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문명 바라보기
1. 프롤로그
잉카 유적이 모여있는 신성한 계곡 (Sacred Valley)을 방문한 지도 10 년이 되어간다. 2015 년 11 월,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나신 어머니께서 척추 수술을 성공리에 마치신 것을 축하하기 위해, 어머니 병간호에 많은 시간을 보낸 여동생 부부와 함께 페루의 신성한 계곡을 방문했다. 잉카제국이 멸망한 16 세기까지 이 지역에 남겨 놓은 유적을 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여행계획을 마련했다.
우루밤바 (Urubamba) 강을 따라 있는 피삭 (Pisac)과 마추피추 (Machu Picchu) 사이의 약 100 킬로미터 길이의 지역을 신성한 계곡이라 부른다. 한때 이 지역을 통치했던 잉카제국의 유적지가 도처에 남아있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대부분은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 (Cusco)를 통해 이곳을 방문한다. 신성한 계곡은 고도가 상류 피삭이 2972 미터, 하류 마추피추 밑에 있는 마을 아구아스칼리엔테스 (Aguas Calientes)가 2040 미터로, 비행장이 있는 해발 3399 미터인 쿠스코 보다 고도에 적응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신성한 계곡에 흐르는 우루밤바 강근처에서 여행을 시작하기를 추천하였다.
해발 2792 미터인 오얀타이탐보 (Ollantaytambo) 마을은 유명한 잉카트레일의 시작점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또한 마추피추로 가는 기차가 매일 있기도 하여, 신성한 계곡을 둘러보는데 알맞은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인터넷을 통해 오얀타이탐보에 있는 호스탈 이스케이 (Hostal Iskay)를 숙소로 정했다. 호텔을 통해서 쿠스코 공항 픽업을 포함해서 우리가 머무는 동안의 밴 서비스를 받기로 했다. 스패니쉬 말도 그렇고 익숙하지 않은 도로를 운전한다는 것은 너무도 큰 모험이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추피추 방문을 위해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서 1 박 하기로 하고 호텔을 예약했다. 오얀타이탐보와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사이의 왕복 기차표도 예매했다. 오피셜 웹사이트에서 마추피추와 웨이나피추(Wayna Picchu) 두 군데 다 볼 수 있는 표를 샀다. 이때만 해도 두 가지 레벨 밖에 없던 것이, 최근에는 더 복잡해져서 3 가지 레벨과 10 개의 루트로 갈라져 있다 한다.
2. 피삭
리마공항을 떠나 한 시간 반쯤 지난 뒤 쿠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3000 미터 이상 증가한 고도 탓인지 약간 어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공기도 희박해진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 이름을 들고 있는 운전수를 보고 '올라' 하고 손을 흔드니 우리가 못 알아 드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밴을 가리키며 우리 짐을 들고 차로 가서 문을 열어 주었다. 내가 호텔에 보낸 이메일 카피에 밑줄 친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피삭'에 동그라미가 쳐 있었다.
쿠스코를 떠나 산길로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를 세우고 아와나 칸챠 (Awana Kanch)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알파카 (alpaca) 농장이었다.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는 라마 (llama)는 좀 더 목이 길고 날씬한 반면, 우리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알파카는 털이 많고 짤막하게 생겨 보였다. 이곳에서는 주민들이 알파카 털로 직물을 짜고 있는 것을 보여 주기도 했다. 한쪽 유리 진열장 속에 있는 옥수수가 다양한 색깔과 모양을 보여주고 있기도 했다.
라마
알파카
알파카 직물 짜기
여러 색깔의 옥수수들
나는 짧은 스패니쉬 실력을 총동원하여 무언가 먹고 싶다고 '코미다' 라고 하며 말해놓고는, 운전수가 중간에 식당에 차를 세운 뒤에야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오히려 식당에서는 짧게나마 영어가 통해서 점심 주문할 수 있었다. 식사 후에 조금 더 가니, 피삭 유적지가 나타났다. 첫눈에 들어 오는건 잉카 유적 옆으로 산기슭을 따라 단정한 계단 모습을 보이는 테라스였다. 부채모양으로 펼쳐진 테라스는 잉카의 진보적인 농업경영 기술을 보여주었다. 돌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던 잉카의 기술을 보여주는 벽면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유적지를 따라 걸으며 지금은 사라진 잉카의 영화를 느껴 보았다. 피삭유적지에서 내려와 한시간쯤 더 달려 오얀타이탐보에 있는 호스탈 이슬라에 도착했다. 자그마하지만 안락한 숙소를 갖고 있는 곳이었다. 짐을 풀고 쉬다가 저녁이 되어 십여분 떨어진 마을 중심가를 향해 걸어가며 마을을 감상했다.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돌아본 마을 역시 전체에 잉카의 유물인 돌로 만들어진 길을 보여주었다.
점심 식사하러 들린 피삭의 식당
피삭 유적 앞에 펼쳐진 테라스
피삭 유적
잉카의 석조 건축을 보여주는 피삭 유적
오얀타이탐보 마을 밤거리
전형적인 오얀타이탐보 마을 돌로 만들어진 거리
3. 신성한 계곡의 고원 지대 (High Land)
아침에 밴이 호텔로 와서 우리를 픽업 했다. 우루밤바 강을 따라 비교적 평탄한 길로 반시간 쯤 달리던 차는 제법 큰 마을 우루밤바를 지나, 강을 건너 급한 경사의 산을 여러개의 스위치백으로 되어있는 길로 올라 가니, 고원지대가 나타나면서 다시 길이 평탄해졌다. 이내 마라스 (Maras) 마을이 나타나고, 그 가까이에 있는 모레이 (Moray)에 도착했다. 모레이는 정교한 기하학적 디자인에서 나올법한 원주들과 계단들로 이루어진, 마치 스타디움 처럼 보이기도 하는 거대한 구조물들이 세개 연달아 있는 곳이다. 최대 지름 200 미터의 원주로 시작해 가운데 깊이 30 미터 정도 까지 12 개의 테라스를 보이고 있었다. 밑을 내려가보니 위에서는 선선했던 공기가 땀이 날 정도로 더웁게 다가왔다. 모레이의 용도는 확실치는 않지만 농업시험 장소 라는 설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다. 왜냐하면 테라스를 돌아가면서 바람이나 햇살의 방향이 바뀌고, 또 매 테라스 마다 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작물이나 경작 방법을 테스트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이런걸 보면 잉카 문명은 전쟁과 무기 외에는 상당히 발달 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과연 문명이라는건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질문을 갖게 되었다. 반시간 쯤 유적들 따라 마련된 탐방로를 한바퀴 돌았다. 여기서 다시 길로 나서 더 고도가 높은 곳로 향했다. 멀리 피우레이 (Piuray) 호수가 보였다. 해발 3700 미터 정도에 있다고 하며 휴양지라 한다. 이내 친체로 (Chinchero)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을 돌아보는데 비가 오기 시작해 몇군데 눈에 띄는 건물들만 보고 떠났다. 가장 큰 건물은 우리의 성모 사원 (Templo de Nostra Senyora de la Nativitat) 이었다. 우리는 다시 고원을 내려가 우루밤바 마을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하늘이 개여서 다시 고원으로 올라가 이번에는 소금밭으로 향했다. 살리네라스 데 마라스 (Salineras de Maras)라고 직역하면 마라스의 소금광산 이라 할 수 있겠다. 산기슭에 마치 논뚜렁 사이사이 논위로 흰 눈이 덮인듯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물에 녹아 있는 소금을 증발시켜 다시 채취한다고 했다. 해발 3200 미터에 있는 이 소금광산은 스페인 정복 이전부터 있어왔다 한다. 이런 높은 고원에서 생뚱맞게 하얗게 펼쳐진 소금밭을 보는 느낌이란 그야말로 다른 세상을 본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소금도 풍부하고 농업 기술도 발달했던 잉카제국이 덧없이 사라졌다는 역사의 한장을 또다시 생각하게 해 준 하루였다.
마라스 마을
모레이 유적
피우레이 호수
친체로에 있는 우리의 성모 사원
마라스의 소금밭
4. 오얀타이탐보
오얀타이탐보는 잉카가 15 세기에 점령하고 그 다음 세기에는 스페인에 귀속되었다 한다. 잉카가 스페인을 물리쳤던 오얀타이탐보 전투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 전투에 이긴 뒤에 잉카는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겼고 결국은 스페인에 정복되었다 한다. 마을을 둘러 싸고 있는 산 중턱에는 잉카 유적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반듯반듯한 돌로 만들어진 계단들이 눈에 들어 온다.
아침식사 후에 호텔을 체크아웃하면서 1 박 할 짐만 꺼내고 나머지는 호텔에 맏긴 후 길을 나섰다. 마을 서쪽에 있는 오얀타이탐보 유적지 (Sitro Arqueologico de Ollantaytambo)에 표를 사고 입장했다. 산기슭으로 수많은 계단들이 까마득하게 펼쳐 있는 신전의 언덕 (Temple Hill)을 올려다 보며 그 웅장한 스케일에 감탄했다. 쉬엄쉬엄 계단을 오르면서 유적과 주위 경치를 살펴 보았다. 검은 화강암 거석들을 조각조각 붙인것 같은 벽은 그 정교함이 정말 경이로웠다. 중간에 선생님 인솔하에 소풍 나온 페루 고등학생들을 만났다. 띄엄띄엄 영어로 우리가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더니, 사우스코리아라는 소리를 듣고는 사진 함께 찍자고 조르는 바람에, 잠시 웃고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나이 많은 사람들이라 신기했나? 조금 더 올라가니 비석같이 우뚝 솟아난 나란히 붙어있는 6 개의 거대한 핑크화강암이 주변을 압도하며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태양의 신전 (Templo del Sol) 이었다. 그 가까이에는 아마 제사를 준비하는 방이라 싶은 유적이 나타났다. 옆의 언덕으로 걸어가니 곡물창고의 유적이 보였다. 내려가면서보니 계단 옆으로 수로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잉카는 물 관리에 있어서도 상당히 발달되어 있었음을 보이는 것으로 여겨졌다. 아래에는 물을 담아놓은 수조가 여럿 연결되어 있는것이 보였다. 이 중 압권은 공주의 목욕탕 (Bano de la Nusta) 이었다. 정교하게 다듬은 돌 사이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과연 순결한 공주가 목욕할 수 있을만한 곳이다 싶었다.
오얀타이탐보 유적지 입구 근처
입구에서 올려다본 신전 언덕
내려다본 오얀타이탐보 유적지 입구
오얀타이탐보 유적지의 검은 화강암 거석으로 이루어진 벽
오얀타이탐보 태양의 신전
신전 가까이 있는 유적들
곡식 창고 유적
계단과 그 옆을 따라 가는 수로
공주의 목욕탕
유적지 관광을 마치고 마을에서 점심 식사한 뒤 기차역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마추피추를 향해서 떠났다. 객차는 지붕이 유리로 덮여 있어, 가는 내내 창밖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는 오로지 마추피추 방문을 위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것 같았다. 관광 산업에 의존하는 만큼 호텔, 식당, 기념품 가게가 구석 구석 있었다. 하루를 마치고 다음날 맞이할 마추피추를 상상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오얀타이탐보 역에 서 있는 기차
창밖을 구경하는 기차 승객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마을 중심가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야경
5. 마추피추
새벽녘 거센 빗소리와 천둥 소리에 눈을 떴다. 아침 일찍 마추피추행 버스를 타기위해 기다란 줄에 합류했다. 비는 그쳤지만 산 봉우리들에는 구름들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버스는 산 비탈을 구비구비 돌아가는 스위치 백으로 되어 있는 길위를 아슬아슬하게 달려 반시간 정도 뒤에 마추피추 입구에 도착했다. 또한번 줄을 길게 섰어야 했다. 관문을 통과한 다음에 전망대 (Mirador)로 알려져 있는 옛 초소가 있는 언덕으로 가는 계단을 걸었다. 전망대에 도착했지만 자욱한 안개비 속에서 막연히 산봉우리라 싶은 것이 윤곽을 보이고 있었다. 망연자실 해져 사방을 둘러보고 있는데 머리윗쪽에서 안개속으로 라마가 나타났다. 혹시나 좋은 징조가 아닐까 싶었는데 한쪽으로 무지개가 보이며 구름이 흩어지기 시작하면서 유적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내 구름이 더욱 걷히며 유적지가 또렸하게 눈에 들어왔다. 저절로 가슴이 뭉클해 지는 순간이였다.
마추피추 유적지 입구
입구를 지나 옛초소로 올라 가는 계단
짙은 안개 속에 나타난 라마
비구름이 걷히며 눈 아래 나타난 마추피추 유적지
선명한 모습을 드러낸 마추피추 유적지
아래로 내려가 유적지로 들어 섰다. 테라스 위에 좁은 길 양옆으로 벽과 지붕이었으리라 싶은 건물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매끄러운 곡선의 태양의 신전이 보였다. 이는 아마도 하지의 태양을 향해 죽은자들을 위해 제사 지녔으리라 믿어진다 한다. 신전 아래에는 왕이나 높은 사람들의 시체를 넣었던 곳이라 믿어지는 빈 공간이 있었다. 조금더 내려가니 마치 날아가는 콘돌의 날개를 닮았다는 콘돌의 사원이 나타났다. 이곳도 종교의식에 쓰였다 한다. 계속 유적 사이를 걸어다니며 아주 정교하게 다듬은 문이며 창문 같은 구조물들을 보았다. 경외 스러운 잉카의 돌 다루는 기술을 확실히 보여준다고 생각 되었다. 역시 잘 다듬은 사원의 남겨진 벽도 나타났다. '인티와타나' (Intihuatana)라 불리는 하지를 예측하는데 쓰였다는 제단은 무언가 과학을 지칭하는것 같아 신기하게 보였다.
좁은 길 옆으로 보이는 벽과 지붕
태양의 신전
태양의 신전 밑에 있는 무덤이라 믿어지는 방
콘돌의 사원
콘돌의 돌이 사원 가운데 있는 콘돌 머리 조형
잉카의 대문
잉카의 창문
사원의 유적
인티와타나
이렇게 도처에 놓여있는 돌로된 유적들을 보면서 웨이나피추 산을 향해 가다가, 잉카들이 신성하다 믿었다는 거대한 바위 (Sacred Rock)가 놓여 있는곳에 도달했다. 일부 평평한 면은 거석을 다루는 잉카의 기술을 나타낸다 했다. 웨이나피추로 가는 문은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하이킹 트레일은 일부는 계단이고, 일부는 암벽 위로, 또 일부는 바위 틈새로 가야하는 쉽다고는 할 수 없었다. 더구나 정상에 가까와 져서는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다르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기도 어려운 구간이 있었다. 유럽에서 온 한 중년 여자가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가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것도 보았다. 결국은 올라오던 사람들이 멈추어 서서 그 여자를 오던길로 다시 내려가게 해주었다. 우리는 한시간 조금 넘게 걸려 정상에 도착했다. 눈아래 마추피추 유적들이 까마득히 보였고 아침에 올라왔던 구비진 자동차길도 선명히 나타났다. 땀 식히고 물마시고 쉬다가 내려올때는 급경사에서는 미끄럼 타듯 내려오기도 했다. 웨이나피추 하산한 뒤에는 다시 한번 마추피추 유적들을 돌아보고 버스를 타고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내려와 오얀타이탐보로 기차로 돌아왔다.
신성한 바위
웨이나피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웨이나피추 하이킹 트레일 초입
웨이나피추 정상에서
웨이나피추 정상에서 내려다본 마추피추 유적과 자동찻길
6. 신성한 계곡을 떠나다
아침에 호텔에서 불러준 밴을 타고 오얀타이탐보를 떠나 쿠스코로 향했다. 운전수에게는 우리가 가면서 들리고 싶은 잉카 유적들을 미리 이야기 했다. 이제는 어느정도 눈에 익은 우루밤바 강을 따라난 길로 들어 신성한 계곡에 작별을 고했다. 첫번째 들린곳은 푸카푸카라 (Puka Pukara) 요새였다. 이곳은 비교적 작은 돌들로 만들어진것으로 보아 거의 잉카의 마지막 요새가 아닌가 한다 했다. 한바퀴 도는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어서 그 가까이 길 건너에 있는 탐보마카이 (Tambomachay) 에 들렀다. 이곳에는 물길을 내어 계단식으로 내려보내는 시설이 있었다. 아마도 왕족들의 목욕탕이었을 꺼라 했다. 그 다음 길을 나서 2-30 분 정도 가니 광대한 여러겹의 성같은 풍경이 나타났다. 바로 삭세이우아만 (Saqsaywaman) 이었다. 이곳은 15세기 중반에 요새로 지어진 것이라 했다. 그후 채 100 년도 되지않아 잉카군이 이곳에서 스페인 군에게 괴멸되었다 한다. 스페인 식민통치 동안 이곳의 돌들을 가져다가 다른 건물들 짓는데 써서 큰 돌들만 남아있다 했다. 남아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돌들을 보면서 그 기술이 다 어디로 갔는가 의문을 품게 했다. 삭세이우아만에서 시간을 보낸 다음 500 년 정도된 예전엔 수녀원이었다는 호텔 'JW Marriott El Convento' 로 체크인 했다. 특이하게도 높은 고도에 적응하는걸 도와주기 위해, 방에 따로 산소를 공급한다 했다. 쿠스코는 도처에 잉카의 흔적이 있었다. 길을 걷다가 대주교 저택 옆에 있는 거대한 12각의 돌을 보기도 했다. 무게가 6 톤이라 했다. 반질반질한 면이나 주변의 돌들과 완벽하게 아귀를 맞추고 있는것은 다시한번 잉카의 기술을 돋보이게 했다. 어떤집 대문은 잉카의 문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기도 했다. 밤거리를 거닐면서 본 중심가 플라자 다마스 (Plaza de Armas)에 있는 잉카 동상 역시 이곳 사람들은 잉카의 후예로서의 자부심이 상당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푸카푸카라 요새의 벽
탐보마카이
삭세이우아만 유적 요새의 벽
삭세이우아만의 벽의 일부인 거석
호텔 코트야드
대주교 저택 벽에 있는 12 각의 돌
쿠스코 거리에서 마주친 잉카의 흔적
쿠스코 시내 중심에 있는 잉카 동상
7. 쿠스코
호텔에서 느지막이 아침먹고 산뜻한 기분으로 쿠스코 구경을 나섰다. 전날 밤에 보았던 플라자 다마스의 경관을 쿠스코 성당이 지배하고 있었다. 플라자 다마스에서 성당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난 큰길인 태양의 길 (Avenida El Sol) 을 따라 쭉 걷다보니 언덕위에 십자가들이 여럿 보이는 커다란 건물들이 보였다. 황금의 사원 이라 불리는 코리칸챠 (Qorikancha) 였다. 잉카제국 시절 태양신에게 제사올리던 가장 중요한 사원을 스페인 정복자들이 교회로 바꾸어 놓은 것이라 한다. 벽 한면이 금으로 씌워 있었다 한다. 스페인 식민지 하에서 부수고 교회를 지으려 하였지만, 워낙 튼튼하게 지어진 잉카의 돌로 된 건축인지라, 상당 부분을 그대로 두고 교회를 지었다 한다. 물론 금은 벗겨 갔었을 것이고. 여기에 지어진 산토 도밍고 교회의 코트야드는 유럽식 아치로 둘러 싸여 있었다. 코리칸챠 구석구석 잉카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정교하고 반듯한 돌들로 만들어진 니치가 있는 방은 잉카의 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잉카시대에 쓰던 천문지도도 남아 있었다. 심지어는 다산을 상징하는 잉카의 문양을 지닌 돌을 그대로 둔 곳도 있었다. 코리칸챠 아래로는 성스러운 정원 (Sagrada Garden)이 너른 풀밭 위로 뻗어 있었다. 12 각 돌의 벽이 있는 대주교의 저택에도 들려서 원주민들을 훈련시켜 그린 성화들도 보고 코트야드도 둘러 보았다. 오후에는 마을을 돌며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산페드로 (San Pedro) 시장도 들려보고 아기자기한 산블라스 (San Blas) 교회 근처도 걸었다.
쿠스코 중심부 플라자 다마스
쿠스코 성당
코리칸챠
산토 도밍고 교회의 코트야드
코리칸챠에 남아있는 잉카 구조물
코리칸차에 남아있는 잉카 천문 지도
코리칸챠의 자식 많이낳기를 비는 잉카의 문양이 있는 돌
성스러운 정원
대주교 저택의 코트야드
산페드로 시장 입구
산블라스 교회
8. 에필로그
리마를 통해 돌아가는 비행기에 타면서 우리의 잉카 유적 탐방은 끝났다. 아직도 신비의 베일을 벗지 못한 잉카를 겉핥기나마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무척 기뻤다. 우리 모두 60 세 앞뒤로 놓고 그동안 벼르고 있었던 마추피추 구경한 것을 자축하며 리마에서 동생 내외와 작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