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신년 목표
새해가 다가올 때쯤이면 꼭 내 알고리즘은
새해에는 이렇게 해보세요- 하는 자기 계발 추천 영상들로 점령된다.
이상하지-
난 새해 목표를 크게 잡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이런 알고리즘을 추천해 주는 이유는,
또 그리고 그런 것들을 꼭 한 번씩 클릭해서 끝까지 보는 나는 마치 이런 새해를 빌미로 작년과는 확연히 다른 나로 발전시키는 것에 관심 많은 사람인 양.
새해, 신년... 이 무슨 소용이랴-
어제와 오늘의 차이일 뿐.
뭔가 단단히 마음을 먹고 갑자기 변화를 주려하면
나는 그게 어려워서, 도중 포기하는 나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 신년목표 세우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라는 비겁한 말 뒤에 숨어버린 나.
그래. 어릴땐 자기 계발 도서들을 가장 좋아했었다.
특히 어린이 추천 도서였던 "배려"라는 책은 한 세-네 번 재독 했었을 정도로.
배려 외에도 위즈덤 하우스출판사의 어린이를 위한 자기 계발 도서 시리즈물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그래서 내가 자기 계발 도서를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었고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시크릿, 말하기 수업 같은 책 등등 여러 자기 계발 베스트셀러들을 읽었는데 그게 지금 현재의 나를 일구었는지는 잘 모르겠거니와.
그러다가 10대 후반-20대 초반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거기서 오는 갈증이 컸다. 그럼 읽으면 되지-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실제로 책을 다시 손에 잡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만 같은 죄책감이 아주 커졌었어서.
그렇다고 지금도 책을 많이 읽는 건 아니다.
평균적으로 일 년에 5-6권 정도밖에 읽지를 않는다.
나는 아직도 너무 부족한 게 많고 읽어야 하는 목록이 수두룩 빽빽하다.
그렇지만 언제나 발전 가능성이 있는 상태라고 항상 부족한 상태의 현재 진행형인 나에게 조금 너그러운 편인 나. 그래서 책을 조금 더 읽어보는 게 올해의 미적지근한 목표 1이다. 오늘도 읽어 볼 책 리스트는 하나씩 더해져만 간다.
저번주에 이적, 이연실 편집자님, 선우정아, 그리고 개그우먼 임소윤이 나온 "바쁜데 다정할 수 있겠어?" 라는 유튜브 영상을 봤다.
다정함이란 또 내가 결국에는 이루고 싶은 나의 모습 중에 하나다. 아직까진 내가 다정하다는 평을 받는 인격은 안된다. 하지만, 꼭 가지고 싶은 캐릭터임은 분명하다. 본인에게 다정함, 타인에게 다정함은 어느 정도 연결되는 부분이라 일단 나에게 조금 더 다정해져 보기. 그래서 미적지근 목표 2는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기.
그리고, 정갈하고 싶다.
그래서 올해의 미적지근한 목표 3.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그리고 조금 더 정갈해지기.
정갈함에 대해서는 또 할 말이 많은데.
할 말이 많다는 점 자체가 내가 정한 정갈함과는 멀어지긴 하지만 나같이 나불대는걸 좋아하는 사람에겐 어쩔 수 없다. 다른 정갈해질 수 있는 부분을 극대화시킬 수밖에.
나에게 있어서 사람에게 풍겨져 나오는 정갈함이란
첫 만남에서부터 대번 느껴지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다. 알면 알수록-이라는 서두가 필요한 표현이다.
내가 느끼는 어떤 사람의 정갈함은
그 사람의 옷매무새, 사용하는 도구들의 청결함,
머물다간 자리, 옷 질감 유지력,
손끝에서 느껴지는 야무짐,
서두르지 않는 자세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이 카테고리 중 내가 잘하는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씁쓸해지네.
내 옷은 아 이 사람 참 정갈하구나- 와는 조금 먼 형태를 갖고 있다.
하얀 옷은 착용 후 세탁을 반복할수록 횟빛이 돌며,
어두운 색상의 옷들은 세탁기표 기름때가 어느 순간 하나 둘 껴있다.
그래서 오래된 옷들은 결국엔 죄다 잠옷행이다.
옷들의 원 형태를 잘 유지하며
오래 사용하는 사람들은 내가 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이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그 정갈함은 내가 노력한다고 될까 싶을 정도로 섬세한 파트..... (다림질도 해야 하고, 원래 행동자체가 조심성 있어야 하며, 섬세해야 하고, 옷을 사랑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한 덕목이라.....)
또 정갈함의 차이를 크게 느끼는 부분은 한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필기구에서 오는 깔끔함이다.
내가 쓰는 필기구들은 사용감이 그득하다.
오래된 것들은 사용한 지 20년이 넘어가기도 한다.
필기구에서 오는 깔끔함의 격차는 학창 시절 때부터 뼈저리게 느꼈다.
얇쌍하고 빳빳한 가죽 필통에 연필심의 날카로움마저 유지하며 깔끔하게 필기구들을 넣어 다니던 친구들은 꼭 반에 한두 명씩 있었다.
그런 친구들은 책상에 깔끔하게 오와 열을 맞추어 필기구를 꺼내놓은 채로 사용하고
교복도 항상 깔끔한 색상과 재질을 유지하며
자세조차 올곧은 그런 멋진 친구들.
나는 깨끗하게 유지될 리 없는 펄프재질에 물렁한 형태의 필통에 필기구를 꽉꽉 채워 뚱뚱하고 흐물텅하게 가지고 다니던 친구.
연필심들은 죄다 부러져있거나 뭉툭해져 있고.
정갈한 친구들 따라 오와 열을 맞춰 필기구를 꺼내놓고 사용하다 보면
덜컹-하고 책상이 흔들릴 때마다 열 맞춘 필기구들은 죄다 바닥으로 후두둑...
성인이 되고 나선 이젠 유치한 필통은 졸업했다..... 고 생각했는데 들고 다닌 지 5-6년이 된 내 현재 필통은
다시 보니 30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유치뽕짝 핑크 매쉬 재질의 필통.
흑연이 군데군데 많이 꼈는지, 넣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 하얀 형광펜들이 죄다 꼬질 해져있다.
새해를 맞아 필기구를 다 알코올로 닦고
이 답 없는 필통을 버린다.
해당 글을 작성하게 된 계기라고 볼 수 있다.
거자기 이 꼬질하고 초라한 필기구들이 나를 대변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충동적인 나는 새 필통이 장만되지 않았지만 일단 헌 필통은 버려버린다.
그리고 갈 곳 잃은 필기구들을 열 맞춰 잠깐 놔두는데, 안 맞춰진다.
그렇다고 깨끗한 필기구만 남기고 더러워지고 바래진 친구들을 같이 쓰레기통에 넣기엔
알게 모르게 정이 이미 들어버려서 그게 안된다.
답이 없는 것 같은 나의 정갈함을 향할 여정.
그래도 한 뼘 가까워지고 싶어,
생긴 대로 살기엔 내 행색이 약간 초라해지는 것 같아, 조촐하고 미적지근하게 발전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만 가득 안은채 글을 쓴다.
그래서 2026년은 은근 더 다정해지고, 아주 조금 더 유식해지고, 미묘하게 정갈해지기 정도의 목표를 잡아본다.
알면 알수록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해오던 대로
서서히
차근차근
은은하고 미적지근-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