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모델은 지속가능할까
3박 4일 출장의 마지막날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서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어릴 때 가끔 했고 요새도 아이들과 자주 하는 부루마블에서 싱가포르는 빨간색 국가입니다. 아시아에 있고 가격이 싼 게 빨간 색 나라들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싱가포르는 10만원이라서 그 중에서는 비싼 편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봐서는 싼 나라에 속합니다. 서울 100만원, 뉴욕, 런던이 35만원이니까요. 부루마블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의 상황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80년대였던 것 같고 당시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를 아시아의 4마리 용이라고 했으니 아마 지금과는 좀 다른 위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위상이란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혼란스럽습니다. 1인당GDP로 봐야할지, 물가로 봐야할지, 인구를 고려한 국력개념으로 봐야할지, 국제사회나 문화적 영향력을 봐야 할지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으니 뭐가 정답이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어쨌든 부루마블은 땅과 건물을 사서 짓는 게임이니 기본적으로는 땅값과 물가가 기준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기준으로 보면 80년대에서 40년 지난 시점에서 보면 싱가포르가 10만원건 분명히 이상합니다. 여기 와서 몇 시간만 있어봐도 물가가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비싼 지역과 비슷해 보이니까요. 차 1대 사려면 2억원 정도 있어야 하고 그나마도 번호판을 경매로 사야 하는데 유효기간이 10년에 불과하다고 하고, 집 값이나 월세도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물가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싱가포르도 눈여겨볼만한 지점이 많은 나라입니다. 금융과 물류를 주력으로 삼아 서양식의 제도를 잘 마련해서 운영하고 있고 화교와 중국이라는 걸 레버리지로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중국인들이 있고 안전하고, 깨끗하고 예측가능성과 신뢰감을 줍니다. 법만 잘 지키면 이만한 인프라를 어디서 누리고 살 수 있을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교육수준도 높고 돈만 많으면 상속, 증여세 부담없이 자자손손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국인들이 기반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중국인들의 네트워크가 얹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워낙에 입지가 좋다보니 그리고 이 지역에서 가장 국가시스템이 서구화되어 있다보니 동남아와 인도, 중국, 서양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잘 어울려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꼭 여기 살지 않더라도 여기에 와서 교류하고 거래도 하고 일도 하고 그러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센터는 아닐지 몰라도 돈과 정보, 사람이 몰리는 허브는 확실히 이 근처에서 싱가포르를 대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불안한 요인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태국에서 운하를 파버리거나 인도네시아 같은 지역의 강국이 더 좋은 뭔가를 만들어(예를 들어 신 수도) 다 끌어가면 싱가포르는 예전같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중갈등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인도태평양이라는 프레임워크가 어떻게 진화해나갈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한중일 간에 관계가 좋아지고 역내 협력이 더 중요해지거나 활발해지면 한국이 홍콩의 역할을 이어받는다면 어떨까요? 한국은 싱가포르보다 규모가 크고 문화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 일본과 가까우니 더 좋은 대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싱가포르와 원래 한 나라였던 말레이시아와의 갈등이 어찌될지 모르는 리스크도 있습니다. 세상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이런 대외적인 위협요인보다 저에게는 싱가포르 내부적인 위협요인이 뭘까 더 궁금해집니다. 이 사회를 움직이는데 필요한 이주노동자 문제는 계속 이대로 갈 수 있는지, 인종구성은 지속가능한 것인지, 인구 문제는 답이 있는지, 하나의 당이 계속 집권하는 정치체제는 앞으로도 계속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이외에도 많을 것입니다. 불과 3~4일 출장 온 제가 알지 못하는 사회 문제가 얼마나 많을까 싶습니다. 중국도 그렇고 역사적으로도 국가가 강력하게 통제하는 나라들은 사회 변화에 민감합니다. 정치, 외교, 경제 문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폭발력이 있으니까요. 사실 사람들이 모인 것이 사회고, 그 사람들이 국가를 만든 것이니 사람들 특히 다수의 사람들 생각이 바뀌면 국가는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처럼 공산당이 엄격하게 사회를 통제하고, CCTV, AI로 모든 사람을 감시하는 체제가 어찌될지는 관심사이지만, 싱가포르는 그런 수단을 쓰지는 않으니 좀더 취약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국가라는 특수성으로 좀 더 쉽게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싱가포르 모델은 지속 가능할까요? 그리고 이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일까요? 두 질문에 답할 만큼 아직 싱가포르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첫 인상에 가까운 느낌이 이 질문인 것은 왜일지 생각해봅니다. 아시아의 동쪽과 남쪽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갈지, 우리는 어떤 전략을 갖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시점입니다. 저 스스로도 무엇을 하면서 어디서 살아야 할지? 아이들은? 이런 질문을 갖고 있고요. 이제 곧 타는 비행기는 타이베이 경유편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