께 각각 이 질문을 물어보면 다 다른 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향수 커뮤니티에 있을 때, 향수에 따라 사람의 "품격"을 따지는 경우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글은 향수, 특히 빈티지 향수나 오래된 역사를 가진 향수를 뿌릴 때(그러나 빈티지 향수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니치 향수도 마찬가지다) "자격"이나 "교양"과 연결시키는 것에 대한 내 개인적인 불만의 토로에 대한 글이 될 것이다. 서양 향수계에서의 인식과 한국 향수계에서의 인식을 나눠서 쓸까 하는데, 사실 이걸 이렇게 두개로 양분 가능한지가 좀 의문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노력은 해봐야 알지 않겠는가.




우리가 고가의 니치 향수나 빈티지 향수를 즐기는 일은, 경제적으로 크게 무리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나쁜 일이 아니다.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것에 어느 정도 심취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한 번 사는 삶인데,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은 살아가면서 아주 소중하고 멋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내 지인은 내가 빈티지 향수에 대한 열망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럼 시대의 조각을 모으시는 거네요"라고 감사하게도 아주 아름다운 문장으로 나를 칭찬해주셨다. 때문에, 빈티지 향수나 "빈티지스러운" 향수를 즐기는 사람들이 그런 향수가 만들어졌던 시대에 대해 어느정도 낭만적인, 장밋빛 색안경을 낀 채로 몽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향수계에서 말하는 "좋았던 옛날"에 대한 선망은 우리에게는 굉장히 위험할 수 있고, 예전에 말했던 "향수 꼰대"짓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서양과 백인에 대한 선망


서양 향수 블로그는 한국보다 훨씬 더 수적으로도 많고, 질적으로도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향수 블로그나 유투브 등이 멍청하고 못나서가 아니다. 향수는 6.25 전쟁 후 한국을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에 돈을 쓸 만큼의 돈이 없었고, 지금까지도 수입시 사치품으로 분류되며, 해외여행의 전면적 자율화가 1989년에 이뤄진 한국 상황에 대입하면 많은 사람들이 "엄마가 쓰시던 향수" 혹은 "할머니가 쓰시던 향수"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향수 브랜드가, 디자이너든 니치든 뭐든, 한국에 입점한 것도 최근의 일이며, 해외 향수 블로거들이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혹은 자신보다 한 세대 위였던 이모나 어머니나 기타 여성들이 입생로랑 오피움이나 디올 쁘아종을 뿌리던 것을 기억할 때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매일 아침 집에 나갈때마다 자욱했던 최루탄 향을 기억한다. 모던 향수는 서양, 특히 프랑스가 주 생산처가 되었기에 한국까지 오기 어려웠고, 온다 하더라도 한국의 독재정권 치하에서 국산 물품 소비가 장려되었던 상황에선 향수는 정말 사치품을 넘어서는 "필요없는 것"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때문에 향수, 특히 빈티지 향수를 리뷰할 때 서양 블로거들이 서양의 문화를 레퍼런스하면서 "이 유명인의 이미지와 어울린다"라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실제로 어떤 향수가 그들을 위해 만들어졌다가 대중에게 판매되기도 했고, 유명인이 쓰는 것으로 유명해지기도 했고, 유명인들이 출연한 영화에 나오기도 한다. 즉, 향수는 서양의 전통이 많이 남아있는 분야 중 하나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해외 향수 리뷰를 보면 맨날 소환되는 여성 영화배우들이 있다. 나는 이들을 비난하거나, 그들이 지루하다고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밑에 그들의 사진을 첨부하였다.


왼쪽부터 맨윗줄: 마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로렌 바칼. 가운데 줄: 마를레네 디트리히, 그레타 가르보, 그레이스 켈리. 맨밑줄: 캐서린 드뇌브, 비비안 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캐서린 드뇌브 같은 경우에는 지금의 "셀러브리티 향수" 즉 유명인이 런칭하는, 자기 브랜드의 향수를 내놓기도 하였다. 아주 유명한 사람들이고, "교양"과 "기품"을 대표하는 사람들로 많이 나온다. 즉 어떤 향수가 세련되고 우아하고 아름답고 이런 단어를 쓸 때 이 사람들이 쓸 법한 향수로 나오는 것이다. 이해 가능하다. 유명하고 아름답고 실제로 매력이 넘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러나 동시대에 살았던, 백인이 아닌 여배우들은 이런 아름다움, 기품, 세련됨, 우아함을 표현할 때 소환되지 않는다.



왼쪽부터 애나 메이 웡, 어사 키트, 까르멘 미란다


이 사람들 역시 당시대의 미적 아이콘이었고, 아주 유명하고, 우아하고, 세련되고, 매력이 넘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나는 서양 향수 블로그나 커뮤니티에서 겔랑 샬리마나 랑방 아르페쥬나 로샤스 팜므에 대해 서술할때 "어사 키트가 쓸 법한 향수", "애나 메이 웡이 좋아했던 향수", "까르멘 미란다같은 향수"와 유사한 표현이 쓰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즉, 서양 향수 커뮤니티에서 기품이나 교양, 아름다움, 우아함 등을 표현할 때, 백인이 아닌 유명인들은 거의 반사적으로 이 목록에서 제외된다. 나는 지금까지 백인이 아닌 사람이 향수 커뮤니티에서 언급되는것을 딱 두번 봤는데, 밑에 이 분들의 사진을 첨부했다.


왼쪽: 빌리 홀리데이 오른쪽: 조세핀 베이커


빌리 홀리데이 같은 경우는 너무나 유명한 재즈 가수고, 가드니아(치자꽃)을 머리에 꽂은 채로 공연하곤 했는데, 이 때문에 가드니아 향수가 나올 때마다 이 사람이 소환된다. 즉, 소환되었을 때 위에서 말한 백인 여배우들과 다르게 이 사람이 특히 더 매력적이거나 매혹적이거나 우아해서가 아닌, 가드니아와의 관계 때문에 소환되는 경우가 많다. 즉, 이 사람 자체의 세련됨으로 향수를 설명하진 않는 것이다. 조세핀 베이커 같은 경우에는 이 사람이 댄서였기에 어떠한 이국적인 느낌을 불러올때 (마타 하리와 함께)소환되는데, 실제 이 사람은 흑인인권 투쟁 및 프랑스에서 나치에 맞서 싸우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한 아주 흥미로운 삶을 살았다. 그것과 상관없이(사실 위에 나열한 여배우들의 정치적 성향이나 봉사활동 같은 것을 우리가 향수에 대해 설명할때 쓰진 않지 않는가?) 세련됨이나 우아함이 아닌, 이국적인 이그조틱함을 설명할 때 이 사람을 연상시키는 것은, 빌리 홀리데이와 마찬가지로, 백인이 아닌 사람은 우아하거나 세련됨, 교양있음의 아이콘이 될 수 없고, 잘 해봤자 이국적인 요소를 가지고 올 때만 뭔가 문화적 아이콘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게 단순히 이 사람들을 향수 리뷰나 설명글에서 소환하지 않는다고 바로 속단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향수계에서는 인종차별이 만연하다. 2021년까지 향수계에서는 "오리엔탈"이라는, 동양인(중동인, 남아시아인, 기타 등등 다 포함)을 비하하는 단어가 쓰였다. 여러 향수 브랜드에서 이러한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동양의 이미지를(겔랑 미츠코나 겔랑 샬리마를 생각하면 쉽다) 지금까지 주구장창 써먹고 있다. 이 외에도 다른 집단에 대한 인종차별은 만연하다. 예로, 2016년에 겔랑은 샬리마의 전설이라는 광고를 냈는데, 인도인이 아닌 러시아인인 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출연하여 많은 지탄을 받았다. 디올 사바쥬 같은 경우에는 미국 선주민들이 나오는 광고를 선보였는데, 사바쥬 자체가 "야만인"이라는 뜻이고, 광고에 인종차별적 맥락이 있었기 때문에 사과문을 걸고 광고를 없앴다.


개인적으로 나는 거슬리지만 참는 편이었다. 어차피 서양쪽에서 많은 문화적 영향을 받은 문화적 매개체고, 나는 한국에 살기 때문에 서양에 사는 동양인만큼 많은 차별이나 억압이나 배제를 일상적으로 겪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모든 매체에 서양인만 보이고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은 조연이나 악당으로만 나오는 경험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두 번 있었다. 너무 노골적이고 차별적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방관하거나 참기가 어려웠다. 하나는 클래식 디자이너 향수들이 왜 이렇게 몰락중인가?에 대한 베이스노트 포럼 스레드였는데 요새 이들이 동양에 진출하면서 동양인들은 "개인적인 취향"이 없기(?) 때문에 "비슷비슷한"것을 좋아하고, 이것 때문에 요새 나오는 향수들이 다 개성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베이스노트 포럼 스레드에서 본 다른 글이었는데 빈티지 향수에 대해 말하며, 더 이상 남성용으로 나오는 향수가 "남성답지"않고 맹맹하며 왜 현재 남성용으로 나오는 향수들이 "좋았던 옛날"에 나왔던 것처럼 강렬하지 않는지, 이게 어떻게 서구 문화의 몰락과 이어져 있는지(?)에 대한 엄청나게 성차별적이고 끔찍한 긴(한글파일로 붙여넣었을때 9페이지나 나왔다!) 글이었다. 요약하자면 서양 문화는 남성의 여성화(?)에 의해 망해가고 있고, 향수 트렌드가 이걸 반영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이 두 글의 경우 비판은커녕 많은 동의와 칭찬을 받았는데 솔직히 견디기 어려웠다. 전자의 경우 내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왜 이게 문제적인지에 대해 다들 아시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조금 부연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좋았던 옛날"이라는 것에 대한 향수는 보통 그 시대에 잘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향수이지, 그 시대에 못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예를 들어, 1920년대 재즈 시대와 낭만에 대해 얘기하며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만약 그 사람들에게 1920년대 린치당하는 흑인이나, 공장에서 일하던 어린이나, "인간 동물원"에 전시된다거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죽는 환자의 선택지를 준다면 아무도 돌아가고 싶지 않아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1930년대 대공황이나 1950년대 맥카시에게 공산당원으로 찍힐 가능성이 있는 시대, 1980년대 중공업 산업이 사라지면서 아시안계에 대한 테러가 가해지고 마약밀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대로 돌아가자고 하면 아무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향수 리뷰하는 서양 커뮤니티에서는 특히 빈티지 향수, 혹은 빈티지스러운 느낌이 나는 니치/인디 향수를 리뷰할 때 1920년대, 1930년대, 1950년대, 1980년대 등(1940년대는 2차대전때문에 향수생산이 거의 중단되었으므로 별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없다) 화려하고 기품 있던, "여자들이 숙녀다웠고 남자들이 신사다웠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혹은 이를 미화하는 식의 서술이 아주 많이 보인다.  


이것은 위에서 말했던, 백인 여배우들이 기품과 우아함과 세련됨 등의 묘사를 사용할 때 계속 소환되고, 백인이 아닌 여성들은 잊혀지는 서술과 관련이 있다. 백인 여성들의 "여성다움", "숙녀다움", "고급스러움"은 "좋았던 옛날", 즉 백인 여성의 모습이 구시대적인 당시 사회적 가치와 연결되어 교양, 아름다움의 극치, 하나의 지향점으로 묘사되는 것이고, 비교해서 백인이 아닌 여성들은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향수에 대해서 교양을 따지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교양이라는 것은 주로 고전, 클래식함, 시간과 상관없이 계속 존재하는 무엇에 대한 향유, 혹은 지식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우리가 지금 고전이나 고전적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서양 백인 중심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갖은 질병에 걸려 죽어나갔고, 길거리에는 집이 없는 노숙자들이 즐비했다. 그러나 아무도 노숙자들의 존재나 병에 걸려 죽는 것을 "고전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교양"이라는 단어에는 분명히 부유한 사람들이 주로 향유하던, 혹은 향유하게 된 취향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틱톡이라는 SNS를 보면 이런 현상을 포착할 수 있다. 2021년부터 서양 틱톡에서는 #oldmoneyaesthetic 이라는 트렌드가 유행했고, "why be California rich when you can be Connecticut rich"라는 말이 돌았다. 이 맥락에서 캘리포니아 부자란 최근에 자수성가, 미디어 출현, 기타 방식으로 벼락부자가 된, 소위 "졸부"(nouveau riche)를 뜻하는 것이고, 코네티컷 부자란 록펠러, 케네디, 로쉴드 등 대대손손 부자였던 "old money"를 뜻하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은 전부 백인이다. 백인이 아닌 인종은 서양에서 자수성가해서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대대손손 물려받은 부는 분명하게 백인들의 것이다. 즉, "old money aesthetic"이라는 문장으로 대표되는 미감과 교양은 부유한 백인들의 입맛에 따라 구성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빈티지 향수, 혹은 빈티지스러운 느낌의 향수를 덮어두고 찬양하고, "좋았던 옛날"을 회상하고, 그것을 하나의 미적 지향점이라고 프레임하는 것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한국과 교양에 대한 갈망


그리고 위에서 말한 이런 현상, 즉 "대대손손 이뤄놓은 old money에 대한 갈망"은 지금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최근까지 이런 현상은 비교적 심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며 대부분의 전통적인 지배층, 즉 조선시대 양반 가문에 속해있던 사람들의 부가 소멸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에서처럼 대대손손 부유했던 가문이 존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또한, 지금처럼 미디어가 일상적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 해도 어디에 사는 누구는 뭘 한다고 하더라, 등의 소문만 무성할 뿐이지 일반인은 어디 부자 누구가 뭘 하고 사는지에 대해 전혀 노출되지 않고 일상을 보낼 수 있었으며, 그러한 "부자"들이 부를 과시하려 해도 소비문화 자체가 비교적 침체된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다양한 물품의 소비가 가능하지 않았다. 6.25 전쟁이 일어나고 휴전협정 직후인 1954년에 당신이 샤넬 자켓을 서울 내에서, 혹은 부산에서, 구할 수 있었겠는가?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점점 성장하고, SNS의 발달, 재벌들의 등장으로 인해 이게 가능해졌다. 즉, 어느 정도 대대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2015년에 소위 "청담동 며느리 룩"이 유행하던 때를 기억한다. 이거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풍요롭고 부유하게 살고 싶어하고,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길 가는 아무 유치원생을 붙들고 나중에 잘살고 싶냐고 물어봐도 아니라고 답하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문제점은 우리가 부 자체와 관련없는 가치를 부의 유무와 연관시킬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부유한 사람들은 착하다"라는 명제를 보자. 정말 그런가? 개인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착한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그 사람들도 사람이니 자신에게 친한 사람들에게는 잘 대해주고 자신에게 악감정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차갑게 대할 것이다. 그러나 부유함 그 자체로 갑자기 사람의 성격이 선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유가 있을 수는 있다. 나보러 주말도 쉬지 않고 하루에 알바를 3탕뛰면서 살라고 하면 나는 여유가 없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 본성의 선함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스트레스가 많다/적다는 성격이 나쁘다/착하다로 그리 쉬이 이어지지 않는다. 만약 내가 어떤 재벌을 납치해서 위의 저 상황에 놓으면, 그 사람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여유가 없는 성격으로 변할 것이다. 반대로, 내가 저소득층인 사람을 아무나 잡아서 1조원을 준다면 역시 여유있는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부티난다"라는 단어는 무엇을 뜻하는가? 부의 유무는 "자격" "교양" "세련됨"과 곧바로 이어지진 않는다. 물론 부유하다면 그러한 "교양"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기회와 정보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를 쏘아부어도 미감이 세련되지 못한 사람이 있는 반면, 가난하지만 미감은 뛰어난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빈티지 향수를 즐길 때, 혹은 니치 향수를 즐길 때, 나는 "부티나는 미적 감각"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물론 럭셔리 사치품이라는 산업 자체가 그러한 럭셔리함, 독점적인 느낌(영어로 exclusive는 독점적인이라는 뜻도 있지만 배제적이라는 뜻도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걸 향유한다고 해서 내 삶이 럭셔리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향수에 대해 더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쓴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럴 여유가 없거나 다른 분야에 대해 그만큼 노력했을 수 있다. 내가 온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티지 겔랑 향수로 치장해도, 그건 그냥 나를 빈티지 겔랑 향수로 치장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뿐이지, 특별히 더 교양있거나, 세련되거나,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진 않는다.


때문에, 향수에 대해 이야기할때, 한 개인이 빈티지 혹은 니치 향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그걸 즐긴다고 해서 그 사람이 더 고급스럽고 세련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또 반대로 향수에 대해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안 뿌리거나 혹은 다우니, 하이타이 세제에서 나는 향만 내며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천박하고, 미적 감각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다. 그냥 그 분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내 취향과 내 "격"을, 내 "부티남"을 연관시키려는 모든 시도를 배격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철도를 좋아하는 사람이 서울 7호선 지하철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달달 외지 못한다고 당신을 깔본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이상한가? 향수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앞에서 말했듯이, 향수계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서양중심적이어서, 서양 커뮤니티에서 세운 미적 기준에 따르기 시작하면 우리는 동양인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향수에서 말하는 고급스러움, 기품 있음, 세련됨 등에서 탈락하게 된다. 이들이 그리는 세상에 우리는 소속되지 못한다. 이러한 특정 미적 기준에 대한 숭배는 다른 미적 기준이나 문화의 영향을 배격하여,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향유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미적 기준은 지역마다, 집단마다, 시대에 따라 다르고, 변화한다. 예를 들어서, 쿠민(쯔란)이 유행했었고, 인센스가 유행했었고, 쓰촨 페퍼(화자오)가 유행했었고, 오우드가 유행하고 있고(끝물이긴 하다), 지금은 히노키향이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중국 및 일본에서는 가볍고 향이 강하지 않은 향수가 유행하지만 서양에서는 "돈을 이만큼 냈는데 지속력이 좋아야지"라는 생각 하에 지속력과 확산력이 좋은 향수가 유행한다. 때문에 한국에서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운 향수"는 서양에서 "맹물" 취급을 받을 수 있고, 반대로 서양에서 "고급스럽고 가성비가 뛰어난 향수"는 한국에서 "독한 냄새" 취급을 받을 수 있다.



끝맺으며


"교양"이란 무엇인가? 사실 나는 이 단어를 들으면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에서 "교양? 그게 네 교양이야?" 라고 하는 대사가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고전문학이나 클래식 음악이나 빈티지 향수, 혹은 고가의 니치 향수를 즐기면 그것은 "교양"인가? 나는 이 공간에서 내 "교양"을 뽐내려고,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교양"을 갖추라고 훈계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빈티지 향수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누군가는 궁금할텐데 어떤 느낌인지 알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서 빈티지 향수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즉, 나는 이러한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지식을 사람들이 더 많이 알게끔 더 퍼트리는데에 중점을 두었다.  


https://brunch.co.kr/@abaded695fd0401/1 


클래식 음악, 고전 소설, 고전 명화 등은 LP판이나 도서관, 박물관에 갇혀 생명력을 잃은 채로 존재하지 않는다. 계속 재해석되고, 재창조되고, 여러 방식으로 다시 우리의 현재로 돌아오게 된다. 마치 건드릴 수 없는, 영원한 미적인 우상처럼 숭배한 채로 고정해놓는 것은 오히려 고전의 생동감을 뺏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고전을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이 과정에는 자격이 중요하지 않다.


또한, 모든 "교양"이 그렇지만, 고전을 접했을 때 이 안에 어떠한 가치가 내포되어있는지 한 번 고찰해보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악역인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나온다. 이 당시에는 유대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이 정상적인 시대였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샤일록이 재해석되어, 특히 나도 너희와 같은 인간이 아닌가, 라는 논지의 대사를 하는데 이걸 더 처절하게 연기하던지, 혹은 2004년 영화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을 더 생생하게 보여주고 기독교인으로 강제 개종당한 샤일록의 운명을 더욱 처참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향수는 고전 소설이나 명화처럼 재해석하거나 독해할 수 있는 매개체는 절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럴 여지가 존재하는 요소들이 남아있기도 하다. 예로 겔랑의 미츠코에서는, 당시 서양사람들의 동양 문화에 대한 생각이 어땠을지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도 있고, <나비부인>에서 <미스 사이공>까지 이어지는 비극적인, 헌신하는, 명예에 모든 것을 거는 동양 여성에 대한 어떠한 편견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이 글은 그러니까 서양 향수를 배척하고 신토불이를 쓰자는 글도 아니고, 너는 어떤 향수를 즐기니까 인종차별주의자라고 고함지르는 글도 아니다. 향수는 그저 향수다. 내가 클라이브 크리스티앙의 몇억원짜리 향수를 뿌리건, 다이소에 가서 아무 향수나 뿌리건, 그건 나의 품성이나 미적 취향이 아닌, 내 재력에 대해서만 말해줄 뿐이다. 그리고 내 재력은 내 성격이나 미감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나는 향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냥 돈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려고 고가 향수를 뿌린 사람일 수도 있다. "교양"과 "기품"을 향수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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