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유럽에서

우리가 알던 유럽은 계속 될까?

by 경계인

2015년말에 귀국하고 나서 출장을 프랑스로 온 적이 2번 있긴 하지만 짧게 와서 그런지 이번에 총 6박을 한 거랑 근 10년전을 비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일정을 복기해 보면 도하에서 체코 프라하로 유럽에 들어왔습니다. 동기가 유럽에 몇 명의 지인들이 있어서 이번에는 그 지인들을 만나는 걸 기준으로 동선을 잡게 되었는데 그 출발점이 체코였던 셈입니다. 체코에서 2박을 하고 기차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로 갔습니다. 잘츠부르크에서 1박하고 할슈타트 인근에서 다시 1박을 하고 비행기로 베를린으로 갔습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베를린에서 도하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쓰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프라하와 베를린은 10년전에 가본적이 있어서 그런지 꽤나 친숙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보니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습니다. 알지 못했던 것도 있고 다르게 생각하게 된 것도 있고, 세상이 달라진 것도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어떤 커피 광고에서 '다만 내가 변할 뿐,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알듯말듯한 말처럼, 변한 것은 저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했고 저도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었고 세상을 보는 제 눈도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10년전 막연한 동경을 갖고 보던 그 유럽이 이제는 그렇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프라하는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답고 활력있는 도시였습니다. 바츨라프 하벨 공항은 작고 소박하지만 유럽에 다시 왔다는 들뜬 기분을 갖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아랍권에서 오다보니 거리상 그렇게 먼 것도 아닌데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분위기이니까요. 40도를 넘나들던 곳에서 갑자기 20~25도 사이의 날씨에 떨어지니 살짝 춥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입국심사를 하는 사람들, 공항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인종 구성도 확연히 다릅니다. 체코도 꽤 위도가 높아서 해도 많이 길어졌습니다. 까를교엔 여전히 사람이 많지만 한국사람들은 전보다 조금 줄어든 듯도 합니다. 코로나 이후에 다시 직항이 다닌다고 하는데 아직은 예전만큼 많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Mirror Chappel에서 오르간과 현악기, 소프라노의 음악도 좋았습니다. 마치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을 모아놓은 것 같고요. 적당한 물가, 적당한 볼거리, 적당한 인파, 적당한 먹거리 이런 것들이 어우러진 도시가 프라하의 매력같습니다. 사람들도 그다지 화나 있거나 건방지거나 무시하는 느낌이 없고 소박하면서 실용적인 느낌이 듭니다. 압도적인 스케일이나 웅장함은 없을지라도 훨씬 더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유럽이랄까요. 아쉬운 점은 우리가 체코를 잘 알지 못하기에 그 사람들에게는 중요하고 충분히 풍성한 이야기와 역사가 있지만, 우리가 듣고 공감하거나 깊은 인상을 받거나 더 궁금해지는 건 그 중 아주 작은 일부라는 점입니다. 세계사적인 공간, 인물, 이야기가 아니라 체코라는 나라에 국한되는 이야기, 사람이다 보니 많이 공부하고 온 게 아니라면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갈 것 같습니다. 물론 카프카, 스메타나, 드보르작, 케플러, 하벨 등 쟁쟁한 인물도 많았고, 프라하의 봄 같은 중요한 사건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비교하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나 포인트가 1800년경 이후의 것들이고 인구가 1000만 정도인 것에 비해 보면 결코 작은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 사람들은 뭘 먹고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는 어찌될지 궁금해졌습니다. 의외로 체코는 제조업 비중이 25%로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합니다. 프라하만 보면 관광이 주요 먹기리일 것 같지만 자동차 산업이 실제로는 주력입니다. SKODA라는 자동차 제조사가 체코에 있고 상당히 역사도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폭스바겐이 대주주이니 독일계열 회사라고 해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코에서 설계나 제조가 이루어지는 독자 브랜드이니 체코 회사인 것이죠. 당연히 체코 시내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고요. 체코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수준이라고 하는데 굴러다니는 차를 보면 독일 3사의 럭셔리 차들도 많지 않고 스코다, 폭스바겐, 도요타, 현대기아 같은 실용적이고 합리적 가격의 차들이 대부분입니다. 스코다는 체코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독일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디자인은 특별하지 않고 무난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 같고 왜곤, 소형, 준중형 같은 그야말로 대중적인 세그먼트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체코가 공산권 시절도 그렇고 그 이전에도 제조업 기반이 꽤나 탄탄했고 역사도 길다고 합니다. 공급망이나 산업적으로는 당연히 독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러시아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고 인종, 언어적으로는 러시아와 가깝지만 민주주의 체제, EU, 문화적으로는 독일과의 연결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그 다음은 자신들이라는 생각에 지원을 중단하자는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여러 강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느낌도 듭니다. 사실 중부 유럽에 있는 나라들치고 그렇지 않은 나라가 있을까 싶기는 합니다. 결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같은 나라들간 세력균형이 어떻게 바뀌는지가 체코 내부의 사정이나 의사보다 더 결정적인 경우가 많았던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프라하의 봄 때도 그렇고 독일 총독을 처단한 젊은 장교들이나 신구교 갈등에서 반대파를 창밖으로 집어던지는 식의 일들을 보면 결단력도 있고 투지나 강단도 있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체코의 미래가 밝아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체코만의 문제는 아니고 독일, EU 전체가 다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10년전만해도 EU의 경제규모가 미국보다 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미 미국이 더 커진지 오래고 EU가 강점이나 우위를 가진 영역이 점점 줄어들거나 사양산업인 것이 문제 같습니다. 물론 우리가 EU걱정하는 건 연예인 걱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제조업에 잘 맞던 EU 국가들의 사회, 정치 시스템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는 우리도 눈여겨 봐야 할 부분 같습니다. 오스트리아, 독일을 다니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게 이 부분입니다. 탄력적이지 못한 정치, 사회구조와 경제가 EU의 미래를 어둡게 하다 보니 최근 EU 의회 선거에서도 극우당들이 우위를 보인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 역시 답은 아니지만 현재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대안을 찾는 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번 싱가포르를 다녀오면서도 그렇고 이번에 카타르를 잠시 들르면서도 느낀 점은 비슷합니다. 뭔가 역동성이나 활력같은 것이 유럽 국가들에서는 잘 안 느껴집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노인들이 많은 점이나 관광 외에 기억나는 뭔가가 없고 딱히 최근에 EU국가들에서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오는 걸 잘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전히 자동차 잘 만들고, 명품의 아우라는 여전하지만 거기까지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늘 느끼는 건 이탈리아가 EU의 미래라는 것입니다.


체코에서 오스트리아로 갈 때는 철도를 이용했습니다. Vindovona는 비엔나-프라하-베를린을 잇는 EU의 중유럽 고속철 프로젝트라고 하는데 언제될 지 기약은 없어 보입니다. 이 구간은 관광객들 수요가 꽤 있어 보이는데 베를린-프라하가 차로 3~4시간 걸린다고 하니까요. 프라하에서 비엔나로 가지 않고 Linz라는 곳에서 갈아 탔는데 의외로 Linz는 꽤 큰 도시였지만 일종의 경제, 산업도시라서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잠깐 갈아타면서 느낀 건 오스트리아의 울산이었습니다. Linz를 지나가면서 서서히 높은 지대로 올라갔습니다. 역시 알프스 먼 자락 정도 되는 동네이긴 했습니다. 이쪽 알프스를 싼 알프스, 스위스쪽은 비싼 알프스라고 한다고 합니다. 알프스 근처라도 가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그리고 이렇게 여름에 눈이 쌓인 곳을 가는게 처음이라서 저 개인적으로는 싸고 비싸고는 잘 모르겠고 눈덮인 2100m 고지의 알프스를 걸어본 것이 가장 인상적인 경험이었고 버킷 리스트 중 하나를 채운 느낌입니다. 더 좋은 곳도 많겠지만 더 안 가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스트리아는 깨끗하고 오래된 독일같았습니다. 체코도 그렇지만 이민자나 유색인종이 거의 눈에 띄지 않고 백인들 위주의 사회라는 것이 곳곳에서 느껴졌습니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비싸지만 모든 게 정확하게 돌아가는 인프라가 인상적이었는데 체코에서 넘어오다보니 그런 격차가 더 크게 느껴졌고 10년전 핀란드와도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현재 유럽에서 이 정도의 체계가 갖춰지고 잘 돌아가는 건 오스트리아, 스위스 정도일텐데 오스트리아가 관광, 임업 같은 부분에서 경쟁력이 꽤 있어서 다를 수는 있겠지만 유럽이 가진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틀동안 관광지 돌아다닌 것으로 평가를 한다는 것이 가당치 않은 일이기는 합니다. 다만 오스트리아가 예전부터 이민자, 난민 수용에 부정적이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안 받아도 되니까, 안 받고 싶으니까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게 지금 현재 상태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좋든 싫든, 옳든 옳지 않든 독일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합스부르크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산은 어떤 형태로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비록 지금은 쪼그라들었지만 여전히 제국의 시야와 스케일을 갖고 있고 때로는 가혹할 정도로 주변 나라를 대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그게 어떤 우월의식 같기도 하고 차별적인 시선같기도 합니다. 규정이나 질서를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 지적질하고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보는 행동에는 어떤 의식이 깔려 있다고 보는 게 이상하진 않을 것입니다.


동화속 나라같은 할슈타트를 잠시 들렀다가 베를린에 갔습니다. 이번이 2번째 방문인데 유럽 역사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곳이고 몇 권의 책을 읽어서 좀 더 자세히 알게 된 곳이기도 합니다. 1, 2차 대전의 중심 지역이고 지금의 현대 국제질서가 형성된 곳입니다. 그 독일과 지금의 독일을 만든 2명이 프리드리히 대왕과 비스마르크입니다. 그 사람들이 만든 도시가 베를린이고, 운터덴린덴, 상수시 궁전에는 웅장한 건축물들이 많습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프러시안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가 있었던 훔볼트 대학에 가면 전자기학의 막스 플랑크, 아인슈타인, 헤겔 등등 이름만 들어도 기가 죽을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현재 훔볼트 대학도 좋고 그 옆 도서관도 훌륭합니다. 구내의 카페는 좀 기대에 못 미쳤지만 역사적 인물들이 거쳐간 곳에서 커피 한 잔은 맛을 떠나서 기억을 남기기에 좋았습니다. 역사적 공간일 뿐 아니라 현대적 공간도 베를린만의 느낌이 있습니다. 여러 국적, 인종, 문화가 뒤섞인 곳이기에 가능한 것일텐데 적당한 무질서와 섞임이 만들어내는 분위기 같습니다. 비엔나는 모르겠지만, 잘츠부르크 같은 오스트리아의 시골에서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상수시 궁전이 있는 포츠담은 베를린과는 또 다르게 오스트리아 같은 백인 중심 지역 같습니다. 잘 사는 동네같아 보이고 기차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차가 중심인 것 같습니다.


10년만에 유럽을 다녀오기도 했고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다닌 것도 실로 오래간만이었습니다. 2018년 마카오 갔을 때 환전하고 계속 갖고 있던 홍콩 달러를 이번 기회에 쓰겠다고 생각해서 홍콩을 경유해서 오기로 했고, 갈 때 올 때 도하에 들르기도 했지만 10일 중 2일 빼곤 다 유럽에 있었습니다. 2년을 살기도 했던 지역이지만 그때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은 많이 다릅니다. 10년전 돌아올 때쯤 가졌던 그 느낌이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점점 실제가 되어 가고 있고요. 아마 또 다시 10년후쯤에 온다면 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땐 또 어디를 가볼까요? 아직 가보지 않은 나라, 도시는 많고도 많습니다. 이번 여행은 워낙 특수한 일을 겪은 후에 바람쐬러 가기도 했고 그야말로 무계획적으로 갔습니다. 이렇게 가도 여행이 가능하고 더 재미있기도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건 우리가 알던 유럽은 계속될까라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뭘 배우고 어떤 일을 해나가야 할지 걱정도 되고 우리가 해볼만 하다는 기대도 듭니다. 사실 별거 없는 곳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로마제국 말기의 모습이 곳곳에서 보이니까요. 그리고 중국의 그림자는 유럽에서 더 크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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