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와 균형발전

상관없었던 것들이 연결되어 갈 때

by 경계인

제가 했던 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업무는 에너지였고 그 다음이 지역과 관련된 업무였습니다. 짧은 시간 하긴 했지만 조선 업무도 지역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경남, 울산, 목포, 군산같은 일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 지역의 정치권, 지자체, 대학 등이 상당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고 정부의 지원도 사실상 그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에너지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원전은 부산, 울산, 경북, 전남 4개 지역에 몰려있기 때문에 2017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지역이슈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이렇게 제 경력의 양대축이 연관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그 둘이 어떤 구체적인 연관성이 있느냐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장관 이상이나 지자체장 같은 상부로 올라갈 수록 지역이슈는 정무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지만, 그 아래 수준에서는 그다지 관심을 끌거나 성취감을 느끼게 하지 못하는 업무에 가깝습니다. 대체로 지역에서 하려고 하거나 하고 싶어하는 일들은 중앙정부의 시각이나 글로벌 시각에서 보면 수준이 낮거나 실효성이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R&D 과제든 인프라 구축이든 예비타당성 조사, 비용편익분석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쉽지 않고 교육의 수월성 관점 비슷한 감각으로 보면 지원받기 어려운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문제는 구조적인 것이고 그 구조가 형성된 것은 과거 불균형발전 정책 때문일 것입니다. 이후에 그런 구조를 정말로 진지하게 바꿔보려고 했던 건 노무현 대통령이 최초이자 거의 유일한 것 같습니다. 노 전 대통령 이후에도 이명박 정부에서 5+2 광역경제권, 박근혜정부나 문재인 정부에서도 균형발전정책(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의 정책은 균형발전과는 약간 결이 다릅니다)을 추진하긴 했지만, 노 전 대통령처럼 진정성을 갖고 대통령이 직접 챙긴 적은 없습니다. 현재의 윤석열 정부에서는 지방시대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자치분권이라는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실제로는 성격이 많이 다른 정책을 묶은 것이라서 얼마나 실질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의문인 상황입니다.


여하튼 2019년말 수도권 인구가 수도권 외 지역을 넘어서면서 지방의 위기감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를 뒤집을 어떤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지방의 문제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도권 90년대생의 부모세대 상당수가 지방에서 태어나지 않은 세대라서 이미 지방과의 연결이 약해진 세대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수도권 특히 서울의 집값상승, 교육기회의 불평등 문제와 연결되고 궁극적으로는 결혼과 출산 감소 문제와도 닿아 있습니다. 이 문제가 남의 문제인 것만도 아니고 지방만의 문제도 아니고 우리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개인적 느낌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저출산 문제의 해법은 출산장려금 같은 것보다는 균형발전에서 찾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방에 괜찮은 일자리가 많아지고 좋은 교육기관이 많아진다면 자연스럽게 인구가 분산되고 집값 부담도 줄어서 결혼, 출산에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도권의 국제적 경쟁력, 서울의 매력이 올라갈수록 상대적으로 지방의 매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서울이 너무 좋은 곳이 된 것이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조금을 줘서 억지로 기업을 지방에 가게 하려는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기업의 경쟁력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는데 보조금때문에 지방으로 이전할 기업은 거의 없습니다. 결국 기업이 기업활동에 필요한 제반 여건을 판단해 스스로 지방에 가는 것이 원론적이지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그 제반여건이 지방이 서울보다 유리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토지, 노동, 자본, 기술 같은 기본적 요소만 보더라도 물론 수도권이 땅값이 비싸더라도 다른 요소는 훨씬 우위에 있습니다. 이런 구조를 일거에 뒤엎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 시점에 저는 지역 문제와 에너지 문제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거의 균질적인 에너지공급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가격 측면에서도 지역별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전기는 요금 자체가 동일하고 하나의 독점 판매사업자인 한전이 공급합니다. 가스나 석유는 여러 민간사업자가 공급하지만 지역간 차이는 미미합니다. 재화나 서비스의 질도 지역간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알고보면 당연하지 않습니다. 지역별로 생산시설의 유무나 거리, 유통단계에서의 경쟁정도, 지역내 수급의 차이같은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구체제가 변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와 조건이 안과 밖에서 형성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 전력계통의 지역간 수급불균형이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수도권은 만성적으로 수요 초과이고 동해안, 서남권은 공급 초과이지만 이를 해소할 송전망 건설은 요원해 보입니다. 송전망 건설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도 공통적으로 겪는 난제 중 하나입니다. 바깥으로는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흐름이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와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중립을 해야 하고 탄소중립을 위해 석탄발전소 폐지 또는 연료전환을 해야 하고 RE100(CF100은 아직까지 국제적인 기준이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과 같은 여러 조치들이 뒤따라 와야 합니다. 재생에너지가 많이 보급된 지역에서는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이 위협이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는 기초적인 구조와 조건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한 구조와 조건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가격이 다른 전기라는 재화가 실제로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팔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고치고 바꿔야 합니다. 지역별로 동일한 요금체계를 지역별로 다르게 설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시간대별로 요금이 달라질 수 있어야 합니다. 재생에너지만으로 공급받고자 하는 기업이 있다면 100%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별도의 요금체계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변화는 하나로 통일된 전력망을 사실상 지역 단위로 분절시킨다는 전제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앞에서 이야기한 지역과 에너지 문제를 연결하는 지점입니다. 지역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치 동일한 지역처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통신과 수송기술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고 화석 에너지의 공급이 곧 수송기술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산업혁명과 국제적인 공급망이 가능했던 조건 역시 스케일의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합니다. (Richard Baldwin)


장기적으로 지역은 에너지 공급의 자율성과 책임을 갖게 되고 그것이 지역의 매력을 수도권과 차별화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지역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 광역교통망처럼 지역간 분쟁은 어떻게 조정할지, 수도권의 요금 인상을 어찌할지, 행정구역과의 관계설정 등등 고려할 요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잘 넘긴다면 진정한 균형발전이 가능할 것이고 이 둘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정책이 필요한 이유는 충분하다고 하겠습니다. 아직은 이 둘을 연결해서 보는 경우가 별로 없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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