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주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by 김냥뇽

무언가를 끊임없이 질리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음은 축복이다.

나에겐 그건 자연이 주는 경관일 테지. 아마 죽을 때까지 끝까지 사랑할 거다.

오늘은 day light saving이 시작되어 한 시간이 줄어든 날. 대게 이런 썸머타임이 시작된 날의 아침은 잃어버린 한 시간에 대한 상실감이 존재하지만 또 그 상실감을 상쇄시키는 장점은 저녁시간이 다 돼서야 알게 된다. 마치 여름이 되어 해가 길어진걸 한순간에 체감하는 것 같은 기분인데, 가령 예를 들면 저녁 6시 이후에도 아직 하늘이 밝고 해가 있다는 간질거리는 설렘을 주는 뭐 그런 것. 근데 그 해가 길어짐을 서서히 느끼는 게 아니라 한 시간을 통째로 앞당겼기에 확실하게 다가오는 선물, 그것이 Day light saving이 주는 유일한 장점이다. (최소한 나에게 있어선) 그리고 오늘이 특히나 만족스러웠던 건 아마 유독 길었던 올해의 겨울이 드디어 종지부를 찍는 듯 풀린 날씨가 주는 영향이 있었다. 날씨로 기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건만 올해도 대차게 실패한 나는 이 오랜만의 따듯한 날씨를 환영하고 만끽하고자 저녁이 되기 전 하던 실험을 멈추고 나왔다. 저녁 여섯 시 반쯤인데도 평소와 다르게 하늘은 아직 밝았고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 언덕을 넘으니 언덕뒤에 주황색으로 불타는 해가 저물고 있었다. 뒤이어 따라올 수밖에 없는 노을이 우중충했던 낮의 아쉬움을 달래듯 다양한 색채로 한껏 보상해 주었다. 난 특히나 구름이 가득 끼여있었고 비가 왔다가 갠 하늘의 노을을 사랑하는데, 이런 날은 정말 황홀한 황금, 주황, 보라, 회색, 그리고 핑크의 그라데이션이 삽시간으로 변화를 주기에 요지부동의 자연경관 같은 것에서 오는 질리는 맛이 없다는 게 내가 노을을 특히나 더 사랑하는 이유다. 이런 기가 막힌 장관이 펼쳐지는 날엔 노을 그 자체보다 더 사랑하는 풍경이 있는데, 그건 바로 이 광경에 취해 불현듯 발길을 멈춘 사람들을 보는 것이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사람, 운전하던 사람, 집으로 향하던 사람들 모두 잠깐 바삐 흘러가는 일상을 잠깐 내려놓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황홀경에 빠진 모습. 쉴 새 없이 굴러가던 생각들과 마음속 존재하는 불안과 걱정들이 잠깐이나마 부질없어지는 이 알 수 없는 풍족감으로 꽉 차게 되는 요상한 노을이 주는 힘. 모두가 한마음 한뜻일 거라는 동질감에서 오는 안도감까지. 더군다나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 봄 자체에서 오는 아름다움도 있다. 참, 이 노을 하나가 뭐라고 이렇게 내면이 100퍼센트 풀 충전 되는 느낌인지. 순수한 풍족감으로 가득 찬 상태의 소중한 기분을 가득 껴안고 한껏 부비고 싶은 난 이 시간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아마 평생 사랑할 테지.

이런 관조단계에 들어서서 괜시리 센치해지게 된 모습은 오히려 이렇게 아예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더 안전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모습을 들킬 수 있는 친구들은 거의 정해져 있는 편이고 확장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이런 모습을 들킬 수 있는 사람들은 학부 때 만났다. 그땐 그 인연들이 복인줄 모르고 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을 후에 후회했기도 했지. 이런 다분한 후회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현재”의 소중함을 인생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긴 했지만. 학부친구들과는 노을이 이쁠 것 같은 날엔 언제든지 단톡방에 "노을 볼사람 ~" 하면 꼭 모이게 되는 멤버들로 다시 모여 샛노랗게 저무는 노을을 즐기며 함께 본 수많은 노을들 중 오늘의 노을의 순위를 재정립하며 놀던 우리의 순수했던 행복한 순간들이 존재했기에 그 시절을 되돌아볼 땐 그땐 그랬지 하며 따듯한 미소가 번지게 되는 순간들. 그게 유일한줄 몰랐어서 언제나 누구와라도 함께 만끽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안일했던 지난날이 있었기에 지금의 현재를 공유하는 친구들도 다신 돌아올 수 없을까 봐 중히 여기기로 마음을 먹는다.


여튼 이런 센치함을 공유할 수 있는 건 드문 인연이라는 것. 유독 노을을 함께 만끽하며 서로가 각자의 생각에 깊게 빠지는 시간을 존중해 주고 그 정적으로 가득한 시간이 전혀 오글거리는 행위가 아니라고 느껴지게 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언젠가는 이런 친구 한 명 둔 것에 만족을 모르고 추가 할 대체제를 찾아 나서기도 했지만 대체제를 찾던 세월이 몇 해간 지나며 스쳐간 시절인연들로 인해 어떠한 특정 인물의 대체제 같은 건 절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스쳐 지나간 시절인연들도 참으로 다들 유일하고 소중했지만 오늘같이 이쁜 노을이 펼쳐지는 날엔 유독 보고 싶어 지는 내 친구 장씨.

날씨 이야기로만 날씨가 좋아 얼마나 행복한가에 대해 한 시간 넘게 떠들 수 있는 친구.

심각한 노을 무새 둘


아마 검색에도 안 나오는 띡하고 보낸 노을 풍경 사진들도 많을 것이랴.

몇 년 전, 짧지만 임팩트가 강하다 느껴졌던

작가의 친구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리포트가 묶여 있던 책을 재밌게 읽고 장씨에게 선물을 해줬던 적이 있다.

내 브런치 소개글에는 내 주변 지인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고 적혀있는데

사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주변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었던건.

내 지인 리포트 첫 번째 대상은 장씨일 터.

지금 이건 프리뷰겠지?


여튼 이 풍족한 마음으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저녁 봄바람까지 맞고 생동감에 취해 이 글을 썼다.

무기력했던 길고 길었던 겨울을 끝맺고

드디어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나.

이젠 좀 더 활기차게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오늘, 더 따듯해질 내일을 기대하며 설렘을 느낀 적이 언제 적이었나 까마득 하네.

오늘 함께 노을을 만끽했던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이 모두 동일하게 아름다웠던 오늘의 노을을 되새기며

행복하고 만족감에 가득 찬 잠자리에 들길

나도 그럴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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