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읽는 주역
[[오십에 읽는 주역(강기진) (2023.11.27)]]
얼마 전 가지고 있던 책을 거의 절반 버리거나 중고서점에 팔고 나서부터는 어지간하면 종이책을 사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제 처지에 많은 책을 갖고 혹은 머리에 이고 사는 것이 너무 큰 사치라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직 절반 정도의 책을 어딘가에 보관해야 한다는 것이 가끔 중압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서점에 들르기도 하고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을 사기도 합니다. 우연한 인연(serendipity)라는 게 이런 걸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50에 읽는 주역"이란 책도 그렇게 사서 읽게된 책입니다. 너무 뻔해 보이는 제목의, 그저 그렇고 그런 자기계발서 아니면 흔한 주역 해설서같아 보였지만 맨 앞의 '50에 읽는'이란 부분에 꽂혔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50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고 나름 험하고 드라마틱한 일을 겪어서 인지 책 앞부분의 왜 50에 그런 생각을 하고 선택을 하게 되는지 설명하는 부분이 마음에 확 들어왔습니다. 게다가 앞부분의 괘는 무협지에서 인상깊은 무공인 항룡십팔장의 초식이었습니다. 사실 전 처음에 그게 초식명인줄 알았지 주역의 괘인지는 몰랐습니다. 책에서는 홍칠공이 주역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어 항룡십팔장을 창안했다고만 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잠룡물용, 현룡재전, 비룡재천, 항룡유회로 이어지는 괘와 50대의 인생을 엮어서 설명하는 걸 보면 수천년도 전에 관찰한 인생의 지혜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나이도 이제 만으로 50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간 몇 번의 궤도 수정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무탈한 삶을 살아온 것이 90%였는데 최근 몇년은 궤도 수정이 아니라 탈선이라고 할 만 합니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서 돌풍이 불어와 전혀 생각도 못했던 곳에 떨어져 모험을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전 가끔 주변 사람들과 제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무난하다 못해 지루한 삶을 살다가 느닷없이 돌풍에 휩쓸려 엉뚱한 곳으로 가게된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후의 삶은 사실 지금으로선 예측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전 그걸 꼭 나빠졌다고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아직 그 평가는 좀 이르기도 하고 제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50에 읽는 주역이라는 책의 글머리에 나오는 이야기도 바꿔야 할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고 과거와 미래를 바꾸는 것은 현재 나의 마음이라고 나옵니다.
오히려 제 인생은 지금부터라는 생각도 합니다. 이전까지의 인생이 잠룡이었기 때문에 물용(勿龍)이었다면 이제 저는 현룡(見龍)이 되어 재전(在田)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제가 飛龍이 되어 재천(在天)이 될 것인지는 제 하기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저는 원래 이 길로 와야 했는데 안이하게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으니 콕 집어서 원래 가야할 길에 갖다 놓은 것인지도 모르고요. 무엇이 되었든 제 삶은 이전과 같은 궤도에 있을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삶의 궤적이 로그 함수처럼 평평하게 굽어질지 지수함수처럼 하늘로 치솟고 올라갈지는 알수 없습니다. 고를 수 있다면 지수함수처럼 올라가다간 다시 떨어져 뉘우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로그함수처럼 처음에 빠르게 올라가다가 어느 정도 지나면 서서히 올라가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여하간 그건 그 사람의 능력, 의지, 운, 인연 이런 것들이 복잡하게 얼키고 설켜 빚어지는 결과일 것입니다. 공무원들이 흔히 하는 비유 중에 비가 올 때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 의지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 빗대보면 비가 온 것이 아니라 쓰나미가 와서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휩쓸려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니 조선시대 박연(벨테브레)가 비슷한 사례일 것 같습니다.
팔자나 운명 이런 걸 믿는지 안 믿는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가끔은 제가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일들이 운명이나 팔자처럼 느껴질 때는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어쨌든 전 지금 여기에 와 있고 아직 저에게는 살아가야 할 인생이 남아 있고 제게 맡겨진 사명이랄까 그런 것이 있다고 느낍니다. 지금까지의 삶은 어떻게 보면 그 일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던 것이고 본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이죠. 어찌보면 모든 걸 잃은 상태인데 저 스스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50에 읽는 주역이 그렇게 제 눈에 확 들어온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항룡십팔장의 제1장이 항룡유회(亢龍有悔)인 것처럼 오버슈팅(overshooting)하는 것은 후회가 뒤따르기 마련일 것입니다. 영화 박하사탕의 유명한 첫 장면처럼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인지 몰라 원래 있던 것으로 돌려달라고 말하지 말고 순리대로 가다보면 하늘이 저에게 맡긴 제 소명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탈선이 아니라 궤도 수정이 되려면 말이죠.