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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mellperfumes Sep 15. 2022

내가 언제까지 이걸 할 수 있을까

It's the economy, stupid

들어가며


나는 이전에 "향수의 함정"이라는 글에서, 향수를 취미로 갖는 것과 소비중독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향테기"에 대해서도 약간 언급하고 넘어간 적이 있다. 다행히 글에서 나온 것처럼 나는 몸이 아팠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향테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향수의 함정"을 읽을 수 있다.

https://brunch.co.kr/@abaded695fd0401/34


그러나 최근에 조금 더 타격이 큰 일이 벌어졌다. 바로 환율이다.


달러/원 환율이 점점 겉잡을 수 없게 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의해 나는 조금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언제까지 향수를 취미로 가질 수 있을까? 이걸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도 되는가?


*추가: 2022년 9월 15일 오후 10시 38분에 확인하자 1400원을 넘어섰다.



"택배 왔습니다"에 한숨만 나온다


향수도 유행이 있다. 향조 이런 것 외에도 어떤 브랜드를 살지 역시 유행한다. 예를 들어서, 몇 년 전에는 조말론, 딥티크, 바이레도, 러쉬가 유행했다. 지금 "힙"한 브랜드는 르 라보(이건 좀 유행한지 몇 년 되었다), 톰 포드, 그리고 바이 킬리안인 것 같다. 크리드나 펜할리곤스의 경우 은은하게 꾸준히 유행하고 있다. 베니스의 상인 같은 경우 떠오르는 신인 강자로 유행중이고, 이 외에도 에따 리브르 도랑줴도 유행했었고, 메모도 인레로 유행했고, 유행하는 브랜드는 계속 바뀌어가며 유행한다. 에디션 드 프레데릭 말의 경우도 꾸준하게 인기가 있다.


코로나를 겪으며 이런 향 제품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늘었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으면서 더 이상 직장에서 뭘 써야 할지에 대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에르메스 핸드백보다는 에르메스 향수가 훨씬 싸기 때문에, 사람들이 샤넬 가방은 주저해도 샤넬 립스틱은 사는 것처럼, "작은 사치"에 대한 열망이 늘었으며, 마지막으로 명품 옷 등으로 과시하듯이 향수도 명품처럼 과시를 위한 어떤 아이템이 되었다는 말이 나왔었다.


여기서 대부분의 브랜드가 최근 1, 2년 모두 가격을 인상했다. 그럴 하다. 기후위기로 인해 재료 공급이 어려워진 면도 있었고, 가격을 올려도 사람들이 꾸준히 사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가격을 올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또, 마지막으로, 환율에 대한 문제가 있다. 만약 어떤 향수가 미국에서 210달러에 팔린다고 치자. 그러면 2018년 9월 15일의 경우 한국에서는 향수가 세금 등을 제외해도 23만 5천원이 조금 넘는다. 지금은? 29만 3천원이다.


물론 이 공간에서 나는 빈티지 향수 리뷰만 하고 있어 지금 뭐가 유행하는지에 전혀 영향을 받을 일이 없어 보이지만, 인스타그램에서는 니치 향수, 혹은 인디 브랜드 향수 역시 리뷰하고 있다. 리뷰한 거의 모든 향수는 직구로 구한다. 다른 이유는 없고, 내가 리뷰하는 대부분의 향수들이 단종되었거나 빈티지거나 아니면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브랜드기 때문에, 직구를 하지 않으면 구할 수가 없다. 그나마 1990년대, 혹은 2000년대에 단종된 유명 브랜드의 향수면 한국에서 구할 수 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단종된 향수, 심한 경우면 1950년대에 단종된 향수면 한국에서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한국에 들어온 브랜드여도, 워낙 한국 내에서 인기가 많기 때문에 품절되는 경우에는 직구를 해야 한다. 나는 서울 고속터미널역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자주 가는 편인데, 프레데릭 말 매장에 갈 때마다 내가 원하던 향수의 10ml 트래블 사이즈가 품절되는 경험을 자주 한다. 아니면, 아예 한국에는 해당 향수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겔랑만 하더라도 한국 공식 사이트에서 레전더리 라인을 보면 이딜, 샹젤리제, 삼사라, 랭스땅밖에 없다. 프랑스 공식 사이트에 가면 뢰르 블루(edp, edt), 랭스땅 매직, 이딜, 샹젤리제(edp, edt), 아프레 롱데, 엥솔랑스(edp, edt), 지키, 미츠코(edp, edt), 볼 드 뉘, 샹다롬, 샤마드, 나에마, 삼사라(edp, edt), 랭스땅, 자르뎅 드 바가텔(edp, edt), 리우, 이니셜이 있다. 왜 한국에는 이런 것들을 안 들여오냐고 겔랑에 불만스러워하며 욕할 생각은 정말 추호도 없다. 한국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 향수들이 많으니까.


아무튼 다시 돌아가서, 유명 브랜드의 경우에도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 향수가 있고, 단종되기도 하며,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브랜드이고 모든 향수 한국에서 팔고 있어도 품절 때문에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우면 직구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환율과 과세와 여러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먼저, 향수가 60ml가 넘으면 관세가 붙는다. 금액이 150달러를 초과하면, 이 역시 관세가 붙는다. 관세는 6.5%, 부가세는 10%가 붙는다. 여기에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환율을 생각하면 더 큰일이다. 예전에 나는 100달러짜리 향수를 사면, 택배비 이런거 다 계산해서 대략 12만원 정도가 나왔다. 지금은 택배비 현지세금 이런거 다 계산했을 때 15~16만원 정도가 나온다. 어쩔땐 17만원까지 나온다. 겨우 3만원 4만원에 벌벌 떠는 거냐는 말이 나올 거 같은데, 앞의 "향수의 함정"에서 말했지만 대부분의 향수 리뷰어들은 1주일에 한번, 혹은 더 자주, 향수 리뷰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건 무시할 수 없는 비용이 된다.


직구를 하지 않는다고 치자. 그래도 향수는 비싸다. 이건 어쩔 수 없다. 한국 시장을 호구로 봐서가 아니다. 예로 프레데릭 말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는 미국에선 100ml에 420달러다. 한국에서는 롯데온에서 할인 혜택 없을 때 50만 3천원에 팔리고 있다. 이건 오히려 한국에서 더 싸게 팔리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향수 브랜드들이 계속 가격을 올린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내가 남들에게 향덕질을 권해도 되나라는 생각까지 들고 있다. 너무 돈이 많이 든다. 작은 사치라고 하는데 나는 50만원이 작은 사치라는 말은 듣도보도 못했다. 개인적으로 7천원짜리 마카롱이면 작은 사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50만원은 작은 사치가 아니라 그냥 사치다.


뭔가 점점 더, 향 초보에게 추천할 저가이면서도 유명하고 좋은 향수들이 사라지는 느낌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향수를 추천하기가 어렵다. 저가이면서 좋은 향수는 많다. 요새는 한국 인디 브랜드에서도 좋은 향수들이 많고, 아니면 해외 니치/인디 브랜드에서도 유명하지는 않지만 좋은 향수들이 많다. 뭔가 사람들이 한국 브랜드라고 하면 조금 더 경시하고 해외 브랜드라고 하면 조금 더 가치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향수 자체가 서양에서 긴 전통을 가진 물건이어서 그런 거지, 사람들이 허영심에 가득찬 것은 아니어서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여기에서 굳이 무슨 브랜드가 좋다 이런 말을 하고 싶진 않다. 내 취향과 다른 사람들의 취향은 다를 수 있고, 광고하는 느낌이라 사실 굉장히 민망하다.


어쨌건 점점 더 저렴하면서 괜찮은 브랜드를 찾기 어려워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유명한 브랜드 향수만 찾고 있다. 이건 사람들이 멍청하거나 광고에 휘둘리는, 줏대가 없는 허영심에 가득찬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다. SPC 불매운동 이전에 사람들이 파리바게트만 갈때 동네 빵집들이 맛이 없어서 망했는가? 몰라서 망했다. 그러면 동네 빵집들이 돈을 들여서 춤추는 바람인형을 설치하고 유튜브 영상에 자기 빵집 광고를 올리고 이럴 여력이 있는가? 그것도 아니다.


친구에게 "야 이 해외 브랜드 좋다, 직구해봐라"라고 하려 해도 환율 때문에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한국 내에 들어온 유명 브랜드를 추천하려니 향초보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 태반이고, 한국의 인디 브랜드를 추천하자니 친구가 몰라서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대기업이 독식하는 시장을 보는 느낌이라 마음이 좋지 않다. 어떻게 이 분위기를 타계할 수 있을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초보자에게 더욱 접근성이 쉽게 저렴하면서도 좋은 향수를 추천할 수 있는 방안은 뭐가 있을까? 예전엔 조 말론 향수도 10만원대였던 거 같은데 이젠 20만원대다. 답은 50ml, 어쩔 때는 10ml로 구매하라는 말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다.



끝맺으며


사실 요새 이런 회의감 때문에 고민 중이다. 빈티지 향수를 좋아하기 때문에 직구해야 할 때마다 한숨이 나오는 환율과 함께 어떻게 더 많은 대중화를 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 있다. 물론 친구라던지 이런 사적인 관계에서는 내가 좋은 향수를 가져와서 친구한테 시향이나 착향을 시켜주면 된다. 하지만 내가 트럭을 구매해서 향수로 가득 채운 다음에 국토 대장정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향수를 좋아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블로그는 빈티지 향수의 매력을 사람들이 좀 더 알았으면 해서 접근성이 안 좋은 빈티지 향수를 리뷰해 사람들의 흥미를 유도하고 설사 구할 수 없더라도 대략 이런 향이 나는구나! 라고 하는 것, 즉 빈티지 향수에 대한 관심 유발 및 어느 정도의 대중화가 목표였는데, 한국의 향수 시장이 정확히 그 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서 유감스럽다. 이것은 사실 기업만 탓할 것은 아니다. 환율이 이 지경이 된 게 어떻게 기업의 책임인가. 물론 점점 더 비싸지는 향수에 대해 더 큰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만 쓸 수 있는, 나만의 사치/명품 느낌으로 말이다. 당신이 그렇게 향수를 즐기고 싶으면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고 내가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목표가 정확히 그 반대인 사람으로서 작금의 상황이 조금 씁쓸한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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