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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mellperfumes Aug 28. 2022

페로몬 향수와 향수 마케팅

이 향수를 뿌리면 저에게도 사랑이 찾아올까요?

들어가며


굳이 향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유투브나 모바일 게임을 할 때 광고를 보면 향수 광고를 볼 때가 있다. 광고는 늘 비슷한 패턴을 따른다. 대략 두 가지 패턴이 있는데, 유투버나 인플루언서가 향수를 광고하면서 너무 좋았다, 이걸 뿌리니까 사람들이 번호를 물어봤다/내 남자나 여자한테서 나는 향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종류가 있고 또 다른 방식은 일종의 상황극으로서, 특정 브랜드의 향수를 뿌린 남자/여자가 뭘 하고 있으면 이성이(왜 동성은 아닐까? 늘 궁금했다) 관심을 가지고 번호를 물어보거나 같이 뭐 하자고 하거나 이런 식의 연출이 진행된다.


이런 광고에 힘입어 소위 "페로몬 향수"라는 것들도 잠시 인기를 끌었었다. 지금도 인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 페로몬 성분이 들어가 있어 이성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컨셉의 향수였는데, 일단 과학적으로 상대방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페로몬의 존재여부와 성분의 명확한 정체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던 것을 차치하더라도(출처: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4375873/) 여러 면에서 문제가 있어 말 그대로 반짝 하다가 말았던 트렌드로 기억한다.




그 어떤 향수도 내가 원하는 상대방만을 족집게처럼 뽑아 내게 미치듯이 사랑에 빠지게 해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향수가 존재한다고 치자. A라는 여자가 해당 향수를 뿌렸다. 그러면 논리적으로 주변의 모든 남자-교수님, 가족, 친척, 어린애, 노인, 선생님, 기타 등등-이 나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원치 않아도 계속 남성들이 추근댈 것이다. 성별이 반대인 상황이라도 마찬가지다. 남자 입장에서도 전혀 관심이 없는 할머니, 아줌마, 직장 상사, 모르는 여자, 기타 등등이 날 졸졸 따라다니고 날 만져대고 계속 말을 걸면 짜증이 나는 것은 똑같다. 어떤 사람이더라도, 어떤 성별과 상관없이, 모르는, 전혀 관심이 없는 상대방이 질척대는 것은 기껏 해봐야 귀찮고 지치는 일이고, 나쁜 경우에는 무섭고 공포스러운 일이다.


왜 이성만이 좋은 향에 이끌린다고 생각되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좋은 향이 나는 샴푸를 써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가끔 친구들이 야 너 샴푸/세제 뭐 쓰냐? 할 때가 있다. 이건 사실 이성친구 뿐만 아니라 동성친구 사이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후각이 잘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보기에 좋은 향과 나쁜 향을 구별할 줄 안다. 동성이라고 해서 갑자기 향에 아무 감흥이 안 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 모두 중학교나 고등학교때 남학생들이 점심먹은 후 축구하고 들어오면 땀냄새에 쩔어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건 여자/남자 상관없이, 심지어는 해당 남학생들 스스로도, 그리 좋아하는 냄새는 아니다.


어떤 향수를 뿌리면 마법같이 자신이 이성에게 인기가 많아진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꿀벌이나 벌레에게 인기가 많아지는 경우는 봤다. 내가 이미 호감이 있고 상대방 역시 내게 호감이 있을 때 어떤 가산점 요소로 작용할 수는 있다. 나중에는 상대방이 그 향을 맡으면 나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 혹은, 내 존재를 상대방에게 알리는 용도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솔직히, 늘어진, 땀자국이 선명한 티에 라면국물 튄, 지린내가 나는 츄리닝, 며칠간 안 감아서 기름기가 많고 비듬이 다 보이는 산발된 머리, 때가 낀 길다란 누런 발톱이 다 보이는 허름한 해진 슬리퍼를 찍찍 끌고 나오는, 전혀 취향이 아닌 사람이 좋은 향기가 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번호를 따고 친해지고 싶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의 향수가 궁금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향수를 쓰는지가 궁금한 것과 이 사람과 사귀고 싶다는 다른 영역이다.


또 이러한 내가 뿌린 향수에 대한 관심이 늘 좋은 것도 아니다. 갑갑한 만원지하철에서 짜증이 머리끝까지 뻗쳐있는데 어디서 머리아픈 향이 풍겨와 더욱 기분이 나빠지는 상황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해본 경험일 것이다. "어, 너 오늘 뭐 뿌렸어?"는 좋은, 호감과 호기심의 영역일 수도 있지만 당신에게 꼽주거나 저건 피해야겠네의 맥락일 수도 있다. 괜히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뿌리기 무난한, 은은하고 자기주장이 약한 향을 찾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내게 더욱 비참하게 다가오는 것은 향수 광고 카피다. 향수 광고 카피만 보면 온갖 럭셔리하고 화려한, 이성을 유혹하는 내용의 카피가 적혀 있다. 아예 무슨 연애과정을 구구절절 써놓은 카피도 있다. 향수 광고에서 성적인 이미지를 쓴 것은 19세기 혹은 20세기 초반부터 그래왔기 때문에 전혀 놀랄 게 아니지만, 그리고 내 글 하나 따위가 그걸 바꿀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마치 이 향수를 뿌리면 내가 잘 나가고 인기가 많아지고 친구가 늘고 사랑받고 이런 생각을 고객이 하게끔 만드는데, 그렇지는 않다. 그건 그 향수를 어떻게 마케팅하는지의 영역이지, 실제 그걸 뿌린 내가 불특정한 어떤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와는 다른 이야기다.


향수 리뷰도 마찬가지다. 향수 리뷰 중에 아주 섹슈얼한 장면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기도 하는데, 솔직히 그런 방식은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거부감만 들곤 한다. 그래서 그 향이 대체 어떤지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고 그냥 이 사람은 이런 취향이구나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 굉장히 섹슈얼하고 관능적으로 느껴지는 향수도 다른 사람에게는 역하고 이게 뭐야?! 라는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예로 앰버 계열 향수는 보통 관능적이고 섹슈얼하게 느껴진다는 말이 많은데, 내 친구 중에서는 앰버향을 싫어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에게 어필하려고 앰버 계열이 강한 향수를 뿌린다고 생각해보자.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이다. 튜베로즈 향 역시 어떤 사람들은 곽티슈 향, 혹은 울렁거리고 어지러운 향으로 다가올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것에 대해 웃긴 이야기가 있는데, 나는 에디션 드 프레데릭 말 카넬 플라워를 뿌렸을 때 굉장히 섹슈얼하고 아름답다고 느꼈지만, 당시 같이 있던 지인은 뭔가 전사같은, 용맹하고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머스크나 애니멀릭한 향조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특정 머스크 향료를 못 맡는 사람들도 있고, 잘못 쓰면 아무도 청소를 안 한 화장실 같다. 화이트 머스크 역시 다른 사람들은 포근한 살결향이라고 묘사하는 것을 많이 봤는데 나는 울렁거리고 역하고 거부감이 들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계속 예시를 많이 드는 것 같은데, 복숭아향 같은 경우도 나한테는 너무 달아서 거부감을 느끼게 할 뿐, 별로 매혹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향은 그저 향이다. 예전에 세르주 루텐의 상탈 블랑을 디테일에 공들여가면서 섹슈얼하게 묘사한 리뷰를 본 적이 있다. 나는 상탈 블랑이 전반적으로 너무 달았고, 우디한 향은 마치 새로 깎은 연필을 연상시켰다. 이렇듯 향은 그 사람의 고유한 경험이나 선호도에 의해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이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고 매료시킬 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사랑의 묘약으로서 존재하는 향수가 있다면, 그것은 소설이나 창작물의 영역이지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다.  


솔직히 이해는 간다. 한국에서 향수 문화가 소위 말하는 "독하지 않은" 즉 강렬하지 않고 은은하고 무난한 향을 선호하는 방식으로 발달했기에 그 거의 나는 듯 안 나는 듯 하는 향 안에서 무해하면서도 섹시한 모습을 추구하고 동시에 남들과 다른 내 개성까지 챙기려 하다 보니 뭐 내 남자 내 여자 향같은 것을 강조해야만 팔리는 게 이해는 간다. 하지만 무해하면서도 독특한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 정녕 "애기 살냄새"와 "섹시함"이 동시에 놓여야 하는 유아퇴행적이면서도 섹슈얼한 방식밖에 없는가? 이상하고 괴기하다. 섹슈얼한 면모를 강조하기만 하는 것은 힙해보이는 문체로 아무리 포장해도 너무 괴이하고 거부감이 든다. 아마 몇년만 지나도 그런 카피를 보면 오글거린다 내지 구리다는 말이 나올 것 같다. 향수를 뿌리는 사람은 다 성적 관심을 받고 싶어서 뿌리는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런 방식으로만 향수를 마케팅하려 하는지 정말 너무 사려가 부족하고 경솔한 것 같다. 마치 2000년대 초반 "발칙한"따위 카피가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를 보는 느낌이다.  


브에서 향수 관련 영상을 올리는 듀씨엘랩이라는 채널에서도 이런 페로몬 향수와 과대광고에 대한 영상을 올린 바 있어, 여기에 첨부하겠다. 동의한다. 나도 이런 마케팅 때문에 내가 향수 좋아한다고 했을 때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창피하고 수치스럽다.


https://www.youtube.com/watch?v=Dxnb0xDPmak&ab_channel=%EB%93%80%EC%94%A8%EC%97%98%EB%9E%A9



끝맺으며


향수는 향수다. 이걸 뿌린다고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고, 동성이건 이성이건 내게 갑자기 들러붙는 일도 없다. 인간은 후각보다는 시각이 더 많은 요인이 되곤 하기 때문에 자기 외형을 가꾸거나, 아니면 상대방에게 배려심과 친밀감을 위해 천천히 무리하지 않고 다가가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일 것이다. 무엇보다, 사실 어떤 향수를 뿌렸을 때 그걸 제일 오랫동안 제일 가까이에서 맡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이다. 내가 좋아하는 향수가 내 몸에서 났으면 해서 쓰면 모를까, 이걸 뿌리면 상대방이 날 좋아하겠지 라고 어림짐작해서 상대방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인기있다고 뿌리면 내게도 고역이고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싶다. 특히, 잘 팔리는 향수 중에는 그게 상대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무난하고 직장/학교에서 튀지 않기 위해 쓰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그런 유혹을 위한 전략과는 전혀 상관없기도 하다.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 말고를 고려하기 전에,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 취향은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방식으로서 향수를 찾아보는 것이 더 오래가고 더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기적적으로 어떻게 상대방의 관심을 끌어서 연인이 되었다고 치자. 나중에 상대방이나 내 취향이 바뀌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권태기가 온다면 또 다른 향수를 찾아볼 것인가? 나한테서 나는 향이면 내가 주도권을 가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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