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한가운데에서 희망을 선택하기
지금 우리나라는 너무나도 혼란스럽습니다. 트럼프 2기 정부들어 미국과 전세계가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혼란과 불확실성만 할까 싶습니다. 머릿속이 안 그래도 복잡한데 이런저런 뉴스들이 쏟아지다 보니 너무 많은 정보들이 입력되면서 교통정리가 잘 안 됩니다. 유발 하라리가 아침, 저녁에 각각 1시간씩 명상을 한다고 하는데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요새 사람들 무두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굳이 명상을 하지 않더라는 뉴스를 보지 않고, 유튜브를 보지 않고 팟캐스트를 듣지 않고 가만히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걸어 다니든, 운동을 하든, 앉아 있든 멍하니 하늘을 보든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온갖 정보들 중에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아카이브로 넘기고 조정이 필요하거나 종합이 필요한 정보들은 엮어주어야 합니다. 김정운 교수가 이야기했듯이 나만의 공간에서 편집하는 과정에서 창조가 이루어지니까요.
요 며칠 사이 부쩍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건 바깥 세상의 혼란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실로 오랫만에 저녁 시간에 집에서 글을 씁니다. 글의 제목도 난중일기로 적어 봤습니다. 물론 저는 이순신 장군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마음 속에서 저는 탄핵을 당해 백의종군한 이순신 장군의 삶이 뭔가 저랑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여깁니다. 상유십이 순신불사라는 짧은 글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이순신 장군의 삶과 글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분리될 수도 없고 어쩌면 이렇게 어울릴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이순신 장군이 된 것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도 약간은 정리되고, 마음도 정화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일기를 쓰라는 말을 많이 했던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서설이 길어졌지만 지금의 상황은 웃을 수 없는 일이고 나라의 명운이 왔다 갔다하는 심각한 단계에 와 있습니다. 일제가 패망한 이후 혼란 속에서 좌우의 대립과 찬탁/반탁의 대립이 국제정세와 맞물리면서 한반도가 분할된 것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큰 운명을 결정지었던 것처럼 국내외의 혼란과 극심한 갈등 국론의 분열, 극단적인 대립은 우리 모두를 어디로 이끌지 알 수 없습니다.
얼마전까지 당연하다고 여겼던, 너무 공고해서 오히려 필요한 개선 작업을 하기 어려운 게 문제같았던 우리나라의 헌법과 제도가 이제 더 이상 당연해 보이지도 않고 안정적이지도 예측가능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언스에서 이야기한 것도 정확히 이 부분인데, 종교든 정치든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고 인정하면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제도든 법이든 그 제도와 법을 무시하고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 수가 일정 수를 넘어서기 시작하면 이미 그 제도는 제도로서 존재하기 어려워집니다. 법이든 제도든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고 사람들이 안 따르고 새로운 걸 가져오는 순간 휴지조각에 불과하니까요. 더구나 지금의 상황은 그저 많은 사람들이 아니고 대통령이라는, 전산시스템으로 치면 Superuser가 문제의 핵심인 상황이니 멀쩡한 법, 제도도 작동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Key Stone 이 빠져 버린 아치같다고 해야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희망적입니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보다는 희망을 택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그저 막연히 우리나라의 미래를 믿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나라가 고꾸라지거나 멈출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길게 보면 지금의 이 상황이 새롭게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과정 같기도 합니다. 의천도룡기의 장무기가 건곤일기대를 찟고 구양신공을 완성하듯이 큰 도약을 위해서는 낡은 시스템을 깨버리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돌이켜보면 IMF 외환위기 같은 고난과 혼란이 없었다면 개혁은 불가능했을 것이고 그 개혁이 없었다면 그 이후의 도약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혼란과 고통을 성장통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 과정의 끝에 어떤 결말이 올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희망적이고 싶습니다.
저 개인의 삶과 직장에서의 경력도 상당부분 지금 이 상황과 맞물려 결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좋은 싫든 말이죠. 지금의 저는 이순신 장군과 비슷하게 백의종군 상태입니다. 이제 회사내에 제 선배 중에는 팀장이 없고, 후배 중에도 정식 과장이 몇 명 있습니다. 저는 지금 정부에서 보면 용서받지 못할 자고, 복귀시켜 준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할 사람이고 조용히 자숙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저 저는 저에게 맡겨진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합니다. 워낙 바깥이 어지럽지만, 그 팀장이란 처지가 초라해서 때론 울컥했지만 이젠 그러려니 하고 어디에서 뭘 하든 그저 재밌게 할 수 있으면 좋고 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