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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mellperfumes Jul 05. 2022

향 초보를 위한 출발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들어가며


"저는 향수를 써본적도 없고, 무슨 향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광고만 보면 다 좋아보여서 못 고르겠어요. 향수를 쉬이 구할 수 없는 지역에 살기도 하고요. 온라인에서 사려고 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너무 비싸요." 흔히 듣는 말이다. 향수 관련 커뮤니티에 가면 사람들이 사진을 올리며 자신한테 어울리는 향수를 추천해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건 아마도 시간, 공간, 그리고 재정적으로 향수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워서 그런 것 같다. 근처에 규모가 있는 백화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향수 코너를 하나하나 돌며 한 브랜드당 모든 향수에 대해 시향지 다 주세요, 라고 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코가 아프며, 눈치보이는 일이다.


이 글에서는 향수 초보자, 혹은 막 향수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에게 어떻게 향에 더해 더 잘 알고, 즐길 수 있게끔 쉬이 할 수 있는 지침을 몇 개 쓸 것이다. 부디 이 글을 통해 향을 더 잘 구분하고, 더 민감해지고,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향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1. 주변의 향


많은 경우 향의 재료가 되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후추향 같은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흑후추 가루의 경우, 그냥 그 자체로도 향이 난다. 하지만 불에 살짝 볶았을 때, 더욱 더 강한 향이 난다. 이 때 두 향은 조금 향이 달라지는데, 당연한 얘기일수도 있지만 후자에서 좀 더 스모키한, 연기같은 향이 난다.


나의 경우에는 집 근처 초등학교, 기타 공공기관 등 건물 울타리에 장미가 활짝 피는데, 장미는 아침에 향이 제일 강하기 때문에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지나칠 때 향을 맡아보곤 한다. 비 내리는 날의 장미는 해가 쨍쨍한 아침의 장미와는 다른 향이 난다. 봄에는 흔히 울타리로 쓰는 쥐똥나무에서 꽃이 피는데, 인돌릭한 향이 난다. 길가에 핀 잔디 한 잎을 손가락 사이로 으깨면 아주 그린하고 쌉싸름한 향이 난다.


반려동물 중 강아지나 고양이가 있는 경우 안고 털에 코를 묻으면 보드라운 향이 난다. 이게 애니멀릭한 향이다. 집 근처에 산이나 작은 숲이 있다면 여름에 녹음이 절정일 때 들어가서 피톤치드 향을 맘껏 누려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가죽으로 된 소파, 핸드백, 장갑, 자켓, 기타 등등 뭔가 가죽으로 된 게 있다면 그것의 향을 맡아보고 레더향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혹시 식물을 키울 여력이 있거나, 근처에 꽃시장이 있는 경우, 향수에 쓰이는 많은 식물의 향기를 여기서 느낄 수 있다. 매화, 향제비꽃, 향카네이션, 라일락, 오스만투스(금목서), 백합, 히아신스, 가드니아(치자꽃), 은방울꽃, 자스민, 오렌지꽃, 헬리오트로프, 은엽아카시아(미모사 혹은 까시), 목련, 로즈제라늄(구문초), 장미, 향수선화, 라벤더, 프리지아, 여러 난초같은 꽃부터 시작해서 바질, 세이지, 타임, 오레가노, 고수(코리앤더), 민트, 레몬밤, 마조람, 로즈마리, 커리플랜트(이모르뗄), 파슬리 등 여러 허브를 만날 수 있다. 유칼립투스, 삼나무(시더우드), 측백나무(사이프러스)도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바질 같은 경우 잎을 뜯으면 약간 스파이시한, 정향이나 아니스 향 같은 향이 나는데, 집에 바질을 키우고 파스타용으로 수확했을 때, 혹은 샀을때 그냥 넣지 말고 손으로 찢은 후 단면에서 무슨 향이 나는지 한번 느껴보자.


전통시장에서 청과물을 구경하게 될 일이 있다면, 과일향을 맡아보자. 살구, 자두, 사과, 복숭아, 망고, 바나나, 포도, 귤, 오렌지, 레몬, 라임, 다 다른 향이 난다. 귤을 먹을 때, 귤 껍질과 귤 안의 흰색 부분에서는 다른 향이 난다. 건과일은 싱싱한 과일과 또 다른 향이 나므로, 프룬과 자두를 비교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구나 악기를 다루는 곳에 간다면, 가게 안에서 어떤 향이 나는지 집중해서 향을 맡아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가구점에 진열된 새 서랍 안속에서는 무슨 향이 나는가? 혹은, 카페에 갔을 때 커피나 홍차, 말차의 향을 느끼며 맛을 음미해보자.


찬장에 향신료가 여러 개 있거나, 혹은 그런 사람을 아는 경우, 찬장을 열고 잠시 구경좀 해도 되냐고 물어보자. 시나몬, 넛멕(육두구), 쿠민, 투메릭(강황), 클로브(정향), 핑크 페퍼, 바닐라, 스타 아니스(팔각) 등의 향과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이런게 들어가는 중식이나 인도음식, 동남아 음식 등을 먹으러 가서, 이게 무슨 향일지, 어떤 재료에서 이런 향이 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음식이나, 혹시 성인이라면 술을 마실때, 향을 음미해볼 수 있다. 나는 고량주에서는 파인애플 혹은 청사과 향을 많이 느낀다.  빵집에서 크림빵을 살 때, 바닐라향을 느낄 수 있는가? 버터향은 어떤가?


귤을 까본 사람이라면 껍질이 약간 미끌거린다는 것을 것이다. 손목에 귤 껍질을 비빈 후 한번 맡아보면, 이게 내 몸에서 어떻게 발향되는지, 얼마나 오래 가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향이 맘에 드는가? 시간에 따라서 어떻게 향이 바뀌는가? 후추를 조금 뿌렸을 때는 체향과 섞여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여러가지를 알아낼 수 있다.


이렇게 여러 향을 맡아본 후, 기억하고, 분류하고, 같은 향에서도 다른 느낌을 받으면 그걸 떠올릴 수 있게 노력해보자. 예로 같은 장미에서도 어떤 장미는 좀 더 스파이시한 향이 나고, 어떤 장미에서는 과일향이 나고, 어떤 장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장미향이 난다.


2. 에센셜 오일


요새는 에센셜 오일을 파는 곳이 많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궁금했던 향료를 집어 주문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튜베로즈나 일랑일랑, 아이리스, 패츌리, 샌달우드 등 한국에서 쉽게 접하기 비교적 어려운 향료의 경우 이런 방식이 유용하다. 이 공간에서 어떤 에센셜 오일 사이트가 좋고 나쁘고 이런 것은 다루고 싶지 않기 때문에 어떤 브랜드를 지목해 여기가 좋다, 여길 추천한다, 이곳은 별로였다,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에센셜 오일을 쓸 때는 희석해서 쓰거나, 목욕물에 타거나, 혹은 종이에 살짝 적셔서 맡아본 후에 느낌을 정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바로 쓰는 경우 피부가 민감한 사람들은 발진 등 알러지 반응을 보일 수 있고, 딱히 그렇지 않더라도 향이 너무 강해 좋지 않은 인상을 받으면 앞으로 그 향이 들어간 향수를 즐길 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향에서 어떤 느낌이 나는가? 라벤더 향의 경우에도, 쑥같은, 허브함이 많이 나면서도 카라멜 같은 달콤한 향이 섞여 있기도 하다. 일랑일랑 향에서는 덜 익은 바나나같은 향이 나기도 하면서 동시에 커스타드 크림같은 향도 난다. 이런 식으로 향에 대한 민감도를 알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3. 편집숍


요새는 향수 전문 편집숍이 이곳저곳 생기고 있으나, 이건 주로 수도권에 사는 사람 위주이지, 지방이나 소도시에 사는 경우 향수 전문 편집숍을 가기 어려울 때가 있다. 백화점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는 일반 화장품 편집숍에 가보는 것도 방편이 될 수 있다.


보통 이런 곳의 향수 코너에 가면 시향지와 향수들이 진열되어 있다. 스프레이 노즐(뿌리는 부분)을 맡아보거나, 아니면 뚜껑을 맡아보자. 아까 전에 주변이나 에센셜 오일을 통해 맡아본 향이 기억나는가? 어떻게 표현하였는가? 시향지에 뿌리고, 피부(손목)에 뿌려보자. 시향지에 뿌렸을 때와 피부에 뿌렸을 때 어떻게 다른가? 편집숍을 나와서 30분간 돌아다닌 후 다시 맡아보자. 시향지와 피부에선 어떤 차이가 나는가? 맘에 드는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혹은 너무너무 맘에 든다면, 다시 편집숍에 가서 그 향수에 들어간 게 뭐가 있는지 한 번 찾아보자.


4. 소분과 샘플


향수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향수의 주제를 정해서 소분하여 선물해주는 이벤트를 하기도 한다. 예로 자스민 향수 10가지라던지. 자스민에 대해 더 잘 알고 싶다면, 그리고 내가 자스민을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어떻게 표현한 자스민을 좋아하는지 더 알고 싶다면, 이런 이벤트에 참가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어떤 향수 전문 편집샵에서는 시향지 서비스를 진행하기 때문에, 돈을 내고 궁금했던 향수를 뿌린 시향지를 받을 수 있다.


빈티지 향수나 해외 인디/니치 향수의 경우엔 어떨까? 내가 자주 쓰는 사이트는 Luckyscent, Perfumedcourt, Surrendertochance, Scentsplit, Noseparis 등이 있다. 여기에서 해외 향수는 물론 빈티지 향수의 샘플도 돈을 내고 구매할 수 있다. 한국으로 배송하지 않는 경우 배송대행 사이트를 사용할 수 있다. 쉬이 구하기 어려운, 비싼 향수들을 샘플로 시향 및 착향을 해본 후 구입할지 말지 고민해보도록 하자. 나는 향수 초심자에게 소위 "블라인드 구매", 즉 향수를 맡아본 적이 없는 상태로 향수를 구매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 편이다. 자신이 선호하지 않는 방식으로 향을 표현했을 수도 있는 일이고, 시향지에서는 너무 아름답고 맘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착향했을 시에는 또 다르게 향이 나서 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Etsy 에 들어가면 (향수이름) sample 이라고 쳤을 때 여러 빈티지 향수의 샘플을 구할 수 있다.


5. 기타 향 관련 정보


향수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Fragrantica 라는 사이트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향수 브랜드에서, 혹은 사람들이 향을 맡고 이런 향을 느꼈다는 투표를 통해, 이 향수에 무슨 향이 들어갔는지를 보여준다. 예로 르 라보의 떼누아 29의 프래그런티카 페이지를 보겠다.


출처: https://www.fragrantica.com/perfume/Le-Labo/The-Noir-29-31872.html


왼쪽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무슨 어코드, 즉 어떤 향조가 난다고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디, 프레쉬 스파이시, 스위트, 아로마틱, 프루티, 토바코, 그린, 시트러스, 파우더리, 얼씨(흙 냄새)를 맡았다. 가운데 사진을 보면 탑 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에서 무슨 향이 나는지를 적어놨다. 탑에서는 무화과, 월계수잎, 베르가못, 미들에서는 시더(삼나무), 베티버, 머스크, 베이스에서는 토바코와 짚 향을 맡았다고 되어 있다. 이 사진을 가만히 보면, 예로 미들 노트에서 시더와 베티버 사진이 머스크 사진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시더와 베티버를 머스크보다 강하게 느꼈다는 것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오른쪽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longevity, 즉 지속력에 대한 평가를 내린 것을 볼 수 있고, 밑에는 sillage, 즉 확산력을 평가한 것을 볼 수 있다. 떼누아 29의 경우 사람들이 대부분 지속력은 보통~오래 간다고 했고, 확산력은 보통이라고 평가했다. 이 사이트에서는 사람들이 이 향수는 어떤 성별에 더 걸맞는지, 그리고 가성비는 뛰어난지에 대해 평가한 것도 볼 수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향수는 성별과 관련없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써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사진을 첨부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비슷한 사이트로 Basenotes와 Parfumo가 있으나, 프래그런티카가 위 투표 기능을 통해 앞의 두 사이트보다 훨씬 더 디테일하고 자세한 평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단 여기가 도움이 더 많이 되리라 생각해서 프래그런티카 사진만을 첨부했다.




끝맺으며


향수 뿐만 아니라 향 관련 제품을 취미로 가지기로 결심했을때, 괜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우리 주변에는 향이 나는 것들로 가득하며, 하다못해 음식이나 음료도 고유의 향을 가진다. 향에 대한 민감성과 구별능력을 키우는 것은 향 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고 마실 때도 즐거움을 배가시킬 수 있는 좋은 훈련이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가끔 와인 한 잔을 즐기시는데 예전에는 그냥 와인맛이라고 생각했던 와인에서, 갑자기 자두와 블랙커런트 향을 느낄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굉장히 즐거웠고, 선물받은 얼 그레이 홍차에서 그저 상쾌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던 향이 베르가못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또 한번 즐거웠다. 이런 훈련을 통해 꼭 향수가 아니라도, 향초나 디퓨저 혹은 인센스 스틱에 대한 취미가 생겨도, 자신의 능력을 갈고닦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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